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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추모미사 소식 2호] 길위의 신부가 드리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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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준 [praxis] 쪽지 캡슐

2009-04-02 ㅣ No.9224

용산참사 희생자 추모미사 소식
제2호 | 2009년 4월 2일
용산참사 희생자 추모미사가 매일 봉헌됩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미사가 봉헌되고 있습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 일시 : 2009년 3월 30일(월)~4월 12일(일) (평일 오후 7시, 주말 시각은 미정)
□ 장소 : 참사 현장(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2번출구-직진)


1. 길위의 신부가 드리는 동영상 (4/1)

용산 화재 참사 부상자 이송
2009년 4월 1일 오후 2시
순천향 병원-녹색병원


2009년4월1일
촬영: 평화바람,
편집 글: 길위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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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 병원에서 녹색병원으로 이송하는 장면

순천향대병원 입원 중인 세 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부터 퇴원조치되었다.
가족들과 대책위는 초긴장상태였다.

이분들은 용산화재참사에서 경찰의 살인진압으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다.
척추와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한 분은 입원 중 검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두 분은 받은 수가 없었다. 70일의 입원 끝에 병원 측이 무조건 퇴원 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녹색병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조사를 받지 않은 두 분의 신변이 문제가 되었다.

가족들은 순천향병원에서 퇴원하는 즉시 연행되지 않을까 긴장하였다.
경찰은 경찰 혹은 검찰이 소환하면 응하겠다는 확인서를 요구했다.
확인서서명을 거절한다면 퇴원하는 지금 연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소행이다.
저승사자에게 다녀 온 분들이다.
삶과 죽음사이에서 몇 분 차이로 살아남은 분들이다.
이 분들은 현장에 있었던 산 증인들이다.
어느 누구보다 사건을 잘 아는 분들이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2. 함께 읽어봅시다

용산 참사와 골고타의 십자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할수록 끔찍했던 용산 참사가 떠오릅니다. 무자비한 진압으로 사람들이 죽었는데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는 이도 없습니다. 기괴한 일입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강제철거 중단과 재발 방지대책, 구속자 석방 등 유가족의 간절한 호소는 그저 외로운 메아리일 뿐입니다. 참사의 진실은 파묻히고 모두의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죽음, 잊힌 죽음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은 우리 사회와 국가에 큰 감동을 일으켰습니다. 끝을 모르던 추모행렬은 마치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백성의 행렬처럼 거룩한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추기경님의 죽음으로 우리 교회는 그동안 잊고 지내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 민주화를 위한 헌신의 가치를 새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한 달이 넘었는데 추모 열기는 식을 줄 모릅니다.

그런데 추기경님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 날은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꼭 한 달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추기경님은 닷새 만에 하늘로 가셨지만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불에 타 죽은 여섯 영혼은 한 달이 지나도록 차가운 냉동실에 누워있었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참사 발생 두 달이 되었지만 모든 것이 답보상태입니다. 더더욱 기막힌 것은 불쌍하게 타죽고 말없는 철거민들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철거민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시선
용산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일부의 시선이 차갑고 부정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철거민들을 턱없는 개발보상금을 노리는 도심 테러범처럼 대하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생자들을 바라보는 교회의 생각은 다릅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누구나 존엄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모든 사람이 공동선 실현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또 존엄성의 실현을 위해서 무엇보다 한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품위를 잃지 않도록 우선적으로 배려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굳이 사회교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우리의 시선입니다.

참사의 책임을 희생자들의 시위방식에 돌리면서 일방적으로 경찰을 편드는 검찰의 태도나 국민 기본권을 마구 짓밟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정부의 태도는 교회의 마음을 괴롭게 만듭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정부의 태도를 보면 가난하고 나약한 처지 그 자체가 죄라는 식입니다. 억울하면 돈 벌어서 힘을 길러야지 하는 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참사 51일 만인 지난 3월 11일 용역업체가 다시 강제 철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분노는 섬뜩한 공포로 바뀌었습니다. 그 옛날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예레 31,15)던 예레미야의 통곡이 지금 서울 용산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가장을 잃어버린 유가족들이 비통하게 울부짖고 있습니다.

물신숭배를 위해서 목숨을 태우는 번제의 현장
참사가 일어난 용산 4구역은 돈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비열함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작년 이곳 평당 가격이 약 7백만 원이었는데 재개발이 추진된 올해 약 8천만 원 정도로 폭등하였습니다. 지주와 건물주들이 챙기는 이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재개발사업에 참여하는 건설사들도 엄청난 수익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삼성물산의 경우 1조4천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하니 우리로서는 알지 못할 일입니다. 반면 세입자를 위한 평균보상액은 상가 가구당 고작 2,500만원, 주거 가구당 1,680만원입니다. 이런 보상가라면 어디로 이사를 갈수도, 어디 가서 구멍가게 하나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열을 죽여서 하나가 재미를 보는 무서운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용산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서울시 23개 지역과 수도권에 추진되는 뉴타운 재개발이 똑같은 상황입니다. 뉴타운 지역의 세입자 비율은 72.2%고, 원주민 재입주율은 17.1%에 그치고 있습니다. 가옥주 조합원의 경우라고 해도 재 입주를 위해서 최소 1~2억을 더 보태야 합니다. 결국 원주민의 재정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서울시가 선정한 뉴타운 사업 총면적은 2,700만m²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1973년 이래 35년간 재개발된 총면적 1,340m²의 2배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결국 재개발사업은 원주민인 가옥주와 세입자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개발조합, 건설사와 금융회사의 투기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결국 용산 참사는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쓸어버려서라도 소수를 위한 개발이익을 챙기겠다는 무서운 탐욕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공권력이 자본의 명령에 굴종하여 섬겨야 할 국민을 공격했다는 점도 시대의 무서운 징표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회개와 자선의 사순절기입니다. 회개와 자선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였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의 벗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키레네 사람 시몬(마태 27,32)이 건네받았듯이 그분의 십자가를 우리가 지겠다는 결단과 실천의 사순절입니다.

지금 용산 참사 유가족들의 형편은 더 없이 힘겹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부상자들의 입원 치료비, 시신안치실과 영안실 사용료 등으로 2억 원이 넘는 빚이 생겼습니다. 시름에 시름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청원, 책임자 처벌과 구속자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지지부진합니다. 여러 사람이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교우님들의 애정 어린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첫째 구속자 석방과 특검청원 서명운동에 동참 해주시기를 호소합니다. 둘째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유가족 지원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09년 3월 20일
용산 참사 두 달을 맞으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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