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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정을 배우며...(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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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규 [monk] 쪽지 캡슐

2000-06-07 ㅣ No.1061

이 글은 저희 요셉 수도원(불암산에 있는 저희 수도원 분원)에 계신 최종근 빠코미오 신부님께서 영성생활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근데 이렇게 막 올려두 되나 모르겠네요.. 암튼 참 좋은 글입니다.

 

 

 

사람 사는 정을 배우며..

최 종근 수사님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제게는 눈물에 얽힌 행복한 추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였습니다. 새벽 운동으로 자전거를 타던 어는 날, 저는 그만 달리는 버스에 부딪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아스팔트 위에 쓰러졌습니다.

 즉시 병원에 실려가 응급조치를 받고 엑스선 사진을 찍었는데, 다행히 머리가 깨진 데는 없고 두피만 좀 찢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쪽 눈과 머리를 붕대로 감은 제 모습은 꼭 전쟁터에서실려온 부상병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두시간 뒤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더니, 사색이 된 엄마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아이고, 이게 어쩐 일이냐? 아이고,아이고" 제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대성통곡을하시는 엄마. "사실은 별로 다친 데도 없고 몇 바늘 꿰멘 것 밖에 없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려는데 말할 틈도 주지 않으시고, 계속 엉엉 우신 우리 엄마. 한참을 그런 엄마 얼굴만 보고 있다가 저도 그만 따라서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날 이토록 사랑하시는구나." 백만 볼트의 뜨거운 사랑에 감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조건없는 사랑이 이런것이구나’ 하는 막연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정,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제 인생의 방향을 하느님 쪽으로 돌려놓았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하느님의 사랑’을 어렴풋하게 가슴으로 느낄 수있었습니다.

 자식을 염려하는 엄마의 사랑이 이토록 큰데, 그런 엄마를 만드신 하느님의 사랑은 도대체 얼마나 클까? 그분의 품은 얼마나 따뜻할까?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러다 어떻게 수도생활을 선택하게 되었지요. 그렇다고 엄마에 대한 애뜻한 정은 이제 끝났느냐? 아닙니다.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입회할 때 엄마와 손 흔들고 헤어질 때는, 엄마가 자꾸만 눈물을 훔쳐도 그저 히죽히죽 웃기만 했는데, 수도원에 들어온 지 한 열훌 되자 일이 터졌습니다.

 성당에서도 식당에서도, 어디에서도 머리속에는 울고 있는 엄마 얼굴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목이 메이고 가슴이 울렁거리는데 금방이라도 엉엉 울 것 같았습니다. 끝기도를 마치고 침방에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꺼억꺼억 울었습니다. 아무리해도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눈치챌까봐 몰래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보름달이 내리비치는 잔디밭에 앉아, 큼직한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본격적으로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울었을까? 아마도 엄마에 대한 정이 그렇게 강했나 봅니다. 당신 생명보다 더 소중한 자식이 애처로워 흐느끼기만 하시는 엄마. 제가 목석이 아닌 이상, 그 정을 떼기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할 수있는 것이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 제 안에 이토록 큰 엄마에 대한 정을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바꿔주세요."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꼭 거짓말처럼 그 다음날부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주님께서 다 알아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리라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 했습니다. 한동안 좋았습니다. 수도생활을 하나둘 배워가다 어떤 어려움이 생기고 기도가 막막하게 느껴져도,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느낄 수없어도, 하느님 얼굴 뒤에는 엄마의 따뜻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보다 훨

씬 더 따뜻하게 웃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늘 수도생활이 즐겁고 기뻤냐 하면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사는 것이 다 그렇듯, 수도자들끼리 모여 살아도, 인간적인 어려움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들이 한동안은 오히려 하느님과 정들이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사는 게 힘들고, 형제들 안에서 좋지않은 면들이 점점 더 크게 부각되면 될수록, 하느님을 더욱 찾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복되다, 그님께 몸을 숨기는 사람이여!"하고 말이지요.

 그리고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인 양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분을 닮자."하고 스스로를 채찍질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실 하느님께 대한 정도 많이 들긴했지만, 지금 가만 생각해보면 그 또한 심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정이었다고 느껴집니다. 마치 학교에서 왕따 당한 아이가 집에만 틀어박혀 엄마 주위에서 뱅뱅 도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느님이 없으면, 곧 죽을 것 같은 비장한 각오로 수도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함께 사는 형제들이 마치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해 설치해놓은 시험관문 같았습니다. 그래서 싸워 이겨내야 하고, 그로써 내가 성숙한 수도생활로 나아가게 해주는 디딤돌로 보였습니다. 그 싸움이 얼마나 힘겨고 저를 지치게 했던지, 수도생활을 시작한지 6개월만에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나 빠졌습니다. 수도원이 아무리 편하다해도 엄마 품만큼 편하지는 못했나 봅니다. 역시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건강이 안 좋아도 하느님께 더 간절히 매달리게 되고 기도도 더 많이 하게 되는데, 이상했습니다. 오히려 만사는 더 귀찮게 느껴졌고, 형제들을 편안하게 대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마음은 이미 하늘 위를 날고 있는데, 사람들 사이에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늘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느님, 저건 아닌데요. 왜 저럴까요? 저는 어떻게 해야하나요?"등등 괴로운 물음만 터져 나왔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러면서도 "그래 수도자의 길은 원래 외로운 거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 하느님을 찾아가면 돼. 그러다 죽을 지경이 되면, 할 수 없지 뭐. 죽을 수 밖에.."

 사실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솔직히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내안에 있다고 자부했던 수도생활에 대한 열정이 도리어 저를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을 바라보는 제 시각이 저도 모르게 ’이미 깨친 사람’의 거만함에 물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제게는 넘어야 할 산이요, 져야 할 십자가로 생가되었습니다. 다만 어떤 것은 더 힘이 들고, 어떤 것은 덜 힘이 들 뿐, 부정적인 대상으로 다가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종신서원을 한 후에도, 불과 얼마 전까지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로 스스로 대견해보이기(?)까지 하는 내 열정의 순수성. 그것이 저의 가장 큰 걸림돌임을 모르고 지내온 것입니다. ’내가 옳은데, 나는 정말 사심없이 형제적 사랑만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구나’하는 큰 착각 속에 살아왔던 것 입니다. 자신을 아낌없이 내준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만든 틀 밖에서 사랑을 요구하면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나름대 희생적인 봉사를 한다고 했지만, 제 나름의 어떤 이상적인 원칙이 흔들거린다는 판단이 들 때는, 언제라도 그 즉시 "이제부터 희생 끝. 계속 물러나면 조화롭고 이상적인 수도자가 될 수 없음. 주관(?)을 뚜렷이 해야겠음. 아픔이 있어도 할 수 없음." 이렇게 속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말씀 안 드려도 상상이 가시지요?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찬바람이 휘익 부는 원칙주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더욱 외롭고 미칠 지경이었으나, 도대체 문제가 어디서 꼬였고,어떻게’형제들 오순도순 함께 모여 사는 기쁨’을 회복 할 수 있을지 막막하였습니다.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입만 열면 ’사랑’이요, 무릎만 꿇으면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현실 속에는 늘 원망과 미움이 도사리고 있더군요. 그런 속에서 나온 결론은 삭막할 뿐이었습니다. "각자 할 일만 충실히 하면 되지." 그런데 사실 이런 태도 뒤에는 "너는 너, 나는 나. 우리 서로 간섭하지 말고 각자 맡은 일만 하자."는 뜻이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서서히 절대로 지기 싫어하고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착한(?)고집’으로 똘똘 뭉친 수도자라고 스스로를 변호해 왔는데, 어느 순간 저를 보니, 깊은 정을 나눌 능력을 잃어버린 로보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내가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됐을지도 몰라’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기 사작했습니다. 나만 옳게 살면(사실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거룩한 수도자가 될 줄 알았는데 이제 남은 것이라곤 자존심과 옹고집뿐이었습니다. 음울한 표정으로 수도원 독방에 앉아, 분을 삭이느라 씩씩대는 한 마리 짐승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엄마를 닮아 다정하고 생글생글 잘 웃던 제 모습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수도생활 시작하면서 기도 때마다 느꼈던 감사의 정은 다 어디로 갔는지!그제야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다정하고 사랑이 많다고 착각하고 살아왔음을 알았습니다. 옆에 있으면 그냥 좋고 마음 편안한 수사님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어떻게 정을 베푸는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저거다’하고 그분들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관찰 결과, 언제나 친절하게 사람을 대한다고 정이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이란 남을 생각해주는 데서 나오며, 그것은 곧 관심과 배려 그리고 받아들이는 능력이었습니다. 내가 먼저 남의 처지를 알아서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어야 정도 붙고 사람사는 즐거움도 느낄 수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평소 하던 것에서 어떤 것을 덤으로 더 해줄 수 있는 여유가 정이 아닐까요? 말하지 않아도 미리 알고, 눈빛만 보아도’아, 이게 필요하겠구나!’하고 눈치채고, 그를 위한 배려를 해줄 줄 아는것이 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점에서 저는 아직 정을 쌓는 일을 별로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만, 마치 숙제를 하듯, ’배려’라는 겉장만 붙인 ’빈 껍데기 정’만 수북히 쌓아온 듯 합니다. 그래서 때늦은 후회이지만, 이제부터라도 남을 배려하는 사람, 남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심을 자주 합니다. 짧은 수도생활의 경험이지만, 사랑의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혼자서 뭘 잘해보겠다고 날밤을 새우고 났을 때보다, 별 도움도 안되지만 힘들어하는 형제의 곁에 그냥 머물러 주다가 돌아왔을 때에 뭔가 가슴 찡한 것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힘들어 할때 제 등을 토닥거려주신 많은 수사님들, 난처한 상황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감싸주던 동기들. 남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들과 만나고 부대끼고, 그 속에서 느끼는 정’, 바로 그런 것이 체화된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정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한마디 하고나니 대단히 부끄럽습니다. 냉정했던 지난 삶을 되씹어보는 동안, 줄곧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그동안 생각없이 내뱉은 말들,"신경 쓰지 마세요." "그게 아닙니다." "아니, 도대체 저보고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등등.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말들 때문에 충격을 받았을 제 형제들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그들 앞에 저는 제 자신이 가슴으로 살지 못하고, 머리로 사랑을 재단하고 사람을 판단하며 달려왔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이런 제 모습 때문에 저는 사제서품 상본에 "서로 사랑하시오"(요한 15,17)란 말씀을 새겼습니다. 앞으로 ’사랑’에서 ’서로’란 말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끝으로 제가 그동안 잊고 살아온 ’서로’를 위해 가끔 눈을 감고 기도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우리의 ’미운 정, 고운 정’이 당신의 은총안에서

 

조화로운 사랑으로 바뀌게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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