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2013년 8월 세나뚜스 지도신부님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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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3-09-29 ㅣ No.195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며

손희송 베네딕토 지도신부님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달 말에는 비가 많이 오더니 8월 달에는 폭염이 기승을 부려서 고생이 많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더운 여름 잘 견디고 여기까지 오셔서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8월의 마지막 주를 보내고 있는데, 9월 1일부터 순교자 성월이 시작됩니다. 매번 순교자 성월을 앞두고 순교자들의 정신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실천은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을 보면 순교자 성월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구원에 이르는 좁은 문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많은 사람이 들어가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집 주인이 문을 닫아걸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저희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길가에서 저희들을 가르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나는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하느님과, 사랑이시며 자비 자체이신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즉 관계입니다.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과 함께 친교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지내게 되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행복의 원천이신 하느님과 같이 지내게 될 때 우리는 정말 행복하게 되고 그것을 구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과 완전한 친교를 이루는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가 거기에 응답하면 하느님과의 친교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 들어야 한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사랑이시고 자비이시며 정의 자체이신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살아간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하느님처럼 정말 사랑하는 사람, 자비로운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나중에 하느님을 만났을 때 그분과 친교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문을 안 열어주니까, “저희는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교회 안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이지만, 세례를 받고 교회 안에 들어왔다고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완전히 구원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것이 좁은 문이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만, 그 선물 안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면 그것으로 구원이 끝난 것처럼 생각해서 착하게 사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강제성을 두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구원이 하느님의 은총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구원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이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좁은 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좁은 문이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좁은 문, 세상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남에게 복수가 아니라 자비를 베푸는 것,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주는 것, 불의가 아니라 공정하게 사는 것 등 정말 요사이 같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렇게 사는 것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언제 부터인가 우리 천주교가 사회 안에서 존경받고 칭찬받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공직자들이 세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자답게 사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그런 이야기도 듣습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이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신 순교자들을 본받아서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오늘 한국 사회를 사는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좁은 문을 통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몇 가지 부연해서 말씀드리면, 우리 사회에는 말의 폐해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정말 가려서 해야 하고 생각해서 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말들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인터넷에 올리는 악글이나 댓글 하나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 알아도 나쁜 말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신자들만이라도 말을 신중하게 하고 가려서 하고, 다른 사람을 욕하기 보다는 칭찬을 해주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신자답게 사는 것인데,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이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깨달아 일상적인 말을 할 때 조심해서 가려서 생각해서 해야겠습니다. 말을 배설하듯이 하면 정말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는 거짓이 많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불의를 저지르고 거짓을 저지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 천주교 신자들만이라도 정직한 사람이 되어 천주교 신자들의 말과 행동은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된다는 것이 받아들여진다면 굉장히 좋은 모범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말로 정의를 외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얼마나 정의롭게 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적인 것을 공적으로 사용하고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공적인 것을 아껴서 나의 사적인 것처럼 사용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그런 것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얼마나 정의롭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부터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혼탁한 세상의 흐름을 따르면 우리는 넓은 길로 가는 것이고, 그것은 구원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예수님 말씀대로 세상을 거슬러 세상과 반대되는 길을 가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구원의 길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길이 어렵고 힘든 길이기는 하지만 우리에 앞서 많은 분들이 성공적으로 그렇게 사셨습니다. 순교자들이 그렇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성모님께서도 좁은 문을 걸어가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의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라면 좁은 문을 걸어가신 성모님을 본받아서 우리 스스로도 사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레지오 공동체 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 역시 사회 안에서 빛과 소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며 이럴 때일수록 말을 적게 하고 작은 행동 하나를 제대로 한다면 레지오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이 사회 안에서 예수님이 부탁하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순교자 성월 한 달만이라도 마음을 가다듬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겠다는 그런 마음의 자세를 확고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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