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5년 9월호 [훈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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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5-08-26 ㅣ No.25

제 방 책상 서랍에는 상본이 한 장 있습니다. 종이는 낡았고 그림은 바랬고 그리 유명한 화가의 그림도 아닌, 그저 작고 초라한 상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그렇겠지만, 저는 그 상본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일과 사람이 있습니다. 그 상본은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첫영성체 기념으로 받은 것입니다. 저는 그 상본을 볼 때마다 첫영성체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들, 인자하신 신부님의 모습, 자상하신 수녀님과 함께했던 교리 공부, 개구쟁이 친구들과 함께 성당 마당에서 뛰어놀았던 일, 그리고 처음으로 영성체를 했던 일 등이 떠오릅니다. 그 상본은 그저 작은 종이지만, 제게는 그때의 시간과 사건을 기억하게 해주고 느끼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물건입니다.


성사란 이런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건이 하나의 상징이 되고, 그 상징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과 장소에 새로운 의미들을 보여줍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이런 성사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과 일을 인간이 보고 느끼고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께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보물인 성사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일곱 가지 성사가 있습니다. 모든 성사가 다 중요하고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사는 성체성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고, 가장 자주 접하고, 가장 큰 예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날 제자들과 함께 성체성사를 제정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제사를 통해서 온전히 당신을 봉헌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기뻐했던, 빵을 많게 하시는 기적도 당신에게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어이 당신의 몸과 피로써 당신의 제자들과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르지 않는 양식을 주십니다. 이처럼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희생이라는 아름다운 바탕 위에서 피어난 꽃과 같은 것입니다. 매일 피어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과 사랑을 전해줍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성제를 통해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십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작은 밀가루 빵과 한 모금의 포도주지만, 그 성사성을 아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느끼고, 예수님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시면서 당부하십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이 커다란 선물을 움켜쥐고 혼자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당부대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선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선물은 나눌 때 더 커지고 더 아름다워집니다. 모든 레지오 단원들은 같은 사명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도와 봉사라는 아름다운 무기를 가진 레지오 단원들의 가장 근본적인 힘은 성체성사로부터 시작되고, 성체성사로 마무리됩니다. 기도와 봉사를 통해서 이 세상에, 이 땅에, 이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아름다운 꽃을 봉헌하는 것이야말로 레지오단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ꡒ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ꡓ(1고린 11,26).

_김숭호 안드레아 신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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