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시인은 가도 시는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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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monicacho033] 쪽지 캡슐

2000-07-07 ㅣ No.1451

며칠 전 청량리성당 게시판의 시삽 제니가

이런 시를 소개 했었지요.

 

 

 주여

 오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

 

다만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을 주소서. 아멘."

 

이런 시였어요.

 

 내가 이 시를 처음 본 것은 80년대 중반, 서울 한남동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있었던 한 피정에 참가하러 가서였습니다.  유화 분위기의 그림을 곁들여  벽에 걸려 있던 이 시가 좋아서 한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었죠.

 그런데 그 시와 관련된 아주 가슴 뭉클한 일이 있었습니다. 80년대말 개포동성당에 다닐때  한 사제의 서품 축하 미사에서의 일이었어요.

 

 주님의 종으로 태어난  한 젊은 신부의  첫 미사에서 아버지 신부는 이 시를  외우며 강론을 하셨어요.  

 

< 주님 그 앞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갯길을 넘어갈 힘을 주소서. 그가 가는 길에 돌이 저절로 굴러 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넘어지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삼아 넘어가게 하소서...>

 

 간절히 기도하듯 외는 시로써 아들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데  참으로  가슴 뻐근하게  무언가 전달되는게 있었어요.

 세상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제의 길,  참으로 혼자 가야 할 길, 고독하고  쉽지않은 길이기에 주님께서 함께 손잡아 이끌어 주시길 절절이 기원하는  아버지 신부의 마음 - 잘은 모르지만 얼마만큼은  그 심경을 알  것 같았어요.

 

  그 시를 지은 사람은 일찌기 단테의 신곡을 번역했고  가톨릭시즘 넘치는  시로 한국 가톨릭 문학을 일궈간  고 최민순 신부님으로 알고 있어요.

 신부님은 이 시말고도  요즘 우리가 부르는 수많은 성가들의 작사자이시지요. 60년대  당시  함께 신학교에 교수 신부로 계시던 작곡가 이문근 신부님과 명콤비를 이뤄 주옥같은  성가를 만드셨지요. 유명한 복자 찬가 등이 이들 콤비 신부님들의 창작품이지요.

  최민순 신부님은 60년대 말인가에 비교적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단짝을 잃은  이문근 신부님은  말년에 작곡을 거의 못하시고 약주로 친구를 잃은 슬픔을 새기셨죠.

 

 오랜만에 그 시를 읽으니 오래전 일이  회상되고 시의 힘 -  사람은 가도 시는 남아 영원히 사랑 받는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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