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성당 게시판

연중 제24주일 강론 - 보좌신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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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욱 [eliapark] 쪽지 캡슐

1999-09-12 ㅣ No.280

연중 제24주일(가해)

1999. 9. 12.(수색)

. 제1독서 : 집회서27,33-28,9./ . 제2독서 : 로마서14,7-9./ . 복음 : 마태오18,21-35.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어렸을 때, 한 어른으로부터 이런 수수께기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넌센스 퀴즈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무슨 의미가 있는 선문답같기도 하고..., 뭐 어쨌든 저는 그 어른께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고는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뭐가 답일까? 힘이 쎈 사람일까? 아니면 돈이 많은 사람? 아니, 아니, 이런 답일 리가 없지..., 뭔가 의미가 담겨있는 답을 해야 할텐데..., 그럼 누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일까?’

 

 제가 이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어른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평생 한 번도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란다. 평생 아무런 죄도 짓지 않는 사람은, 보통의 다른 사람이 하는 실수나, 짓게 되는 죄를 용서해 주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자기가 한 번도 실수를 하거나,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를 한 사람이나, 죄를 지은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이 답을 들은 저는 잠깐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럼 무서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죄를 많이 지으라는 이야기인가?’ 제가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어른은 또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평생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은, 그 무서운 사람은 누구일까?"

 저는 당연히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도 한 치의 잘못 없이 사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 어른은 이렇게 그 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평생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은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란다."

 저는 이 말에 얼른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교리를 통해서, 그리고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서, 예수님이 죄가 없는 분이란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 어른은 또다시 저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럼, 이 세상에서 가장 안 무서운 사람, 그러니까 죄를 지은 사람들을 다 이해하고 용서해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저는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죄를 가장 많이 지은 사람..." 그러나, 그분은 저의 이런 대답에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지, 아니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시는 분도 바로 예수님이란다. 참 재미있지? 가장 무서운 사람도, 가장 무섭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예수님이네..."

 어린 시절 그 어른과 저의 이 대화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니 죄는 하나도 없으신 분이시고, 그러니까, 인간들이 죄를 지으면 단호히 처벌할 것 같은 무서운 분이셔야 하지만, 오히려 그분은 가장 무섭지 않은, 모든 인간을 이해하시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저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고마운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스스로 온전한 인간이 되신 하느님..., 그래서 인간의 모든 어려움과 힘겨움을 이해하시고 용서해주시며, 자신은 아무런 죄도 없으면서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 위에서 내어주신 예수님..., 그분은 정말 우리를 이해해주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당신 스스로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으셨기 때문에, 또 우리 모두를 지어내신 분이셨기 때문에, 죄지은 우리의 심정을 이해하지 않으셔도 되고, 용서해주시지 않고 처벌하는 무서운 분이셔야 당연했지만, 그분은 뉘우치는 모든 사람을 이해해주시고 용서해주시는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었을까요? 그분은 우리 인간을 진짜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그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완전히 보여주는 것이었고, 당신의 이런 모습으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오늘 복음에서,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가를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당신께서 얼마나 따뜻한 분인지를 잘 알게 해주시면서 동시에, 당신의 큰사랑을 받은 우리도 그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단순히 일곱 번씩 일흔 번, 즉 490번만 용서하라는 뜻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끝없이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도 당신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서도, 죄를 지은 사람을 단죄하지 않고 이해해주고 용서해주는 따뜻한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말씀입니다.

  누가 무슨 죄를 지었건 무조건 모른 척 해주는 ’무관심’도 아니고..., 자기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베풀어주어 그 사람이 계속 그 잘못을 저지르도록 방치하는 ’잘못된 사랑의 용서’도 아닌...,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괴로워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에게...,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해주셨듯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진실한 사랑의 용서를 해주기를..., 예수님은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이 극진한 사랑을 받고도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당연히 갖추셔도 우리가 아무 할말없는 무서운 모습으로 바뀔 것임을, 오늘 복음의 비유를 통해서 경고하고 계십니다. 자기가 탕감 받은 빚이 얼마나 큰지는 잊고서, 자기에게 빚진 사람을 모질게 다루는 사람에게는, 당신께서 아무런 죄도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을 이해해주지 않아도 되는 당신의 무서운 모습을 보이시고, 당신도 똑같이, 모질게 다루실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이 기도는 우리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기도』의 이 부분을 기도할 때,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고, 또 어떨 때는 양심에 찔려 그저 조그마한 소리로 읖조리며 넘어가게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아직 용서하지 못한 그 누구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의 이 부분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며, 우리가 단순히 입으로만 바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 예수님을 그리고 하느님을 무서운 분이 아니라, 따뜻한 분으로 맞아들이기 위해 꼭 실천해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가 내게 용서를 청한다 하더라도, 정말 그 사람을 용서하고 싶지 않고, 내가 받은 상처만큼의 대가를 당연히 치뤄야 한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당신과 하느님께 죄를 짓는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이해해주셨고, 용서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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