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림동약현성당 게시판

강아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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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2003-06-05 ㅣ No.1510

어렸을때 집에서 딱 한번 강아지를 키웠던 적이 있습니다.

집지키는데 쓴다고 똥개 한마리를 어머니가 어디선가 구해왔습니다. 저야 뭐 별 반응이 없었는데(워낙 쌀쌀맞은 성격이다보니 정이 없어서....), 제 동생은 무척이나 그 강아지를 좋아했습니다. 아버지가 개집도 만들어주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강아지는(이름도 생각이 안나네요....ㅠㅠ) 동생을 무척 따랐습니다. 저야 먹는거 가지고 장난치는 거 싫어하니까 별로  안친했던거 같구요. 그런데 그렇게 몇달이 지났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집지키는데 쓴다는 아주 실용적인 이유로 강아지를 데려왔는데, 이 개가 어느정도 커서도 짖지를 안는 것이었습니다. 짖지도 못하는 개가 어떻게 집을 지키겠습니까? 알고보니 그 개는 벙어리 개였답니다. 개도 벙어리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첨 알았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의 줄다리기가 지루하게 이어졌고, 아무 힘도 없는 불쌍한 동생이 학교에 간 사이에 그 개는 어디론가 보내졌습니다. 개를 좋아하는 집이라더군요.

 

동생은 집에 들어와 아무말도 안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개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빈 개집만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동생의 슬픈 데모는 나중에 개집조차 치워버리는 어머니의 강경대응으로 잊혀진 과거가 되버렸습니다. 저도 그렇구요.

 

군대에 가서 얼마 안되었을때였습니다. 진지 보수 공사라는 거창한 이름의 원시적인 작업을 할때였습니다. 저는 그때 부대에서 제일 졸병이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별 심부름과 작업을 해왔는데, 작업을 하던중 위에 있는 고참이 실수로 언덕에서 돌을 하나 굴러내렸고 하필이면 그 돌이 제 발위에 떨어졌습니다. 무지막지하게 튼튼한 군화를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지 발가락의 발톱이 빠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예 발톱이 그냥 빠지면 좋았겠는데, 이 발톱이 건들건들 하면서 빠지지는 않고 제 신경을 콕콕 찔러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한발 걷지도 못할 정도였는데 그래도 일을 안하는 것은 눈치가 보여 절룩거리며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바람도 안통하는 군화를 신고, 발톰은 빠지려고 하고, 그래도 일이 바쁘니까 저보고 쉬라는 소리도 안하더군요. 그렇게 한 1주일 정도 지나 발에난 상처는 이제 곪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다 그 상처가 더 위사람들에게 발견되서 의무실에서 치료받고 좀 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전까지는 제가 좀 인정받는 쫄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쉬게 되니 바로 위의 고참들이 저를 아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좀 지나 그 의미를 알게되었습니다. ’우리들은 더운날 이렇게 고생하는데, 쫄병주제에 겨우 발톱하나 가지고 쉬어?’라는 의미였습니다. 갑자기 좀 서러운 생각도 들고, 아! 갑자기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구박을 당하는구나 하는 약간 존재론적인 고민도 하게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저는 그 어렸을때 강아지 생각이 났습니다. 아주 까맣게 잊었었는데....

왜 그 강아지가 생각났을까요? 아마도 짖지 못한다고 쓸모없이 취급했던 미안함이 제가 쓸모없는 인간취급을 받으면서 살아났던 것인지.

 

어쨌든 발톱하나 빼면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내입장에서 쓸모없는 것, 필요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누구나, 아니 벌레나 풀도 세상 어느것도 쓸모없는 것은 없으며, 아무도 그것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구요.

 

우리 모두가 알듯이 하느님께서 이모든 것들을 창조하셨고, 또 십자가의 무게 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이제라도 사과하고 싶습니다. "강아지야 미안하다"라고.

 

 

 

ps. 날씨가 더워지니 정신이 오락가락. 몸이 허한가보네요.

언제한번 보신탕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강아지야 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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