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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 번역 용어들인 교만, 경멸, 거만, 자만, 오만의 차이점들 capital 1444_piety prid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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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3 ㅣ No.1672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게시자 주: 최근에 들어와 이 글을 작성하게 된, 대단히 고통스러운, 동기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3_Sirach_10_13.htm <----- 필독 권고

 

질문 1: 성경 본문에서, 차둉(借用) 번역 용어들인 교만, 경멸, 거만, 자만, 오만의 차이점들은 무엇인지요?

 

질문 1에 대한 답변:

 

1-1. "새 번역 성경" 본문에서, 단 한 번, 이들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 중의 네 개가 한 문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절은, 다음과 같이, 예레미야서 48, 29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old2&code=130&JangNo=48

(발췌 시작)
우리는 모압 주민의 교만에 대하여, 그가 몹시 교만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거만과 교만과 오만과 그의 자만에 대하여 들었다.

(이상, 발췌 끝) 

 

1-2.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NAB(New American Bible) 예레미야서 48,29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PQQ.HTM

(발췌 시작)

Wej have heard of the pride of Moab, pride beyond bounds: His loftiness, his pride, his scorn, his insolence of heart.

(이상, 발췌 끝)

  

1-3. 1970년에 초간된 NAB(New American Bible) 집회서 10,12-13 은 다음에 있습니다. NAB 본문에서 "pride", "arrogance", 그리고 "insolence"가 또한 등장하는 구절들은,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The sin of pride"라는 소제목이 붙은, 집회서 10,6-18인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바로 이 단락이 "새 번역 성경" 집회서 10,13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전후 문맥이라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MC.HTM

(발췌 시작)

6 1 No matter the wrong, do no violence to your neighbor, and do not walk the path of arrogance.
7 Odious to the LORD and to men is arrogance, and the sin of oppression they both hate.
8 Dominion is transferred from one people to another because of the violence of the arrogant.
9 2 Why are dust and ashes proud? even during life man's body decays;
10 A slight illness - the doctor jests, a king today - tomorrow he is dead.
11 When a man dies, he inherits corruption; worms and gnats and maggots.
12 The beginning of pride is man's stubbornness in withdrawing his heart from his Maker;
13 For pride is the reservoir of sin, (<--- RSV의 번역 오류가 바로잡아 졌음. 6-16에 대한 각주를 또한 읽도록 하라) a source which runs over with vice; Because of it God sends unheard-of afflictions and brings men to utter ruin.
14 The thrones of the arrogant God overturns and establishes the lowly in their stead.
15 The roots of the proud God plucks up, to plant the humble in their place:
16 He breaks down their stem to the level of the ground, then digs their roots from the earth.
17 The traces of the proud God sweeps away and effaces the memory of them from the earth.
18 Insolence is not allotted to a man, nor stubborn anger to one born of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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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18] Glory displayed through arrogance and pride is false and displeasing to God and men, because founded on dust and ashes (⇒ Sirach 10:6-11). It is the denial of the glory due to God, and therefore the source of all sin (⇒ Sirach 10:12-13). Even the memory of the proud is destroyed and God transfers their power to the lowly (⇒ Sirach 10:14-18).

 

1 [6-16] 오만(arrogance)교만(pride)에 의하여 과시된 영광(glory)은 거짓이며(false) 그리하여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먼지와 재들 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집회 10,6-11). 그러한 영광은 하느님께 기인하는 영광에 대한 부정(denial)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 모든 죄의 원천(source)이다(집회 10,12-13). 심지어 교만한 자(the proud)들의 기억도 파괴되고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들의 힘을 미천한 자(the lowly)들에게 전달하신다(집회 10,14-18).


2 [9-10] The text is uncertain. Its general implication is that man deteriorates physically even while alive: a slight illness today may be followed by death tomorrow. The uncertainty of life leaves no room for p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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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1-4. 다음은 Merriam_Webster Learner's Dictionary에 주어진 단어들에 대한 설명들이며, 이들에 대응하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은, "새 번역 성경" 예레미야서 48,29에서 선정된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을 그대로 따르고자 하였으나, 그러나, (i) 영어로 "scorn"으로 번역된 표현이, "경멸"로 번역되는 대신에, "오만"으로 번역되고, 그리고 (ii) 영어로 "insolence"로 번역된 표현이, "오만"으로 번역되는 대신에, "자만"으로 번역된 것은, NAB 혹은 "새 번역 성경"의 예레미야서 48,29에 번역 오류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오른쪽에 검게 색칠한 대부분의 우리말 차용 번역 용어들은 세속의 영어 사전에 주어진 것들인데, 아래의 제2-1항에 발췌된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우리말 단어들의 의미를 또한 고려하여, 제시하였습니다:

 

출처: 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pride

        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insolence 등

(발췌 시작) 

pride: 교만(우리말본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57항)

a feeling that you are more important or better than other people ,

그대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거나 혹은 나은 자라는 (심장 안쪽에 있는) 어떤 느낌.

 

scorn: 경멸(업신여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71항)

a feeling that someone or something is not worthy of any respect or approval , 어떤 자 혹은 어떤 사물이 존경/존중 혹은 승인할 가치가 없다는 (심장 안쪽에 있는) 어떤 느낌.

 

lofty: 

rising to a great height : very tall and impressive , 고원(高遠)한

어떤 커다란 높이로 오르는: 매우 키가 커고 그리고 인상적인.

showing the insulting attitude of people who think that they are better, smarter, or more important than other people , 거만한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더 낫거나, 영리하거나, 혹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think) 사람들의 모욕적인 태도를 (심장 바깥쪽으로) 나타내는

 

haughty:

having or showing the insulting attitude of people who think that they are better, smarter, or more important than other people , 거만한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더 낫거나, 영리하거나, 혹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think) 사람들의 모욕적인 태도를 (심장 안쪽에) 가지고 있거나 혹은 (심장 바깥쪽으로) 나타내는

 

conceit:

too much pride in your own worth or goodness, 자만(自慢)

자신 고유의 가치 혹은 선함에 대하여 (심장 안쪽에서) 너무 크게 자부하는

 

arrogant:

having or showing the insulting attitude of people who believe that they are better, smarter, or more important than other people : having or showing arrogance , 오만한 [漢典: arrogant]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더 낫거나, 영리하거나, 혹은 더 중요하다고 확신하는(believe) 사람들의 모욕적인 태도를 (심장 바깥쪽으로) 보이는: 오만을 (심장 안쪽에) 가지고 있거나 혹은 (심장 바깥쪽으로) 나타내는

 

insolent:

rude or impolite : having or showing a lack of respect for other people , 무례한

거친 혹은 무례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경/존중에 있어서의 어떤 결여를 (심장 안쪽에) 가지고 있거나 혹은 (심장 바깥쪽으로) 나타내는

 

boast:

to express too much pride in a person's own qualities, possessions, or achievements

자신의 고유한 특성들, 소유물들, 혹은 성과들에 대하여 너무 커다란 자부심을 (심작 바깥으로) 표현하다. 자랑하다

 

glory in (something):

to feel or show great joy or pleasure because of (something) 자랑하다.

(어떤 사물) 때문에 커다란 기쁨 혹은 즐거움을 (심장 안쪽에서) 느끼거나 혹은 (심장 바깥쪽으로) 나타내다

또한 cf. http://www.oxforddictionaries.com/definition/english/glory 하라.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1-4:

(1) 따라서, pride(교만) 안에 haughty(거만)이 있고, 그리고 haughty(거만) 안에 arrogant(오만)가 있음을 알게 되었음. 즉, 오로지 교만한 자들 중에서만 거만한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오로지 거만한 자들 중에서만 오만한 자들이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음.

 

(2) 따라서, scorn(경멸) 안에 insolence(무례)이 있음을 알게 되었음. 즉, 오로지 경멸하는 자들 중에서만 무례한 자들이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음.

 

(3) 그런데, "lofty"라는 형용사 그 자체는, 예를 들어, 다음에 있는 NAB 본문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본문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loftiness,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9/6T.HTM [3번] = 고원(高遠)함

lofty,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2/9Q.HTM [28번] = 고원(高遠)한

 

"Lofty eyes are a sign of pride, inasmuch as it excludes respect and fear[고원(高遠)한 눈빛은, 그것이 존경과 두려움을 배제하는 한, 교만의 한 표시이다]." (신학 대전 IIa IIae, q161, a2

 

"lofty"  "summa theologica" site:newadvent.org

 

따라서,  "새 번역 성경" 예레미야서 48,29에서, 영어로 "loftiness" 로 번역되는 표현은, 전후 문맥 안에서 "교만"에 대한 더 상세한 서술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두려움과 존경이 배제되었음을 자동적으로 의미하므로, 아래의 제2-1항에 나열된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설명들에 의하면, 이 표현은 "거만"으로 차용(借用) 번역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4) 다른 한편으로, NAB에서 "scorn"(경멸) 으로 번역된 표현은, 다음의 히브리어 어원 정보에 의하면, "새 번역 성경"에서처럼, "arrogance"(오만)으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즉, NAB번역 오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http://biblehub.com/text/jeremiah/48-29.htm

 

(5) 그리고 바로 위의 히브리어 어원 정보에 의하면, "새 번역 성경" 예레미야서 48,29에서 "자만"으로 번역된 표현은 영어로 "haughtiness"에 대응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NAB에서처럼 "insolence"(번역 오류)가  아니라, 또한 "거만"으로 번역되었어야 하는데, 그러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i) 이미 앞 부분에서, 바로 위의 히브리어 어원 정보에서 영어로 "loftiness" 에 대응하는 해당 표현이, 이미 "거만"으로 번역되었기에, 그리고 (ii) 우리말 표현에 "거만심"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주: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있지 않음), 대신에 "자만심"으로 번역이 된 것 같습니다.

 

(6)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새 번역 성경" 예레미야서 48,29에 선정된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차용(借用) 번역 용어의 의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우리말 단어 그 자체의 의미와 동일한지의 여부는 아직 모르고 있으며,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들에 있어, "지중해 지역 문화권"과 "한문 문화권"은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동일하지 않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2.

2-1.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우리말 단어들에 대한 설명들입니다:

 

(발췌 시작)

자랑: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이나 물건, 일 따위가 썩 훌륭하거나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임을 드러내어 말함. 또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리.

 

건방: 젠체하며 주제넘은 태도.

 

교만(驕慢):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1)

경멸(輕蔑): 깔보아 업신여김.

거만(倨慢): 잘난 체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데가 있음. 

오만(傲慢):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 또는 그 태도나 행동. [漢典: arrogant]

자만(自慢):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냄.

 

허영(虛榮):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이 겉모습뿐인 영화(榮華).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2)

 

허무(虛無)

「명사」

「1」아무것도 없이 텅 빔.
「2」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져 매우 허전하고 쓸쓸함.
¶ 인생의 허무/허무와 절망에 빠지다/동생의 장례식을 치른 그는 삶에 대한 허무를 느꼈다.
「3」『철학』노자의 학설에서, 형상이 없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우주의 본체.
「4」『철학』유(有)에 대립하는 개념만 있고, 실재하지 아니하는 무의미한 무(無)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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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1) (i) 세속의 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바로 위에 발췌된, "교만"에 대한 설명과, (ii) 영어로 "pride"로 번역되는 표현으로서 우리말로 "교만"으로 차용 번역되는 용어에 대한 "신학 대전" 본문에 주어징 설명이, 얼마나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정밀하게 비교/검토하기 위하여, 다음의 글을 꼭 읽도록 하라: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5.htm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과도한(inordinate) 탁월욕망은 교만(superbia, pride)이라고 불리는 죄이나,
과도(過度)하지 않은 탁월욕망(卓越欲望, the desire for excellence)은 죄가 아니다.

 

(2) 세속의 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바로 위의 본문 중에 발췌된 "교만"에 대한 설명은, 주로 다른 이를 비난할 때메 사용되는 "교만"이라는 단어의 의미이나, 그러나 이 설명은 이 용어의 정의(definition)가 아난데, 왜냐하면 그러한 설명은 "신학 대전"에 주어진 "교만(pride)" 용어의 정의(definition)의 어떤 부수적(accedental) 설명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씀인고 하면, 그 언행에 있어 "잘난 체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그리고 건방지지 않은 자들" 중에도, 즉, 예의 바르고, 겸손하고, 그리고 공손한 자들 중에도, 여전히 "교만한 자들"이 있기 떄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신학 대전"에 주어진 설명들에 근거하여 "교만(pride)"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그 방법을 제시히고 있는 수덕서인 판토하 신부님의 "칠극/칠극대전"이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저서였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 중의 질문 3에 대한 답변을 꼭 읽도로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3.htm <----- 필독 권고

 

(#2) 게시자 주:  (i) 세속의 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바로 위에 발췌된, "허영"에 대한 설명과, (ii) 영어로 "vainglory"로 번역되는 표현으로서 우리말로 "허영"으로 차용 번역되는 용어에 대한 "신학 대전" 본문에 주어징 설명이, 얼마나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정밀하게 비교/검토하기 위하여, 다음의 글을 꼭 읽도록 하라: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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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1:

(1)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에 의하면, 건방 중에 거만이 있음. 즉, 오로지 건방진 자들 중에서만 거만한 자들이 있을 수 있음.

 

(2) 표준국어대사전 설명에 주어지 의하면, 거만 안에 오만이 있음. 즉, 거만한 자들 중에서만 오만한 자들이 있을 수 있음.

 

(3)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에 의하면, 순수한 우리말인 "건방"과 한자 단어인 "교만"의 차이점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음을 알 수 있음.

 

2-2. 그런데, 왜냐하면, 예를 들어, 우리말본 성경의 본문에서 사용되는 우리말 단어들은 모두가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이기 때문에, 이들 차용 번역 용어들의 경우에 있어, 해당 단어가, (i) 하느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우리의 자연적 지성(natural iantellect)만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초자연적 개념(a supernatural concept)을 나타내는지, 혹은 (ii) 우리의 자연적 지성(natural intellect)만으로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자연적 개념(a natural concept)을 나타내는지에 무관하게, 우리말로 번역되기 이전의, 논리적으로 등가로 대응하는, 단어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위의 제1-4항에서 일부 영어 단어들의 의미들에 대하여 고찰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바로 이 지적을 기억하면서, 이어지는 제3항에서, 영어로 "pride"로 번역되는, 세속의 단어가 아닌, 챠용(借用) 번역 용어인 "교만"의 의미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세속의 우리말 단어인 "교만"의 의미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다르지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3.

3-1.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vanity(허무)" 혹은 "vainglory(허영)"에 대한 설명입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vanity(허무)""vainglory(허영)"을 말합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v/v016.htm
(발췌 시작)

VANITY

  

Or vainglory, an inordinate desire to manifest one's own excellence. It differs from pride, which is the uncontrolled desire for self-esteem, in that vanity primarily seeks to show others what a person has or has achieved. A vain person looks for praise from others and may go to great lengths to obtain it. More commonly, vanity is associated with an exaggerated importance attached to multiple details, especially external appearances, which in no way contain the value attributed to them. It is ostentation in fashion, wealth, or power regarded as an occasion of empty pride. Thus where pride, though sinful, may have some foundation in fact for whatever one prides oneself on being or having done, vanity is the idle effort to obtain recognition or respect for what a person does not have a rightful claim to. Vanity is attributed to shams, which lack substance and are deceitful (like human praise); or to things without solidity and permanence (such as physical beauty); or to means that fail in their purpose (such as vaunting one's own reputation). It is an inflated pride and, as such, is venially sinful.

 

허무(vanity)

 

혹은 허영(vainglory)인, 자신의 고유한 탁월(excellence)을 명백하게 나타내고자(manifest) 하는 어떤 과도(過度)한(즉, 올바른 이성 혹은 선한 판단에 의하여 지령받는 범위를 초과하는) 욕망(an inordinate desire)을 말합니다.(*1) 이 욕망은, 자부심(self-esteem)에 대한 과도(過度)한 욕망(inordinate desire)인 교만(pride)과, 허무/허영(vanity)이 한 인격(a person)이 가지고 있는 바를 혹은 이미 성취한 바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자 우선적으로(primarily) 시도함에 있어, 다릅니다 허무한/허영적인 인격(a vain person)은 다른 이들로부터 찬양(praise)을 기대하며 그리고 이 찬양을 획득하기 위하여 무슨 짓이든지 할 수도 있습니다(may). 더 통상적으로, 허무/허영은 다수의 지엽적(枝葉的)인 일들에 고착된 어떤 과장된 중요성(an exaggerated importance)과, 특히, 어떠한 방식으로도 그들에게 [그 원인으로서] 귀착시켜지는(attributed to)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외면적 모습(external appearances)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공허한 교만(empty pride)의 한 경우로서 간주되는 유행(fashion), 부(wealth), 그리고 힘(power)에 있어 겉치레(ostentation)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 비록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자가 행하게 되었거나 혹은 이미 행한 바에 대하여 스스로 자랑하는(prides onself on) 무엇이든지에 대한 사실에 어떠한 기초를 가질 수도 있음(may)에 반해(where), 허무/허영은 한 인격이 그쪽으로 어떤 올바른 권리(a rightful claim)를 가지지 못하는 바에 대한 인정(recognition) 혹은 존중(respect)을 획득하기 위한 근거 없는(idle) 노력입니다. 허무/허영은 [그 원인(cause)으로서], 본체(substance)가 결핍된 그리하여 (인간에 대한 찬양처럼) 기만적인 속임(shams)에 귀착시켜지거나(is attributed to), 혹은 (신체적 아름다움과 같은) 견실성(solidity)과 항구성 없는 사물(things)에 귀착시켜지거나, 혹은 (자신의 고유한 평판을 치켜세우는 행위와 같은) 그 목적에 일치하는 수단(means)에 귀착시켜집니다. 허무/허영어떤 부풀려진 교만(an inflated pride)이며 그리하여, 그러한 것으로서, 소죄적으로 죄가 있습니다(venially sinfu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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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따라서,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과도한(inordinate) 영광욕망은 허영(vainglory)이라고 불리는 죄이나,
과도(過度)하지 않은 영광욕망(榮光欲望, the desire for glory)은 죄가 아니다.

 

(*2) 번역자 주: 이 근거는 다음에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132, a3이다:

http://www.newadvent.org/summa/3132.htm#artic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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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2.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용어집"에 주어진 "pride(교만)"에 대한 설명이며, 괄호 안의 번호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유관 항의 번호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cc_glossary.htm#p

(발췌 시작)

PRIDE: One of the seven capital sins. Pride is undue self-esteem or self-love, which seeks attention and honor and sets oneself in competition with God (1866).

 

교만(pride): 칠죄종(seven capital sins)들 중의 하나를 말합니다. 교만은, 주의/주목(attention)과 명예/귀(貴)(honor)를 추구하는 그리고 자기 자신을 하느님과의 경쟁의 상태에 두는, 과도한(undue) 자부심(self-esteem) 혹은 자기 사랑(selfe-love)을 말합니다(CCC 제1865할)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3.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pride" 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p/p418.htm

(발췌 시작)

PRIDE

 

교만(pride) 

 

An inordinate esteem of oneself. It is inordinate because it is contrary to the truth. It is essentially an act or disposition of the will desiring to be considered better than a person really is. Pride may be expressed in different ways: by taking personal credit for gifts or possessions, as if they had not been received from God; by glorying in achievements, as if they were not primarily the result of divine goodness and grace; by minimizing one's defects or claiming qualities that are not actually possessed; by holding oneself superior to others or disdaining them because they lack what the proud person has; by magnifying the defects of others or dwelling on them. When pride is carried to the extent that a person is unwilling to acknowledge dependence on God and refuses to submit his or her will to God or lawful authority, it is a grave sin. The gravity arises from the fact that a person shows contempt for God or of those who take his place. Otherwise, pride is said to be imperfect and venially wrong.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과도(過度)한(즉, 올바른 이성 혹은 선한 판단에 의하여 지령받는 범위를 초과하는) 존중(an inordinate esteem)을 말합니다.(*) 이 존중은 과도한데 왜냐하면 이 존중이 진리(the truth)에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이 존중은 본질적으로, 한 인격이 실재하고 있는(really is) 것보다 더 나은 자로 간주되기를 욕망하는(desiring), 의지(the will)의 어떤 행위(act) 혹은 성향(disposition)입니다. 교만은 다음과 같이 서로 다른 방식들로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may): (i) [하느님의] 선물들과 소유물들에 대하여, 마치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게 된 것들이 아닌 것처럼, 개인적 공(personal credit)을 인정받고자 함으로써; (ii) 성취들에 있어, 마치 그들이 주되게 하느님의 선하심과 은총(grace)의 결과가 아닌 것처럼, 자랑함(glorying in)으로써; (iii) 자신의 결함들을 축소함으로써 혹은 실제로 소유하지 못한 질(質)/특성(qualities)들을 주장함으로써; (iv) 다른 이들보다 자기 자신이 우수하다고 견지함으로써 혹은, 왜냐하면 다른 이들이 자신감있는 당사자(the proud person)가 가지고 있는 바에 결핍되기 때문에, 그들을 멸시함(disdaining)으로써; (v) 다른 이들의 결함들을 확대함으로써 혹은 이 결함들 위에 남아 있음(dwelling on)으로써. 교만이, 한 인격이 하느님에 종속되어 있음을 기꺼이 인정하고자 하지 않는 정도에까지, 유지되고 그리고 하느님 혹은 적법한 권위 쪽으로 당사자의 의지를 종속시키는 것을 거부할 때에, 그러한 교만은 한 개의 중대한 죄(a grave sin)가 됩니다. 이 중대성(the gravity)은 한 인격이 하느님에 대한 혹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경멸(contempt)을 나타낸다는 사실로부터 일어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교만은 불완미하다(imperfect)고 말해지고 그리고 소죄적으로 잘못(venially wro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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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여기에 주어진 이 문장은, 다음에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162에 주어진 설명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며,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6.htm

 

그러나 이 문장이 "교만(pride)"의 정의(definition)는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아래의 제3-4항에 발췌된 영어 가톨 대사전에 "교만"의 정의(definition)가 주어지고 있는데, 그런데 이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q84, a2에 주어진 것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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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not all sins are pride, it can lead to all sorts of sins, notably presumption, ambition, vainglory, boasting, hypocrisy, strife, and disobedience. Pride strives for perverse excellence. It despises others and, depending on its perversity, even looks down upon God. The remedies for pride are a sincere knowledge of oneself, the acceptance of daily humiliations, avoidance of even the least self-complacency, humble acknowledgment of one's faults, and prayerful communion with God.

 

모든 죄들이 교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만(pride)은 죄들의 온갖 종류들 쪽으로, 특히 주제넘음/무례(無禮)/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1), 야망(ambition), 허영(vainglory), 자랑(boasting, 즉, 자기 자신 위로 자기(self)를 들어올리는 행위), 위선(hypocrisy), 투쟁(stife), 불순종(disobedience) 쪽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교만은 정도를 벗어난 탁월(perverse excellence)을 얻고자 노력합니다. 교만은 다른 이들을 깔보며(dispises) 그리하여, 그 정도를 벗어남의 상태에 따라(depending upon), 심지어 하느님을 내려다 봅니다. 교만의 치료제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진솔한 앎, 일상의 창피당함(humiliations)들의 받아들임, 심지어 최소한의 자기 만족(self-complacency)의 회피, 자신의 결함들에 대한 겸손한 인정, 그리고 하느님과 독실한(prayerful) 하나 됨(communion, 통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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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바로 이 "주제넘음/무례(無禮)/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은, [여섯 개의 성령에 거스르는 죄(성령 모독죄)들 중의 하나인, 따라서] 희망(hope, 망덕)에 반하는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능가하는 바를 시도하고자 하는 욕망(desire)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이  "주제넘음/무례(無禮)/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에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에 주어진 더 자세한 설명의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0.htm

 

(#) 번역자 주: 바로 이 희망(hope, 망덕)에 반하는 죄인 "주제넘음/무례(無禮)/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에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에 주어진 더 자세한 설명의 글들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2.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7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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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4. 다음은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pride"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cathen/12405a.htm

(발췌 시작)

Pride

 
Pride is the excessive love of one's own excellence. It is ordinarily accounted one of the seven capital sins. St. Thomas, however, endorsing the appreciation of St. Gregory, considers it the queen of all vices, and puts vainglory in its place as one of the deadly sins. In giving it this pre-eminence he takes it in a most formal and complete signification. He understands it to be that frame of mind in which a man, through the love of his own worth, aims to withdraw himself from subjection to Almighty God, and sets at naught the commands of superiors. It is a species of contempt of God and of those who bear his commission. Regarded in this way, it is of course mortal sin of a most heinous sort. Indeed St. Thomas rates it in this sense as one of the blackest of sins. By it the creature refuses to stay within his essential orbit; he turns his back upon God, not through weakness or ignorance, but solely because in his self-exaltation he is minded not to submit. His attitude has something Satanic in it, and is probably not often verified in human beings. A less atrocious kind of pride is that which imples one to make much of oneself unduly and without sufficient warrant, without however any disposition to cast off the dominion of the Creator. This may happen, according to St. Gregory, either because a man regards himself as the source of such advantages as he may discern in himself, or because, whilst admitted that God has bestowed them, he reputes this to have been in response to his own merits, or because he attributes to himself gifts which he has not; or, finally, because even when these are real he unreasonably looks to be put ahead of others. Supposing the conviction indicated in the first two instances to be seriously entertained, the sin would be a grievous one and would have the added guilt of heresy. Ordinarily, however, this erroneous persuasion does not exist; it is the demeanour that is reprehensible. The last two cases generally speaking are not held to constitute grave offences. This is not true, however, whenever a man's arrogance is the occasion of great harm to another, as, for instance, his undertaking the duties of a physician without the requisite knowledge. The same judgment is to be rendered when pride has given rise to such temper of soul that in the pursuit of its object one is ready of anything, even mortal sin. Vainglory, ambition, and presumption are commonly enumerated as the offspring vices of pride, because they are well adapted to serve its inordinate aims. Of themselves they are venial sins unless some extraneous consideration puts them in the ranks of grievous transgressions. It should be noted that presumption does not here stand for the sin against hope. It means the desire to essay what exceeds one's capacity.

 

교만(pride)

 

교만은 자신의 고유한 탁월성(excellence)에 대한 지나친 사랑(excessive love)을 말합니다.(*1) 이 사랑은 칠죄종(七罪宗, the seven capital sins)들 중의 하나로 통상적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는,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St. Gregory)의 식별을 지지함을 선언함으로써교만을 모든 악덕(vices)들의 여왕이라고 간주하고, 그리고 허영(vainglory)을, 이 죄종들 중의 하나로서, 교만(pride)의 자리에 놓습니다. 교만에, 바로 이러한, 다른 것들을 능가하는 우위(pre-eminence)를 줌으로써 그는, 한 개의 가장 형상적이고(formal) 그리고 완전한(complete) 어의(語義, signification)로, 교만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교만을, 그 안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전능하신 하느님 쪽으로 종속(subjection to)으로부터 물러나게 하는 것(withdraw)을 시도하는, 그리고 우수한 자(superiors)들의 명령들을  무시하는, 바로 그러한 마음의 틀(frame of mind)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교만은 하느님에 대한 그리고 당신께서 위임하신 임무(commission)를 분담하고 있는(bear) 자들에 대한 경멸(contempt)의 한 종/종류(a species of)입니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간주되어, 이것은 당연히 한 개의 가장 가증스러운 종류의 죽음에 이르는 죄(대죄 mortal sin)입니다. 정말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는 바로 이러한 의미로 이것을 죄들로 구성된 가장 검은 색들 중의 하나로서 등급을 매깁니다. 이것에 의하여 해당 피조물은 자신의 본질적인 궤도 안에 머무는 것을 거부하며, 그리하여 그는, 나약함(weakness) 혹은 무지(ignorance)를 통하여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에 대한 자기 고양(self-exaltation)에 있어 그가 종속하지 않는 것에 마음이 있기(is minded) 때문에, 하느님 쪽으로 등을 돌립니다. 그의 태도는 그 안에 사탄의 그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하여 인간들에게 있어 아마도 자주 확인되지 않을 것입니다. 교만에 있어서의 어떤 덜 극악한 종류는 부당하게 그리고 충분한 보증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의 지배를 던져 버리고자 하는 성향 없이, 사람이 자기 자신을 중히 여기도록 몰아대는 바로 그것입니다.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항님(St. Gregory)에 따르면,(*2) 교만은, (i) 한 사람이, 왜냐하면 그가 자기 자신 안에서 식별할 수도 있는 그러한 이점들의 원천으로서 자기 자신을 간주하기 때문에, 혹은 (ii)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이미 수여하셨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자신 고유의 공로들에 대한 응답으로 이것이 [자기 자신에게] 있어 왔다고 그가 여기기(reputes) 때문에, 혹은 (iii) 왜냐하면 그가 자신이 가지지 못한 [하느님의] 선물(gifts)들을 자기 자신 쪽으로 귀속시키기 때문에, 혹은, (iv) 최종적으로, 왜냐하면 심지어 이들이 실재하고 있을(be real) 때에도 자신이 다른 이들 앞에 놓여지는 것을 비이성적으로(unreasonably) 바라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may). 첫 번째 두 경우들에서 지적된 죄의 자각(conviction)을 가정한다면(supposing), 이 죄는 한 개의 중대한 죄일 것이며(would) 그리고 이단(heresy)이라는 추가된 죄 있음(guilt)을 가질 것입니다(would). 그러나, 통상적으로, 바로 이러한 정도가 벗어난 확신(erroneous persuasion)은 존재하지 않으며, 비난할 만한 것은 바로 그 품행(demeanour)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마지막 두 개의 경우들은 중대한 위반들을 구성한다고 견지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를 들어, 한 명의 의사(a physician)의 임무(duties)를 필수의 지식 없이 어떤 자가 떠맡는 등과 같이, 한 사람의 오만(arrogance)이 다른 이에게 커다란 위해(危害, harm)의 경우일 때에는 언제든지 참이 아닙니다. 교만이, 그 대상의 추구에 있어 당사자가 무엇이든지에 대하여, 심지어 대죄(mortal sin)에 대하여서도, 준비되어 있는, 영혼의 바로 그러한 성마름(temper)에까지 이미 일어났을 때에는 동일한 판단이 내려질 것입니다. 허영(vainglory), 야망(ambition), 그리고 주제넘음/무례(無禮)/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은 통상적으로 교만의 딸들인(*3) 악덕들로서 열거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교만과도(過度)한(즉, 이성 혹은 선한 판단에 의하여 지령받는 범위를 초과하는) 목표(inordinate aims)들을 섬기도록 잘 순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 자체로는, 만약에 어떠한 추가적인 고려가 그들을 중대한 침범들의 등급들의 상태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들은 소죄(venial sins)들입니다. 여기서 주제넘음/무례(無禮)/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은 [여섯 개의 성령에 거스르는 죄(성령 모독죄)들 중의 하나인] 희망(hope)에 반하는 죄(*4)를 나타내지 않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능력을 능가하는 바를 시도하고자 하는 욕망(desire)을 의미합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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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1) 따라서,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과도한(inordinate) 탁월욕망은 교만(superbia, pride)이라고 불리는 죄이나,
과도(過度)하지 않은 탁월욕망(卓越欲望, the desire for excellence)은 죄가 아니다.

 

(2) 바로 위의 정의(definition)는, 사실은, 다음에 있는 "교만"의 정의(definition)을 따르고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5_교만1.htm
[신학대전여행, Ia, IIae, q84, a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5_교만2.htm [신학 대전, Ia, IIae, q84, a2]

 

(*2) 번역자 주: 여기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항님(St. Gregory)를 따르고 있다고 하나, 그러나, 다음의 주소에 있는, 이 대 교황님의 저술의 해당 부분과 정밀하게 비교/검토을 하면, 이어지는 (iii)항과 (iv)항에 주어진 서술은, 아래에 발췌된, 이 저술에 주어신 바와 그 내용에 있어서도 동일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출처: http://www.lectionarycentral.com/GregoryMoralia/Book23.html [제13항]

 

(발췌 시작)

For there are four marks by which every kind of pride of the arrogant is pointed out, either (i) when they think that they possess any good quality from themselves, or (ii) if they believe that it is given them from above, yet that they have received it in consequence of their own merits, or (iii) unquestionably when they boast of possessing that which they have not, or (iv) when they despise others, and wish to appear the sole possessors of what they have.

 

이는, 바로 그것들에 의하여 오만한 자(the arrogant)들의 교만(pride)의 모든(every) 종류들이 지적을 받게 되는, 다음과 같은, 네 개의 표지(signs)들이 있기 때문이다: (i) 그들이 자기 자신들로부터 모든 선한 특성(good quality)을 소유하고 있다고 그들이 생각할(think) , (ii) 이 특성이 위로부터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그들이 믿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 고유한 공로들의 결과로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그들이 확신할(believe) , 혹은 (iii)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이 가지지 못한 바를 소유하고 있다고 그들이 자랑할(boast) , 혹은 (iv) 그들이 다른 이들을 혐오하고(despise), 그리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바의 단독의 소유자들임을 나타내는 것을 바랄(wish)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그리고 바로 위에 발췌된 바는, 다음에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q162, a4, objection 1에서 발췌 인용되고 있는 바로 그 네 개의 표지들에 대한 서술과 동일하다:

http://www.newadvent.org/summa/3162.htm#artible4

 

(*3) 번역자 주: 여기서 "offspring" 을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자식들"으로 번역하지 않고, "딸(daughters)들"로 번역한 것은, 다음에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q132, a5에 주어진 설명에 더 충실하기 위하여서이다:
http://www.logicmuseum.com/authors/aquinas/summa/Summa-IIb-128-140.htm#q132a5arg1

 

(*4) 번역자 주: 바로 이 "주제넘음/무례(無禮)/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에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에 주어진 더 자세한 설명의 글들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2.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76.htm

 

(*5) 번역자 주: 바로 이 "주제넘음/무례(無禮)/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에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에 주어진 더 자세한 설명의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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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5.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ambition(야망)"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a/a215.htm

(발췌 사작)

AMBITION

 

Inordinate seeking of recognition or honor. Ambition is morally good when the recognition sought is not selfish and the means used are not evil. It becomes sinful when motivated by pride or pursued without concern for justice or charity. (Etym. Latin ambitio, a going around, especially used of going around to solicit votes; hence a seeking for preferment, strive after, seek; from ambire, to go about.)

 

야망(ambition) 

 

인정(recognition) 혹은 명예/귀(貴)(honor)에 대한 과도(過度)한(inordinate, 즉, 올바른 이성 혹은 선한 판단에 의하여 지령받는 범위를 초과하는) 추구 행위를 말합니다.(*) 야망은, 추구되는 인정이 이기적이지 않고 그리고 사용된 수단들이 악(evil)이 아닐 때에, 윤리적으로 선(morally good)합니다. 이 행위는, 교만(pride)에 의하여 동기가 부여되거나 혹은 정의(justice, 의덕) 혹은 사랑(charity, 애덕)에 대한 배려 없이 추구될 때에, 죄가 있게 됩니다. [어원. Latin ambitio, a going around, especially used of going around to solicit votes; hence a seeking for preferment, strive after, seek; from ambire, to go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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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따라서,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과도한(inordinate) 명예욕망은 야망(ambition)이라고 불리는 죄이나,
과도(過度)하지 않은 명예욕망(名譽欲望, the desire for honor)은 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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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3-5:

(1) 예를 들어, 다음은, 세속의 사전"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우리말 단어 "야망"에 대한 설명 전문인데, 위에 발췌된, 세속의 사전이 아닌,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바를 번역한,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야망(ambition)"에 대한 설명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도록 하라: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List_dic.jsp

(발췌 사작)

야망(野望)
「명사」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

(이상, 발췌 끝)

 

(2) 바로 이러한 커다란 차이점 때문에, 성경 혹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가톨릭 교회의 핵심 문헌들을 학습 할 때에 오로지 세속의 사전들에 의존하는 것은,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대단히 곤란할 것이다.

(이상, 게시자 주 끝)

 

3-5. 그리고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ambition(야망)"에 대한 설명은 다음에 있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http://www.newadvent.org/cathen/01381d.htm 

  

4.

4-1. 다음은 NAB 용어색인에서 확보한 정보들인데, 오른쪽의 차용 번역 용어들은, 지금까지 이번 글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여, 선정된 용어들입니다.

 

여기서, 특히, Modern Catholic Dictionary 혹은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그 설명이 주어져 있지 않은 영어 용어들은 세속의 사전Merriam-Webster Dictionary에 주어진 정의(definitions)들을 최대한 수용한 후에, 그런 다음에,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에 따라 선정되었습니다:

 

pride,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UQ.HTM [67번] = 교만(驕慢)

proud,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1/8B.HTM [60번] = 교만한

 

scorn,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2/FI.HTM [28번] = 경멸(輕蔑)

 

haughty,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2/9T.HTM [32번] = 거만(倨慢)한

 

arrogance,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2/1X.HTM [28번] = 오만(傲慢)

arrogant,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1/MS.HTM [42번] = 오만(傲慢)한

  

insolence,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3/DI.HTM [17번] = 무례

insolent,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4/DF.HTM [12번] = 거친 혹은 무례한 

 

loftiness,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9/6T.HTM [3번] = 고원(高遠)함

lofty,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2/9Q.HTM [28번] = 고원한

 

boast,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1/1M.HTM [63번] = 자랑하다, 자랑

boasting,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2/CW.HTM [16번] = 자랑 행위, 자랑하는

 

conceit,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H4.HTM#H1C [1번, 2코린토 12,20] = 자만(自慢)

 

4-2. 이제 남은 것은, 바로 위의 제2-3항NAB 용어 색인 정보로부터, NAB에서 사용되고 있는 영어 번역 용어들에 대응하는 "새 번역 성경" 중의 해당 절들에서의 우리말 차용 번역 용어들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는, 참으로 대단히 지루한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4-3.

 

작성 중입니다.

 

loftiness,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9/6T.HTM [3번] = 고원(高遠)함, 높음, 거만

"새 번역 성경" 이사야 8,6에서 loftiness 에 대응하는 단어가 탈락됨.

lofty,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2/9Q.HTM [28번] = 고원한, 키가 큰, 거만한

"새 번역 성경" 2사무엘 22,28에서 "거만한"으로 번역됨.

   

5. 지금까지 함께 고찰한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5-1.(이 글의 결론 1) 교만(pride)으로부터 변성(變成)되는 악덕(vices)들:

  

(심장 안쪽에서) 겸손하지 않음/불손(non-humility, being not humble), 즉, 교만(pride)

    > (심장 안쪽에서) 경멸(contempt, scorn)    

        > (심장 안쪽에서 혹은 심장 바깥쪽으로) 무례(insolence)

            > (심장 안쪽에서 혹은 심장 바깥쪽으로) 거만(haughtiness)

                > (심장 안쪽에서) 자만(自慢, conceit)

                    > (심장 안쪽에서 혹은 심장 바깥쪽으로) 오만(arrogance) 

    > (심장 바깥쪽으로) 허영(vainglory) (신학 대전 IIa IIae, q132)

        > (심장 바깥쪽으로) 자신에 대한 자랑 행위 (신학 대전 IIa IIae, q112, q132,a5q162)

        > (심장 바깥쪽으로) 위선(hypocrisy) (신학 대전 IIa IIae, q132,a5)

        > (심장 바깥쪽으로) 완고(obstinacy) (신학 대전 IIa IIae, q132,a5)

        > (심장 바깥쪽으로) 의견 충돌(discord) (신학 대전 IIa IIae, q132,a5)

        > (심장 바깥쪽으로) 다툼(contention) (신학 대전 IIa IIae, q132,a5)

        > (심장 바깥쪽으로) 불복종(disobedience) (신학 대전 IIa IIae, q132,a5)

 

게시자 주 5-1: 여기에 사용된 차용 번역 용어들의 의미는 위의 제1-4항에 주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교만하지 않은 자들 중에는 경멸하는 자들도 없고, 따라서 무례한 자들도 없으며, 따라서 거만한 자들도 없고, 따라서 자만(自慢)하는 자들도 없고, 따라서 오만한 자들도 없다.

 

따라서, 겸손한 자들, 즉, 교만하지 않은 자들 중에는 허영을 추구하는 자들도 없고, 따라서 자신에 대한 자랑을 하는 자들도 없고; 그리고 경멸하는 자들도 없고, 무례한 자들도 없으며, 따라서 거만한 자들도 없고, 따라서 자만(自慢)하는 자들도 없으며, 따라서 오만한 자들도 없다.

 

그러므로, 왜냐하면 humility 안에 piety가 있고 그리고 piety 안에 religion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들이 없는, 오로지 "겸손(humility)" 안에서만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이 가능하고, 그리고 오로지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 안에서만 "경신덕(religion)"이 가능하다. 즉,

 

겸손(humility)

    >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

        > "경신덕(religion)"  

 

따라서,

 

5-2. (이 글의 결론 2)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piety, pietas)"의 상태가 아님(impiety)으로부터 변성(變成)되는 악덕(vices)들:

 

(심장 안쪽에서)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의 상태가 아님(impiety) 

    > (심장 안쪽에서) 겸손하지 않음/불손(non-humility, being not humble), 즉, 교만(pride)

        > (심장 안쪽에서) 경멸(contempt, scorn)    

            > (심장 안쪽에서 혹은 심장 바깥쪽으로) 무례(insolence)

                > (심장 안쪽에서 혹은 심장 바깥쪽으로) 거만(haughtiness)

                    > (심장 안쪽에서) 자만(自慢, conceit)

                        > (심장 안쪽에서 혹은 심장 바깥쪽으로) 오만(arrogance) 

        > (심장 바깥쪽으로) 허영(vainglory) (신학 대전 IIa IIae, q132)

            > (심장 바깥쪽으로) 자신에 대한 자랑 행위 (신학 대전 IIa IIae, q112, q132,a5q162)

            > (심장 바깥쪽으로) 위선(hypocrisy) (신학 대전 IIa IIae, q132,a5)

            > (심장 바깥쪽으로) 완고(obstinacy) (신학 대전 IIa IIae, q132,a5)

            > (심장 바깥쪽으로) 의견 충돌(discord) (신학 대전 IIa IIae, q132,a5)

            > (심장 바깥쪽으로) 다툼(contention) (신학 대전 IIa IIae, q132,a5)

            > (심장 바깥쪽으로) 불복종(disobedience) (신학 대전 IIa IIae, q132,a5)

                                                                 

게시자 주 5-2: 여기에 사용된 차용 번역 용어들의 의미는 위의 제1-4항에 주어져 있으며, 그리고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piety, peitas)"로 불리는 자연적 윤리덕(moral virtue)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의 글들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5_piety.htm <----- 또한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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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20시간 (자료 분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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