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2013년 9월 세나뚜스 지도신부님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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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3-10-21 ㅣ No.196

순교자 성월 

손희송 베네딕토 지도신부님

안녕하십니까?

벌써 한 달이 지났고 9월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밤새 비가 많이 와서 오시는데 불편하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전 중에 비가 그쳤습니다.

저는 주교님들과 함께 서울 대교구 순교자 현양 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서울에 계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서소문 성지에서 9월 마지막 중에 순교자 현양 미사가 있었습니다.

저도 잘 몰랐는데 교구장님을 옆에서 모시고 있다 보니 서소문 성지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소문 성지는 상당히 중요한 성지인데 그동안 성지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서소문 성지는 조선시대에 처형장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새남터나 절두산만을 생각하는데 서소문 밖에 처형장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103위 순교성인 중에서 44분이 처형되셨고, 하느님의 종으로서 시복 청원 중인 27분이 처형되신 최대의 순교성지입니다.

절두산은 병인양요 때 대원군이 불란서 군대가 배를 끌고 와서 서양 오랑캐가 오염시킨 한강물을 천주학쟁이들의 피로 깨끗이 씻겠다고 해서 처형장으로 바뀐 곳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서소문으로 옮겼습니다. 새남터는 국가에 반역을 했던 수괴들을 처형한 장소인데, 서소문은 성문에서 가깝기 때문에 그 추종자들을 우려하여 군문 즉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새남터 영내에서 처형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엥베르 주교님, 김대건 신부님 등이 처형되셨습니다.

순교성인들의 순교의 얼을 느끼기 위해서는 순교 성지를 가꾸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순교의 얼을 느껴야 하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로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순교 성지를 잘 가꾸고 순교성인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가 순교정신을 이어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예언자들의 무덤은 화려하게 꾸미면서도 예언자들의 정신을 이어가지 못하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오늘날 순교정신을 본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백색순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피를 흘리고 순교하는 것이 적색순교인데 비록 피는 흘리지 않아도 이 땅에 살면서 순교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것을 백색 순교라고 하는데 세속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사회는 물신주의, 경제적 양극화, 거짓, 폭력 등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거기에 반해서 물신주의에 대해서는 나눔으로 응답을 해야겠고, 경제의 양극화에 대해서는 경제 정의로, 거짓에 대해서는 정직으로, 폭력에 대해서는 화해의 정신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순교자의 정신을 이어간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렵지만 또한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과 함께 우리는 신앙 안에서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정의배 마르코란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1866년 병인박해 때 72세로 순교하셨습니다. 이 분이 가톨릭 신앙을 가지게 된 계기가 1839년 기해박해 때에 엥베르 주교님과, 모방 신부님가 형장에 기쁘게 끌려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그때부터 천주학이 무엇이길래 멀리 조선에 까지 와서 외국인 신부가 웃으면서 형장으로 끌려갈 수 있는지 천주교 서적을 공부하고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신자가 될 때의 나이가 46세였다고 합니다. 나이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데 그 마음을 움직인 것이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그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기쁘게 살아간다면 오늘날 어려운 사회에서 그 자체로 순교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새롭게 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달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오늘날 순교자의 정신을 삶으로 이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고, 예수님 말씀대로 매일의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런 삶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매일 기도생활에 충실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교자 성월에 이어 10월이 묵주기도 성월로 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모님은 누구보다 예수님 가까이 계셨고 예수님의 삶을 조용히 지켜보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는 십자가상의 고통을 예수님과 나누어서 고통을 당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기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사도행전에도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그분께서 제자들과 함께 모여서 기도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그분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지만 무엇보다 기도하는 분이셨고, 우리는 그런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성모님이시고 교회의 모범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본받아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서 은총을 얻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모님의 굳건한 신앙을 본받아서 우리도 성모님처럼 사는 것인데 그런 면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모님은 기도하는 분이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순교자들의 정신이 우리 삶으로 이어지고 실천되어서 백색순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레지오 단원들이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지만 기도의 양만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 마음을 다해서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는 자세로 해야 하는데 너무 양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의 양이나 단수도 좋지만 거기에 우리의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면 좋겠습니다.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기리는 것은 좋은데, 순교의 정신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성모님처럼 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10월 묵주기도 성월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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