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있는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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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1999-12-07 ㅣ No.876

어떤 예쁜 소녀가 저에게 메일을 보내 제 고민에 대한 답을 보냈습니다. 재미있어서 여기 그대로 복사해서 올립니다.

 

----- Original Message -----

From: 염혜정

To: 서 기원

Sent: Tuesday, December 07, 1999 3:45 PM

Subject: 고민1에 대한 조그만 답변

 

 

아직도 어릴 적(지금도 어리지만) 기억 속에 착하게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어느 신부님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저는 단순한 아이라 그냥 그대로 굳게 믿고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지요. 대신 그때부터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위해 후미진 곳을 찾아 종일 헤메이는 우매한? 아이가 되어버렸어요. 그러니깐 이번엔 신부님이 덧붙이셔서 성당에도 다니고 착하게도 살아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또 저는 휴지나 열심히 줍고 성당에 코빼기만 보여주면 그렇게들 얘기하는 천국행 열차를 타게 되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이러한 저의 경험에 비춰보아 아이들의 특성을 말하자며 애들은 말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거에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수 있지만 또 누구나 간과해 버리기도 쉬운 이야기 입니다. 말로 다 전달 못하는 세상, 하물며 우리 아이들에게 오죽 어려우랴? 하고 내심 걱정 하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그 누구에게나 ’눈높이식 대화’ 가 필요함을 강조 하고 싶습니다.

사실 말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아이들의 그 순수한 세상이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글자안에 감춰진 함축적인 의미나 미묘하고 복잡한 언어들 - 자칫 거짓이나 오해로 범벅 될수있는 세상과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할테니까요.이런 작은 토끼들에게 "착하게 살아라" 란 말은 "착하게 살면 성당 안 와도 돼"

하고 들릴 수 있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초등부 선생님을 정말 해보고 싶었어요. 발렌타인 데이에 고 작은 입에다 초콜릿을 하나씩 물려줄 수 있는, 고심고심 쓴 편지를 아이들 호주머니 속에 쏘옥 넣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교리를 가르치고 착한게 가장 바른 것이다 라는 상투적인 말만 늘어 놓는 것 대신에 함께 뛰어놀아주고 "이렇게 건강한 육체를 주신 하느님이 넘넘 고맙지? " 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 봤음 좋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세상에 모든 어른들에게 필요한 자세이며 또 갖춰야 할 자세 입니다. 이런게 곧 눈높이식이 아닐까요? 눈높이식 강론도 같은 맥락 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라 하고 미리 답을 제시 하는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하고 이끌어 내는 식의 말씀들이 훨씬 빛을 발하리라고 봅니다. 착한일이 어떤 것이지? 하고 생각할 시간을 준 연후에

친구들과 예수님을 만나러 성당에 오는것이 착한 일중에 가장 으뜸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지요. 착한일 이란 한가지 갖고만 되는 것이 아님을 꼬마가 이해 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들이 너무 이상적인 것만은 아닐까요? 어찌하였든 선생님이란 일을 직접 해봐야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신부님의 고민1에 명쾌한 답변은 못드려도 조그마한 길잡이가 되었음 좋겠네요. 12시간의 노고가 헛된 일이 아니길 바라겠습니다.

근데 말이에요 신부님! 아이들이 저를 선생님으로나 보아 줄까요? 대들면 기냥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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