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주님 수난 성지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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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2-03-23 ㅣ No.831

주님 성지 주일(가해. 2002. 3. 24)

                                              제1독서 : 이사 50, 4 ∼ 7

                                              제2독서 : 필립 2, 6 ∼ 11

                                              복   음 : 마태 26,14∼27. 66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한 주간은 황사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생했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휴업을 다하였습니다.  중국 내륙에서 발생한 황사가 이곳까지 날아오는 것이라고 하니 정말 자연의 힘은 놀랍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장사를 마치고 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굶주린 호랑이를 만난 두부장수 아주머니가 울며 ’우리 집에는 통통하게 살찐 돼지가 있으니 저 대신 그것을 드십시오’라고 애원했습니다.  호랑이는 이 말을 믿고 그 아주머니의 집까지 따라갔습니다.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돼지를 끌고 와 호랑이에게 주라고 했지만 남편은 아까운 생각이 들어 ’우리 집에는 두부가 아주 많이 있으니 그것으로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안돼요.  호랑이가 두부 같은 걸 좋아하겠어요?’라고 말하며 말렸습니다.  남편은 이 말을 듣지 않고 두부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화를 내며 남편을 순식간에 잡아먹었습니다."

옛말에 ’화장실 들어갈 때의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울 때는 그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온갖 소리로 모든 것을 다 줄 것처럼 말하고 목숨을 구하고 나면 이것저것 아까운 생각이 들고 욕심이 생겨서 안 줄 수는 없고 적게 주려고 이런저런 온갖 이유를 만듭니다.  약속한 것 마저 지키지 않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사람들은 환호하고 대단한 인파가 모여 환영합니다.  이들은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거나 들었을 것입니다.  또 병자들을 고쳐주고 잘난척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동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배신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병자를 고쳐주거나, 사람을 살리는 능력으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불의와 불공정성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수 있다는 그 기대에 반대되는 예수님의 모습.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 그리고 사회의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으려 하는 반대자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반된 이들의 기대가 예수님을 죽이는 데 한 목소리를 냅니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우리 자신은 예수님의 죽음을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왜일까요?  유다인들의 잘못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알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워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역시 유다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일화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길을 걷고 있는데, 한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웬일인가 싶어 가 보니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는 그 중앙에 작은 아이 하나가 피골이 상접한 채 굶어서 죽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했습니다.  ’참 안됐다.  부모가 누구기에 버렸을까?’  ’나라에서는 뭐하고 있는 거야.  저런 아이들이 길거리를 헤매다가 죽게 하고.  쯧쯧쯧.’  아이들 손을 잡고 있는 부인들은 자기 아이들을 보며 ’저것 봐.  부모 말 듣지 않으면 저렇게 되는 거야.  부모 고마운 줄 알아야지.’  그때 수녀님은 아이를 안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죽였어요.  오, 불쌍한 아이야.  용서해 다오.  우리가 너를 죽였구나!’  사람들은 별 미친 수녀 다 보겠다고 중얼거리며 종종 걸음으로 집으로 갔습니다.  그후에 수녀님은 인도로 갔고 버림받아 죽어 가는 이들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수녀님을 통해 사랑을 배웠고, 부활을 체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때론 아프고, 외롭고, 슬프고, 억울한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삶에 철저히 동참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그 하느님의 위대한 결단과 가슴저린 연민의 정을 예수님의 죽음으로 보게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누군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랑이 필요할 때는 거부하고 도망가고 회피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많이 알고 있으면 알고 있는 만큼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우리 삶의 결단을 통해 부활에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세레때 약속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주 작은사랑을 우리모두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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