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어느 죽음에 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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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조 [perer] 쪽지 캡슐

2000-04-23 ㅣ No.1727

혼자서 멍하니....앉아 있던중에..

갑자기 생각나는 일이 있네요..

고등학생때의 일입니다..

자전거를 끌고 학교를 나서서 한참을 달렸죠

내리막길에서 속도가 나자 기분이 너무 좋아졌고..

나도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나도참 웃기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쾅 하면서 자전거는 넘어 졌고..

저보다 한참 어린듯한 여학생 하나가 역시 저와 함께 넘어져서 때굴떼굴 구르고 있었죠..

깜짝놀라서 달려가보니 그 학생은 숨쉬기도 가뿐듯 헉헉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깜짝놀란 저는 허겁지겁 그 학생을 업고 근처의 강모 병원으로 달려 갓습니다.

간호사와 의사들은 난리가 나고...

저는 당황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었습니다..

그 학생은 계속 식은 땀을 흘리고..

보호자가 올때까지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옆에서 나도 모르게 지저분한 내 손수건을

꺼내서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습니다..

보호자에게 연락이 가고...

보호자인 그 아이 오빠가 오는걸 확인하고 병원에 연락처를 남긴후에

허겁지겁 병원을 빠져나와 달렸습니다.

그런데 응당 와야할 연락이 한참이나 오질 않았습니다.

오리려 불안한 마음이 계속 생기고...

집에도 이야기하질 못한채 혼자서만 가슴앓이를 하고 있던중..

그 학생 오빠라는 사람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다시 만나고 보니 그 학생과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듯..

처음엔 오빠가 아니라 아빠인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오빠라는 사람에게 아주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죠.

처음에 저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고맙다는 말을 하셨을때 오히려 당황하는 마음을

감출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아이가 백혈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더 그랬죠..

그래서 쓰러진 아이를 병원에 데려다 준것이 고맙다고...

제가 그아이를 자전거로 친일은 알지도 못하시는듯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더군요.

아니면 알고 있지만 말씀을 하지 않으신 걸까요...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고.. 연신 고맙다는 멋적은 말을 들으며 그분과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그아이에대한 기억이 사라질 즈음... 제게는 다시 그 분의 연락이 왔습니다.

연락을 받고 보니 그 아이에대한 기억이 떠오르며, 그기억은 다시 궁금증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분을 만나고..

그분은 아무말도 없이 지저분한(무슨색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손수건을 꺼내

놓으셨습니다.

물론 바로 제 손수건 이었죠..

생각해보니.. 그아이의 땀을 닦아 주다가 침대 옆에 그 손수건을 놓았을때 무의식중에인지

그 손수건을 꽉 잡고 놓질않아 그냥 놔두고 온일이 생각 났죠..

그런데.. 겨우 이 손수건하나 때문에 날 보러 온건 아닐것 같다는생각에.. 무슨 말씀이라도 하시길 기다렸죠....

문제는... 오신이유가 바로 그 손수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는... (말씀하시는 투는이미 예정된일이라는듯....) 이미 세상을 떠났고..

죽기전에 항상 이 손수건을 제게 꼭 돌려 주고 싶어 했다고....

그러면서 어린 저를 잡고 흐느끼는 모습에 저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잘 알지도 못하는 제앞에서 흐느끼시는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리고..

아무것도아닌..손수건 한장을 다시 돌려주고 싶어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며 한참을 슬퍼 했습니다.

마치 제가 한사람의 죽기전 소망 한가지를 하찮은 저의 손수건 한장에 빼앗아 버린듯한

기분에 한참을 멍한 기분에 사로잡혀 살았죠.

지금 다시 떠올리며 생각해보니 참으로 세상은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기심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 아주 하찮은 손수건한장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싶어하며

죽음을 맞이한 소녀가 있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가슴에 잔잔한 여운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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