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죄인들에게 연옥은 구원(Salvation)의 필요조건입니다. 617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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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1 ㅣ No.617

[내용 추가 일자: 2018년 4월 10일]

[번역 오류] [영어로 "the kingdom of heaven" 으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1635년경에 한문 문화권에 처음 도입된, "천국(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 이, [영어로 "heaven(s)" 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1584년경에 한문 문화권에 처음 도입된, "천당"의 옛말이라는 주장은 크게 잘못된 주장입니다. 
 
2015년 8월 이전까지, 이 "천주교 용어사전"에 주어진 설명에 따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천국" = "천당", 즉, "천당"은 곧 "천국"을 말하고, 또 "천국"은 곧 "천당"을 말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러나 이것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2015년 8월에 들어와 처음 알게 되었기에, 바로잡습니다. 이를 위하여,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즉, 지금 읽고 계신 글]과 이 글에서 그 접속 주소를 밝히면서 읽으실 것을 요청하는 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다음은, 가톨릭 대사전, 전례사전, 천주교 용어사전에 주어진 "천국""천당"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에 대한 설명들인데,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차용 번역 용어인 "천국"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출처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결과, 오류(error)의 글들입니다.
 
이 설명들에서, 마태오 복음서에서 "천국"은 "하늘 나라"를 말하므로 오류가 아니나, 그러나 나머지 문맥 안에서 "천당(heaven)"으로 반드시 말해져야 하는 바가 "천국"으로 말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커다란 오류입니다. 영어로 "heaven"으로 번역되는 표현은 반드시 "천당" 혹은 "하늘"로 교체하여 읽도록 하십시오:
 
따라서, 국내의 개신교측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 "kingdom of heaven(하늘 나라)"로 번역되는 표현에 대단히 충실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입니다. 

오늘 날짜로, 바로 위에서 지적한 오류를 아래의 본문 중에서 바로잡았습니다.
[이상, 2018년 4월 10일자 내용 추가 끝]

 

연옥(Purgatory)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The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는 “하늘(heaven, 천당)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한 필요조건인 성화를 성취하기 위한 정화(purification)”로 연옥(Purgatory)을 정의하는데, 연옥은 “천주의 은총과 천주와의 화해 속에서 죽었으나 정화가 제대로 되지 못한 분”들이 경험하게 되며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0),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분들에게 있어, 즉 구원(Justification)받은 자들에게 있어)  “구원받은 자들을 위한 이 마지막 정화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겪게 되는 지옥의 형벌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1).

 

성경에서도 가르치듯이, 완전하게 깨끗하지 못한 자는 하늘(heaven, 천당)에 계신 천주의 면전에 들지 못하기(요한 묵시록 21:27) 때문에, 그리고 대죄(mortal sins)를 용서받고 죽었다 하더라도, 특히 소죄(venial sins) 및 이미 사면된 죄로 인한 잠벌(temporal punishments) 등의, 많은 불순함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마지막 정화과정, 즉 연옥이 있는 것입니다.

 

 

두 심판 (사심판 및 공심판)

 

우리가 죽게 되면, 우리들은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는) 사심판(particular or individual judgment)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일단 죽게 되면 사심판을 받도록 주선되고, 그 다음에 사심판을 받게 됩니다” (히브리서 9:27). 사심판은 죽자마자 즉시 진행되며, 또한 살아생전의 선행 혹은 악행에 대한 보상(상선벌악)을 받게 되므로, 우리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즉시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시간이 끝나는 시점에는, 예를 들면, 성서의 마태 복음서 25:31-32의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이 언급하고 있는 (삼위일체  천주께서 주관하시는) 공심판(general judgment)이 있을 것인데, 이 공심판에서는 우리들이 지은 모든 죄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루가 복음서 12:2-5).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5세기 초의 그의 저서인 신국론(The City of God)에서, “어떤 사람들에 있어서는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떤 사람들에 있어서는 죽은 다음에, 또 어떤 사람들에 있어서는 살아 있을 때와 죽은 다음에, 잠벌들에 따른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21:13),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렇게, 잠벌로 인한 우리들의 영혼이 정화되는 연옥은 사심판과 공심판 사이에 있게 됩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루가 복음서 12:59).

 

 

연옥의 존재

 

기독교 (천주교 및 개신교 포함) 신앙의 근본 진실은 천상교회(즉, 천당, heaven, 하늘)에서는 우리들이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는 점인데, 이것은 죄와 최후의 영광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 많은 이 세상에서의 삶과 천상교회에서의 영광 사이에서 우리들이 정화되어야 함이 마땅하여, 죽음과 영광 사이에 정화(purification), 즉 연옥이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The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는 "하늘(heaven, 천당)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한 필요조건인 성화를 성취하기위한 정화(purification)”로 연옥(Purgagory)을 정의하는데, 연옥은 “천주의 은총과 천주와의 화해 속에서 죽었으나 정화가 제대로 되지 못한 분”들이 경험하게 되며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0), “구원 받은 자들을 위한 이 마지막 정화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겪게 되는 지옥의 형벌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1). 죽은 후에 죄와 잠벌로부터의 정화에 대한 개념은 또한 다음과 같은 신약성경 구절에도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1-15절, 마태오 5장 25절 및 12장 31-32절.

 

연옥교리 혹은 최후의 정화교리는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셨던 시절 이전부터 참 신앙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마카베오서 하권 12장 41-46절과 “마지막 날에 벌을 용서해줄 그날까지 아담은 슬퍼할 것이며, 그러한 연후에 내가 그대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꿀 것이다.” (The Life of Adam and Eve 46-7)라는 기록에서와 같이, 메시아가 오시기 전부터 유대인들은 이미 이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통 유대인(Orthodox Jews)들은 최후의 정화를 믿으며, 사랑하는 친지가 죽으면 장례를 치른 후 11달 동안 이들은 사랑하는 자의 정화를 위하여 매일 Mourner's Kaddish라고 불리는 기도를 바칩니다.

 

역사적으로 유대 교회, 가톨릭 교회, 그리고 동방 정교회는 최후의 정화가 있음을 항상 선언해 왔으며, 1500년대에 들어와 개신교 성향의 종교 분리자들이 나타날 때까지는 아무도 이것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교부들(Church Fathers)의 가르침 중에서 인용한 아래의 구절들에서와 같이, 연옥은 처음부터 기독교 (가톨릭 및 개신교 포함) 신앙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연옥교리를 가톨릭 교회가 만들었지 않았나.. 하는 억측을 합니다만, 이 교리의 핵심 내용은 단지 세 가지뿐입니다. 즉,

 

(i) 죽은 다음에 정화과정이 있다.

(ii) 이 과정은 어떤 종류의 고통을 수반한다.

(iii) 살아 있는 자들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와 예물로써 정화과정을 도와줄 수 있다.

 

다른 생각들, 예를 들어, 연옥은 우리들이 죽은 다음에 머무르는 특별한 “장소”이라거나 혹은 연옥 단련은 일정한 “시간”을 요한다는 등의 생각들은, 가톨릭 교회의 교리라기보다는 통상적으로 연옥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우리 인간들의 견해입니다.  

 

The Acts of Paul and Thecla [A.D. 160] “그리고 현시가 있고 난 다음에, Tryphaena 역시 그녀[Thecla]를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이미 죽은 그녀의 딸 Falconilla이 그녀의 꿈에 나타나서는 ‘어머니, 그녀가 저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또 그렇게 함으로써 제가 의로운 자의 자리로 옮겨갈 수 있도록, Tecla라는 낯선 자를 저 대신에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Epitaph of Abercius [A.D. 190] “큰 도시의 시민권자인 나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다음의 내용을 분명하게 밝혀 둡니다. 즉, (죽고 난 다음에) 내 육신이 쉴 자리를 가질 것임을. Abercius 는 내 이름인데, 나는, 이 세상 어디도 다 찰고하시는 위대한 눈을 가지신 그리고 저에게 삶에 대한 신실한 기록들을 가르쳐 주신, 산속과 벌판에 있는 양떼들을 키우는 순결한 목자의 제자입니다. 나 Abercius는 지금 선 자리에서 이것이 기록으로 새겨질 것을 명합니다. 그리고 진실로 나는 72세까지 살게 되었는데, 누구든지 이 기록에 동의하고 또 이해하는 분께서는 Abercius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Perpetua, The Martyrdom of Perpetua and Felicity 2:3–4 [A.D. 202] “바로 그 날 밤에, 나는 다음의 내용을 생생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죽을 때에 얼굴에 가지고 있었던 그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Dinocrates가, 창백하고 불결한 얼굴 모습으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어둡고 컴컴한 자리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Dinocrates는 나와는 살을 나눈 형제인데, 그는 칠년 전에 몹쓸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를 위하여 나는 기도하였으나, 그와 나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어, (기도 중에) 우리 둘 다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형제가 고통 중에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기도가 그의 고통을 들어 줌에 도움이 될 것임을 확신하였기에, 임시 주둔지의 감옥으로 우리가 넘어가게 될 때까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그를 위하여 기도 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들은 그곳에서 구경꺼리로 싸우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 나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번민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가 나의 기도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속되어 있던 그 어느날, 나는 다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보았을 때에 어둠으로 가득찬 그 장소가 이제는 밝은 빛으로 가득차고, 그리고 Dinocrates가 깨끗한 몸에 옷을 잘 입고서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는 즐겁게 놀기 위하여 (그 때까지의) 어려움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러고는 나는 깨어났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그가 벌을 받는 곳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Tertullian, The Soul 35 [A.D. 210] “주님의 그 비유 [마태오 5장 25-26절]... 는 그 의미가 아주 단순하고 분명하니...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들은, 대 판관이신 하느님 앞에서 ... 하느님의 판결에 따라 형을 집행하는 천사에게 그대가 넘겨지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그 날까지 아무리 작은 잘못이라도 그 대가를 다 치룰 때까지는 빠져 나올 수 없는, 지옥이라는 감옥에 천사가 그대를 구속할 것을 염려하도록 하십시오.

 

Tertullian, The Crown 3:3 [A.D. 211] “우리들은 죽은 자들의 생일날에 그들을 위한 희생제물을 바칩니다.”

 

Tertullian, Monogamy 10:1–2 [A.D. 216] “남편이 죽고 난 다음에... 그의 부인은 남편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였는데, (연옥에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가 평온을 되찾고 또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바로 그 날의 영광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남편의 제삿날에, 그의 부인은 희생제물을 바쳤습니다.”

 

Cyprian, Letters 51[55]:20 [A.D. 253] "참 믿음에 대한 강인함은 흔들리지 않고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하나 또한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과 함께, 그분들의 하나됨은 지속적이고 또 강하게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간부(姦夫)들에게도 회개의 시간이 저희들에 의하여 주어지고 있으며, 평화[즉, 화해]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동정성이 교회에 부족하게 되지도 않고, 또 다른 이들의 죄 때문에 영광스런 금욕의 추구 또한 시들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동정들에 의하여 영예를 지키게 된 교회는 번창하고 있으며, 순결과 겸손이 영광을 향한 그들의 진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회개와 용서가 간부(姦夫)들에게 주어졌다고 하여 금욕에 대한 열정이 꺾이지 않았습니다. (죽은 다음에)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나서는 것과 (살아 있는 동안에) 영광을 성취하기 위한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감옥에 던져 졌을 때에, 마지막 동전의 1/4푼까지도 다 지불할 때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고 머무르는 것과 (죽은 다음에) 믿음과 용기에 대한 보상을 단숨에 받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오랜 기간 동안 받을 고통으로 인하여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번민하고 또 (죽어서는) 깨끗해지기 위하여 불로써 정화 받는 것과 (살아 있는 동안에) 고통 받음으로서 (죽어서는) 모든 죄로부터 깨끗해지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벌로서, (죽은 후에) 심판의 그날 (공심판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판결이 주어질 때까지 (연옥에) 구금되어 있는 것과 (죽자마자 사심판을 주관하시는) 주님에 의하여 단번에 영예를 입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Lactantius, Divine Institutes 7:21:6 [A.D. 307] “그러나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의롭다는 자를 심판하실 때에, 당신께서는 마찬가지로 불로써 시도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이 저지른 죄의 무거움 혹은 그 횟수에 따라 죄가 무거운 자들은 불길에 의하여 함께 묶여져 태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정의와 완덕으로 채워진 자들은 불길의 뜨거움을 느끼지 않을 것인데, 이는 화염의 접근을 되돌려 보내고 또 대항하게 하는 하느님께서 주신 그 무엇을 그들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piphanius, Medicine Chest Against All Heresies 75:8 [A.D. 375] “비록 그들에게 부과된 죄몫 전부에 대하여 미치지는 못할지라도,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바치는 기도는 또한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들은 자의반 타의반 자주 죄를 지으므로, 기도하는 것은 도움이 되고, 또 기도하는 것은 더 나은 것을 행할 수 있도록 우리들을 일깨워 줍니다.”

 

Gregory of Nyssa, Sermon on the Dead [A.D. 382]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 자신에게서 비이성적인 것으로부터 특별히 인간적인 것을 구분한다면, 그리고 만약에 그 자신만의 세련된 언행을 주의 깊게 살핀다면, 비이성적인 것들을 이성으로 극복함으로써, 살아 있는 동안에 그 자신이 범한 죄악을 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감정을 위하여 비이성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후안(厚顔)을 내세우면서, 감정의 비이성적인 유혹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죽음으로 그의 영혼이) 육신을 빠져 나온 후에, 선행과 부도덕의 차이점에 대하여 알게 되고 또 그의 영혼에 감염된 불결한 전염병이 정화의 불길로 깨끗하게 치유되기 전까지는 거룩함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면, 그는 그때부터 상당히 다른 태도로 (살아있는 동안에) 무엇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John Chrysostom, Homilies on 1 Corinthians 41:5 [A.D. 392]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고 또 기억하도록 합시다. 만약에 욥의 자녀들이 그들의 아버지의 희생으로 정화가 된다면 [욥기 1장 5절], 죽은 자들을 위한 우리들의 예물 봉헌이 그들에게 위안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왜 의심하여야 하는지요? 죽은 자들을 도와주고 또 그들을 위하여 우리의 기도를 봉헌하는 것에 망설이지 맙시다.”

 

Augustine, Sermons 172:2 [A.D. 411] “그러나 성 교회의 기도들에 의하여, 구원의 희생 제물에 의하여,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베푼 자선들에 의하여, 죽은 자들에게 도움이 주어지고 또 그들의 죄의 대가에 비하여 주님께서는 죽은 자들에게 더 많은 자비를 베푸실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전체 교회는 교부들로부터 물려받은 다음의 관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즉 희생 제물 그 자체에 있는 그들 각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기억되어지고 그리고,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희생 제물이 봉헌될 때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와 일치를 이룬 상태에서 죽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따라서, 만약에 자비 행위들이 기억되어질 분들을 위하여 베풀어진다면, 그들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들이 헛되이 봉헌되지 않기에, 도대체 누가 자비 행위를 추천하는 것을 망설이게 될까요? 그러한 기도들이, 죽은 이들에게 이롭다는 점에 대하여 전혀 의심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일들이 그들이 죽은 다음에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 있어, 죽음을 맞이하기 전의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Augustine, City of God 21:13 [A.D. 419] "잠벌의 고통을, 어떤 사람은 단지 살아 있는 동안에 치르게 되고, 어떤 사람은 죽어서 치르게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살아서 및 죽어서 치르게 되지만, 그들 모두 최후의 공심판 이전에 치르게 됩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 잠벌의 고통을 치르게 되는 자들 모두가, 최후의 공심판 다음에 있을, 영원한 벌(즉, 지옥)에 던져지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 자료 모음:
가톨릭 교회 교리서 중 사심판, 연옥 등에 관한 가르침 (클릭하세요)
연옥은 존재한다 1 (클릭하세요)
연옥은 존재한다 2 (클릭하세요)
Saint Augustine: The City of God (Book XXI) (신국론) (클릭하세요)
개신교신자와의 대화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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