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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교만의 시작 혹은 교만이 죄의 시작? 집회서 10,13 [번역오류] [_원죄] capital prid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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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194.105.*]

2016-01-27 ㅣ No.1673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 1: 다음은 1977년에 초간된 "공동번역성서" 집회서 10,12-13 전문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old&code=28&JangNo=10

(발췌 시작)
12 오만은 주님을 저버리는 데서 시작되고 사람의 마음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질 때 생긴다.   
13 오만은 죄의 시작이므로 오만에 사로잡힌 자는 악취를 낸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 엄청난 벌을 내리시며 그를 멸망시키신다.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다음은 2005년에 초간된 "새 번역 성경" 집회서 10,12-13 전문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old2&code=128&JangNo=10

(발췌 시작)

12 인간의 오만은 주님을 저버리는 데서 시작되니 인간의 마음이 그를 지으신 분에게서 멀어진 것이다.   
13 오만의 시작은 죄악이고 오만에 사로잡힌 자는 악취를 뿜어낸다.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큰 재앙을 불러들이시어 그들을 완전히 파멸시키신다.
(이상, 발췌 끝)

 

 

위에서 "오만"은, "탁월에 대한 과도한(inordinate) 욕망"으로 정의되는 "교만(pride)"를 말하는데, 그런데 위의 밑줄친 부분들을 언뜻 비교/검토하더라도, 주어부와 서술부가 뒤바뀐 것을, 즉, "교만이 죄의 시작"(공동번역성서) vs "죄가 교만의 시작"(새 번역 성경)에서 주어부와 서술부가 뒤바낀 것을, 누구든지 쉽게 알 수 있는데, 그런데 어찌하여, 지역 언어인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불과 30년 정도의 세월 속에서 이와 같이, 소위 말하는, "인과 관계"가 뒤바뀌어 전달되는 이 발생할 수가 있는지요? 

(이삳, 질문 1 끝)

 

질문 2: 그렇다면, 이들 두 개의 번역문들 중에서, 어느 것이 가톨릭 교회의 교부(Church Fathers)들과 교회의 박사(Doctors)들의 저술의 본문에서, 전후 문맥 안에서 혼돈을 야기하지 않고, 발췌 인용될 수 있는, 올바른 번역인지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공동번역성서" 집회서 10,13입니다. 예를 들어, 바로 아래의 본문의 제1항의 첫 부분을 읽도록 하십시오.

 

질문 3: 그렇다면, 집회서 10,13이 그리스도교 교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이유가 있는지요?

 

질문 3에 대한 답변: 예, 있다는 생각입니다. 간략하게, 그러나 윤리적/도덕적으로 대단히 유의미한, 한 개의 예를 들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한문 문화권"의 오래된 학문인 "유학"에는 "극기복례"라고 불리는 참으로 존경하옵는 공자님의 소중한 가르침이 있는데, 그러나,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여기서 말하는 "극기"를 어떻게 수행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기존의 "유학"에서 제대로 체계적으로 가르쳐 오지 못하였으나, 16세기 말부터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가톨릭 교회의 한 수도회인 예수회 소속 신부님들 중의 한 분인 판토하 신부님의 저서인 "칠극(혹은, 칠극대전)""극기"를 어떻게 수행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바로 이 책을 읽고서, 중국과 조선의 다수의 유학자들이, "칠극"에 제시된, "극기"의 손쉬운 수행 방식에 대한 대단히 체계적인 논리 전개와 알기 쉬운 내용 등에 의하여, 학문적으로, 소위 "서학" 혹은 "천주학"으로 불렸던 "지중해 지역의 문화/학문"의 우수성/탁월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또한 추가적으로 루지에리 신부님"천주성교실록"과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천주실의" 등의 천주교 입문서/교리서들을 읽고서, 그 결과, 중국과 조선의 일부 유학자들이 "천주교"를 드디어, 학문으로서뿐만이 아니라, 또한 신앙으로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칠극"은 소위 말하는 죄(sin)들의 일곱 개의 우두머리 악덕(capital vices)들인 "칠죄종"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대한 수덕서인데, 바로 이 "칠극"의 주된 내용들은, 이번에는(in turn),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의 핵심 문헌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 의존하고 있고, 그리고 이 신학 대전은, 적어도 "칠죄종"들에 관한 한, 이번에는,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의 저서인 "욥기 주해"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리고 이 교황님께서 바로 이 저서에서 "칠죄종"들을 나열 할 때에, 성경 근거 구절로서 발췌 인용하는 바가 바로 집회서 10,13(15)이므로, 따라서, 집회서 10,13(15)가 지니는 그리스도교 전통적 윤리 신학적 의미는 참으로 지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의식(consciousness)과 양심(conscience)에 대단히 고통(苦痛)스러운 문제는, 현재의 "새 번역 성경"의 집회서 10,13 우리말 문장이, 위에서 말씀드린 성경 근거로서 결코 제시될 수 없음을 최근에 알게 된 데에 있습니다.

(이상, 질문 3에 대한 답변 끝)

 

질문 1에 대한 답변 시작:

 

1. 들어가면서

우선적으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St. Gregoy I, the Great, 540-604년, 교황 재위기간: 590-604년)"욥기"에 대한 방대한 주해서인 "욥기 주해(Magna Moralia, Great Ethics)", xxxi, 제87항[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음]에서, "칠죄종들"을 나열할 때 인용된 성경 구절은, 집회서 10,1아니고, "새 번역 성경"의 경우에집회서 10,13입니다. 그러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영어본에서는,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에 따라, 집회서 10,15입니다:

"Pride is the beginning of" "summa theologica" site:newadvent.org

"Pride is the beginning of" site:logicmuseum.com/authors/aquinas

 

참고 자료: "Sirach 10" "pride is the beginning of" "Church Fathers"  site:newadvent.org [이 검색 결과에서, 특히 그리이스어로 자신의 저서들을 저술하였다고 알려진, 그리스어에 능통하였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 349-407년)가 자신의 강론들에서 집회서 10,13(15)를 발췌 인용하고 있는 부분들에 반드시 주목하라. 왜냐하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이 강론들을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St. Gregoy I, the Great, 540-604년, 교황 재위기간: 590-604년)께서, "욥기 주해(Magna Moralia, Great Ethics)"의 저술 이전에, 또한 읽으셨을 것이 거의 확실하기 떄문이다.]

 

다음은, 예를 들어, 신학 대전, Ia, IIae, q84, a2에서 발췌되고 있는 집회서 10,15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summa/2084.htm#article2

(발췌 시작)
"Pride is the beginning of all sin."(*)

 

"교만은 모든 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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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이 영어 번역문은 16세기에 먀련된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의 영어 번역본인, 다음에 있는, Douay-Rheims Bible, 집회서 10,15에서 발췌된 것이다:

http://haydock1859.tripod.com/id1178.html

http://www.intratext.com/IXT/ENG0011/__PK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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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그리고 "교만"이, 모든 죄의 뿌리(root)라고 불리지 않고, 모든 죄의 시작(beginning)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위의 출처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참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윤리적] 악[즉, 죄]의 뿌리"(1티모테오 6,10)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위의 출처에서 또한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 번역 성경" 집회서 10,13에서의 기존의 우리말 번역문은,

(i) 여기를 클릭하면 제87항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St. Gregory I, Pope the Great)의 저서인 "욥기 주해(Magna Moralia, Great Ethics)", xxxi, 제87항의 본문 중에서, 

(ii) 여기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저서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분문 중에서,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2월 6일]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우리말로 번역이 된, 글들에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5.htm [신악 대전, Ia, IIae, q84]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6.htm [신학 대전, IIa, IIae, q162]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그리고

(iii) 여기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시편 제13장에 대한 해설에서, 

그 근거로 발췌되어 제시될 수 없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한 이후의, 원 은총(the original grace)을 상실당한, 인간들의 윤리(morality)를 다루므로, 특히, 바로 위의 제(i)항제(ii)항에서 말씀드린, 전통적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의 핵심 근거 문헌들의 본문 중에서 "새 번역 성경"의 집회서 10,13이 발췌되어 제시될 수 없는 것은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지적에 대하여서는, 아래의 제3항에 있는 게시자 주 2-10을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 꼭 읽도록 하십시오.

 

다음은 "새 번역 성경" 집회서 10,13 전문인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정밀하게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발췌 시작)
오만의 시작은 죄악이고 오만에 사로잡힌 자는 악취를 뿜어낸다. [...]
(이상, 발췌 끝)

 

이 발췌 문에서, 우선적으로, 영어로 "pride"로 번역되는 표현이, "교만"으로 번역되는 대신에, "오만"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만(arrogance)은 교만(pride)이므로 번역 미숙/오류입니다만, 이것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게, 바로 위의 (*)의 문장에서 주어부(교만)와 술어부(죄)가 뒤바뀐 것은 중대한 번역 오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위 말하는, "인과 관계"가 뒤바뀌기 때문입니다.

 

     중대한 번역 오류의 심각성 때문에, 지금부터, 이 번역 오류가 언제 쯤에 어디에서 발생하였는지에 대하여 연대순으로 정밀하게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

2-1. 다음은 기원전 2-1세기 경에 마련되었을, 칠십인역(LXX, 그리스어본) 집회서 10,12-13의 영문본 전문입니다:

 

출처 1: http://www.biblestudytools.com/lxx/sirach/10-12.html

           http://www.biblestudytools.com/lxx/sirach/10-13.html

출처 2: http://www.ellopos.net/elpenor/greek-texts/septuagint/chapter.asp?book=30&page=10

(출처 1에서 발췌 시작)

12 The beginning of pride is when one departeth from God, and his heart(심장) is turned away from his Maker.
13 For pride is the beginning of sin,(<--- 주어부(pride)와 서술부(sin)를 잘 보십시오) and he that hath it shall pour out abomination: and therefore the Lord brought upon them strange calamities, and overthrew them utterly.

(이상, 발췌 끝)

 

2-2. 다음은, 기원후 4세기 말부터 1979년까지 가톨릭 교회의 공인 라틴어본 성경인,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 집회서 10,14-15 전문입니다:

 

출처: http://bible.newadvent.org/bible/sir010.htm

(발췌 시작)

14 Initium superbiæ hominis apostatare a Deo:

15 quoniam ab eo qui fecit illum recessit cor ejus,
quoniam initium omnis peccati est superbia.
Qui tenuerit illam adimplebitur maledictis,
et subvertet eum in finem.

(이삳, 발췌 끝)

 

게시자 주 2-2:

(1) 위의 밑줄친 라틴어 문장 중에, 바로 위의 제2-1항칠심인역 그리스어본 집회서 10,15에서와는 달리, 영어로 "all" 혹은 "every"에 해당하는 라틴어 형용사 "omnis"가 본문 중에 있고 그리고 또한, 아래의 제2-9항에 발췌된, 1979년에 개정된 새 대충 라틴말 성경(Nova Vulgata)의 해당 본문에도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이 라틴어 형용사는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의 번역 대본에 이미 있었거나 혹은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추가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이들 둘 중의 어떠한 경우이든지 간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i) 집회서가 저술된 시기(바리사이파가 처음으로 등장하기 이전의 시기인 기원전 180-170년 경)의 유다주의를 또한 고려한다면, 그리고 (ii) 심지어, 예를 들어, 다음의 자료 1, 자료 2, 자료 3 등에서처럼 아담과 하와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원죄"를 범하였다는 것 자체를, 히브리어 구약 성경 본문에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부정하는 오늘날의 유다주의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집회서의 저자가 여기서 말하는 "(모든) 죄[(all) sin)]"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 이후에, 그들의 자손인 인류의 죄들을 말한다는 생각이며, 따라서 라틴어 형용사 "omnis"의 존재를 두고서 번역 오류라고까지 말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자료 1: https://www.jewishvirtuallibrary.org/jsource/Judaism/Original_Sin.html [제목: Judaism's Rejection of Original Sin(원죄에 대한 유다주의의 거부)]

자료 2: https://www.jewishvirtuallibrary.org/jsource/judaica/ejud_0002_0018_0_18628.html [제목: sin(죄)]

자료 3: https://www.jewishvirtuallibrary.org/jsource/anti-semitism/Jews_for_Jesus.html [제목: Jews for Jesus(예수를 지지하는 유다인들)]

 

그리고, 집회서가 저술된 시기 혹은 그 이전의 시기의 유다주의에서 "원죄"에 기인하는 "칠죄종"들에 대하여 이미 논하였다는 이야기는 여태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2) 다음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소장 중인, St. Joseph 판 NAB(New American Bible)의 부록인 "Bible Dictionary"에 주어진 "sin(죄)"에 대한 설명입니다.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말씀드린 바를 독자들께서 이해하는 데에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또한 전달해 드립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아래의 발췌문에서 인용되고 있는 신약 성경의 서간들의 저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하여 직접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당하기 전에 바리사이파 유다주의자였던, 성 바오로(St. Paul)임을 기억하면서 읽도록 하십시오:

 

(발췌 시작)

SIN

 

In the Old Testament sin is not so much a wrong action in one's conscience as something which disrupts the order of the world wished by God, and particularly the covenant fixed by the law. Thus the Israelite did not search himself for deep causes or establish its relationship with original sin; it is necessary to wait for the book of Wisdom to find such an allusion (2,24). The New Testament describes sin as relating to original sin and tells of the universal sorrow because of sin (Rom 1-5) erased by the Redemption (Rom 5-8). It describes responsibility for it. This conception of sin thus became linked with the ideas of faith and love which gave life to Christians (Rom 13,8ff; 1 Cor 5,9; 13,4ff).

 

죄(sin)

 

구약 성경에 있어 죄는, 하느님에 의하여, 그리고 특히 율법에 의하여 확정되었던 계약에 의하여, 바라게 되었던(wished) 이 세상의 순서/질서(order)를 혼란시키는(disrupts) 어떠한 사물(something) 정도로 사람의 의식 안에 있는 커다란 한 개의 잘못된 행동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인들은 깊은 원인(causes)들을 스스로 추구하거나 혹은 원죄(original sin)와 그 관계의 상태를 확립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그러한 어떤 암시(지혜서 2,24)를 발견하기 위하여 [그들이] 지혜서(the book of Wisdom)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은 죄를 원죄 쪽으로 관련된 것으로서 설명하고(describes) 그리고 죄 때문인(로마 1-5) 보편적 슬픔에 대하여 말하는데,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속량(Redemption)에 의하여 깨끗하게 지워집니다(erased)(로마 5-8). 신약 성경은 죄에 대한 책임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죄에 대한 바로 이러한 개념 형성(conception)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공하는 신덕(faith, 믿음)애덕(love, 사랑)이라는 관념(ideas)들과 연결되게 되었습니다(로마 13,8과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1코린토 5,9; 13,4와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 다음은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original sin"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cathen/11312a.htm

(발췌 시작)

original sin


원죄

 

[...]

 

Baseless also is the assertion that before St. Augustine this doctrine was unknown to the Jews and to the Christians; as we have already shown, it was taught by St. Paul. It is found in the fourth Book of Esdras, a work written by a Jew in the first century after Christ and widely read by the Christians. This book represents Adam as the author of the fall of the human race (vii, 48), as having transmitted to all his posterity the permanent infirmity, the malignity, the bad seed of sin (iii, 21, 22; iv, 30).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이전에 이 교리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또한 근거가 없으며, 그리고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이 교리는 성 바오로(St. Paul)에 의하여 가르쳐졌습니다. 이것은 [외경인] 에스드라스(Esdras)의 네 번째 책(*)에서 발견되는데, 이 책은 그리스도 이후 첫 번째 세기에 한 명의 유다인에 의하여 저술되었고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널리 읽혔던 한 개의 작품입니다. 바로 이 책은 아담(Adam)을, 인류의 타락의 창시자(author)라고(vii, 48), 자신의 자손 모두에게 죄의, 영구적인 결점(infirmity), 악의(malignity), 나쁜 씨앗(bad seed)을 전달해 온 자라고, 말합니다(represents)(iii, 21, 22; iv,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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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1) 외경인 "에스드라스(Esdras)의 네 번째 책", 즉, "4 Ezra", 즉, "2 Esdras"의 영문본들은 다음에 있다:
출처 1: http://quod.lib.umich.edu/cgi/r/rsv/rsv-idx?type=DIV1&byte=3652195 [RSV의 외경]

출처 2: http://www.earlyjewishwritings.com/text/2esdras.html [1611KJV의 외경]

 

(2) 바로 위의 제(1)항에 안내해 드린 책을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찾아낼 수 있었던 과정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는 글[제목: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 4 에즈라 2,35]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6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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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게시자 주 2-2 끝)

 

2-3. 다음은 16세기에 초간된 가톨릭용 영어본 성경인 Douay-Rheims Bible, 집회서 10,14-15전문입니다. 이 영어본 성경은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이 영어로 번역된 것이며, 1611년에 영국 성공회 개신교 측에서 개신교용으로 초간한 King James Version의 마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영어본 가톨릭용 성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1: http://haydock1859.tripod.com/id1178.html

출처 2: http://www.intratext.com/IXT/ENG0011/__PKR.HTM

(발췌 사작)

14 The beginning of the pride of man, is to fall off from God:
15 Because his heart is departed from him that made him: for pride is the beginning of all sin: (<--- 번역 오류 없음) be that holdeth it, shall be filled with maledictions, and it shall ruin him in the end.
(이상, 발췌 끝)

 

2-4. 다음은 1611년에 초간된 King James Version에 외경으로 포함되어 있는 집회서 10,12-13 전문입니다:

 

출처 1: http://www.ccel.org/bible/kjv-apoc/Sirach/10.txt

출처 2: http://www.earlyjewishwritings.com/text/sirach.html

참고 자료: http://www.ccel.org/wwsb/Sirach/10/13

(출처 1로부터 발췌 시작)
Sir 10:12
The beginning of pride is when one departeth from God, and his heart is turned away from his Maker.

Sir 10:13
For pride is the beginning of sin, (<--- 번역 오류 없음) and he that hath it shall pour out abomination: and therefore the Lord brought upon them strange calamities, and overthrew them utterly.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4: 위의 제2-2항제2-3항에 있는 "all" 이 영어로 번역 과정에서 제거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러나 위의 게시자 주 2-2항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반드시 제거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2-5. 그리고 다음은, 1960년대KIng James Version을 현대 영어 어법에 맞게 개정한, RSV(Revised Standard Version) 집회서 10,6-18 전문입니다:

 

출처: http://quod.lib.umich.edu/cgi/r/rsv/rsv-idx?type=DIV1&byte=3977004
(발췌 시작)

[6] Do not be angry with your neighbor for any injury,
and do not attempt anything by acts of insolence.
[7] Arrogance is hateful before the Lord and before men,
and injustice is outrageous to both.
[8] Sovereignty passes from nation to nation
on account of injustice and insolence and wealth.
[9] How can he who is dust and ashes be proud?
for even in life his bowels decay.
[10] A long illness baffles the physician;
the king of today will die tomorrow.
[11] For when a man is dead,
he will inherit creeping things, and wild beasts, and worms.
[12] The beginning of man's pride is to depart from the Lord;
his heart has forsaken his Maker.
[13] For the beginning of pride is sin, <-- 명백한 번역 오류가 처음 등장함.
and the man who clings to it pours out abominations.
Therefore the Lord brought upon them extraordinary afflictions,
and destroyed them utterly.
[14] The Lord has cast down the thrones of rulers,
and has seated the lowly in their place.
[15] The Lord has plucked up the roots of the nations,
and has planted the humble in their place.
[16] The Lord has overthrown the lands of the nations,
and has destroyed them to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17] He has removed some of them and destroyed them,
and has extinguished the memory of them from the earth.
[18] Pride was not created for men,
nor fierce anger for those born of women.

(이상, 발췌 끝)

 

2-6. 1970년에 초간된 NAB(New American Bible) 집회서 10,12-13 은 다음에 있습니다. NAB 본문에서 "pride", "arrogance", 그리고 "insolence"가 또한 등장하는 구절들은,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The sin of pride"라는 소제목이 붙은, 집회서 10,6-18인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바로 이 단락이 "새 번역 성경" 집회서 10,13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전후 문맥이라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MC.HTM

(발췌 시작)

6 1 No matter the wrong, do no violence to your neighbor, and do not walk the path of arrogance.
7 Odious to the LORD and to men is arrogance, and the sin of oppression they both hate.
8 Dominion is transferred from one people to another because of the violence of the arrogant.
9 2 Why are dust and ashes proud? even during life man's body decays;
10 A slight illness - the doctor jests, a king today - tomorrow he is dead.
11 When a man dies, he inherits corruption; worms and gnats and maggots.
12 The beginning of pride is man's stubbornness in withdrawing his heart from his Maker;
13 For pride is the reservoir of sin, (<--- RSV의 번역 오류가 몇 년 뒤에 즉시 바로잡아 졌음. 6-16에 대한 각주를 또한 읽도록 하라) a source which runs over with vice; Because of it God sends unheard-of afflictions and brings men to utter ruin.
14 The thrones of the arrogant God overturns and establishes the lowly in their stead.
15 The roots of the proud God plucks up, to plant the humble in their place:
16 He breaks down their stem to the level of the ground, then digs their roots from the earth.
17 The traces of the proud God sweeps away and effaces the memory of them from the earth.
18 Insolence is not allotted to a man, nor stubborn anger to one born of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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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18] Glory displayed through arrogance and pride is false and displeasing to God and men, because founded on dust and ashes (⇒ Sirach 10:6-11). It is the denial of the glory due to God, and therefore the source of all sin (⇒ Sirach 10:12-13). Even the memory of the proud is destroyed and God transfers their power to the lowly (⇒ Sirach 10:14-18).

 

1 [6-16] 오만(arrogance)교만(pride) 때문에(through) 과시된(displayed) 영광(glory)은 거짓이며(false) 그리하여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먼지와 재들 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집회 10,6-11). 그러한 영광[즉, (교만의 표출인) 허영(vainglory)] 하느님께 기인하는 영광에 대한 부정(denial)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 모든 죄의 원천(source)이다(집회 10,12-13). 심지어 교만한 자(the proud)들의 기억도 파괴되고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들의 힘을 미천한 자(the lowly)들에게 전달하신다(집회 10,14-18).


2 [9-10] The text is uncertain. Its general implication is that man deteriorates physically even while alive: a slight illness today may be followed by death tomorrow. The uncertainty of life leaves no room for p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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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2-7. 다음은 1977년에 초간된 "공동번역성서" 집회서 10,12-13 전문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old&code=28&JangNo=10

(발췌 시작)
12 오만은 주님을 저버리는 데서 시작되고 사람의 마음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질 때 생긴다.   
13 오만은 죄의 시작이므로 (<--- "영어로 pride로 번역되는 표현이 "교만"으로 번역되는 대신에 "오만"으로 잘못 번역된 것 이외에, RSV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번역 오류 없음) 오만에 사로잡힌 자는 악취를 낸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 엄청난 벌을 내리시며 그를 멸망시키신다.
(이상, 발췌 끝)

 

2-8. 다음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소장중인, 1979년에 발행된 가톨릭용 Good New Bible 집회서 10,12-13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12 Pride has its beginning when a person abandons the Lord, his maker.

13 Pride is like a fountain pouring out sin, (<--- RSV의 번역 오류가 바로잡아졌음) and whoever persists in it will be full of wickedness. That is why the Lord brought terrible punishments on some people and completely destroyed them.

(이상, 발췌 끝)

 

2-9. 다음은 1979년에 개정된 가톨릭 교회의 공인 성경인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 집회서 10,14-15 전문인데, 위의 제1-3-2항에 발췌된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 집회서 10,14-15와 별 차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
nova-vulgata_vt_ecclesiasticus_lt.html#10

(발췌 시장)

14 Initium superbiae hominis apostatare a Deo;
15 et ab eo, qui fecit illum, recessit cor eius.
Quoniam initium omnis peccati est superbia,
qui tenuerit illam, ebulliet maledictum,
et subvertet eum in finem.

(이상, 발췌 끝)

 

2-10. 그런데, 대단히 놀랍게도 그리고 예상 밖으로, 이러한 바로잡음들에 역행하는 우리말 번역 "새 번역 성경" 본문 중에 있습니다. 다음은 2005년에 초간된 "새 번역 성경" 집회서 10,12-13 전문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old2&code=128&JangNo=10

(발췌 시작)

12 인간의 오만은 주님을 저버리는 데서 시작되니 인간의 마음이 그를 지으신 분에게서 멀어진 것이다.   
13 오만의 시작은 죄악이고 (<--- 명백한 번역 오류 있음) 오만에 사로잡힌 자는 악취를 뿜어낸다.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큰 재앙을 불러들이시어 그들을 완전히 파멸시키신다.
(이상, 발췌 끝)

 

3. 

게시자 주 2-10: 위의 제2-7항에 발췌된 1977년에 초간된 "공동번역성서" 집회서 10,13에서 올바르게 번역된 첫 문장이 존중받지 못하고, "새 번역 성경" 집회서 10,13의 첫 문장에서 이와같이 잘못 번역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 본문이 지역 언어로 번역될 때에 준수되어야 하는 바가 포함된 지침서인, 2001년 5월 7일자 교황청 경신성사성 문헌[제목: Liturgiam authenticam, 제41항]에 의하면, "새 번역 성경" 집회서의 번역 대본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번역 대본 자체가 교체될 경우에는, 이 글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은 종류의 혼돈이 결코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말이라는 지역 언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대단히 최근인 1979년에 개정된 가톨릭 교회의 공인 성경인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의 본문과 반드시 정밀하게 대조, 비교/검토를 하는 등, 모든 노력을 다 하였어야 할 것입니다. 이 지적과 관련하여, 이 지침서로부터 발췌된 다음의 제41항을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 꼭 읽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cdds/documents/
rc_con_ccdds_doc_20010507_liturgiam-authenticam_en.html

Fifth Instruction “For the Right Implementation of the Constitution on the Sacred Liturgy of the Second Vatican Council”, Liturgiam authenticam On the Use of Vernacular Languages in the Publication of the Books of the Roman Liturgy. 

 

(발췌 시작)
41. The effort should be made to ensure that the translations be conformed to that understanding of biblical passages which has been handed down by liturgical use and by the tradition of the Fathers of the Church, especially as regards very important texts such as the Psalms and the readings used for the principal celebrations of the liturgical year; in these cases the greatest care is to be taken so that the translation express the traditional Christological, typological and spiritual sense, and manifest the unity and the inter-relatedness of the two Testaments.[34]. For this reason, 

 

41.  번역문들이, 전례에서의 사용에 의하여 그리고 교부들의 전승(tradition)에 의하여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성경 구절들에 대한 바로 그 이해에 합치됨(be conformed to)을, 특히 전례 주년(전례력)의 주된 경축들을 위하여 사용되는 시편들과 독서들 등과 같은 대단히 중요한 본문들에 관련하여, 확실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마땅히 기울여져야 하며,(#2)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경우들에 있어, 번역문이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적(Christological), 예표론적(typological) 그리고 영성적(spiritual) 어의(語義)/의미(sense)를 표현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두 개의 계약[즉,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들의 단일성 및 상호-관련되어 있음(inter-relatedness)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34] 최대한의 주의가 기울여져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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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자 주: 이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예를 들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제공하는 다음의 자료들을 활용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5.htm [성 토마스 아퀴나스 용어집]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교회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전달하는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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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it is advantageous to be guided by the Nova Vulgata wherever there is a need to choose, from among various possibilities [of translation], that one which is most suited for expressing the manner in which a text has traditionally been read and received within the Latin liturgical tradition;

a) [번역에 있어서의] 다양한 가능성들 사이에서, 그 안에서 어떤 본문이 라틴 전례 전통 안쪽에서 전통적으로 읽혀지고 그리고 받아들여 온 방식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바로 그 한 개를 선택할 어떤 필요가 있는 장소 어디에서든, 새 대중 라틴말 성경(the Nova Vulgata)에 의하여 인도되는 것이 유익하다;

 

b) for the same purpose, other ancient versions of the Sacred Scriptures should also be consulted, such as the Greek version of the Old Testament commonly known as the “Septuagint”, which has been used by the Christian faithful from the earliest days of the Church;[35]

b) 동일한 목적을 위하여, 교회의 가장 초기의 시기들부터 그리스도교의 열심 신자들에 의하여 사용되어 오고 있는, 통상적으로 "칠십인 역"으로서 알려져 있는 구약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 등과 같은, 성경 본문들에 대한 고대 본들은 또한 참고되어져야만 한다;[35] 

 

c) in accordance with immemorial tradition, which indeed is already evident in the above-mentioned “Septuagint” version, the name of almighty God expressed by the Hebrew tetragrammaton (YHWH) and rendered in Latin by the word Dominus, is to be rendered into any given vernacular by a word equivalent in meaning. 

c) 위에서 언급된 "칠십인 역" 본에서 정말로 이미 분명한, 기억에 없는 전통과 일치하여, 히브리어 tetragrammaton (YHWH)에 의하여 표현되는 그리고 라틴어로 Dominus 라는 단어로 옮겨지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이름은, 의미에 있어 동등한 한 개의 단어에 의한, 어떤 정해진 자국어(any given vernacular)로 옮겨져야 한다.  

 

Finally, translators are strongly encouraged to pay close attention to the history of interpretation that may be drawn from citations of biblical texts in the writings of the Fathers of the Church, and also from those biblical images more frequently found in Christian art and hymnody.

 

끝으로, 번역자들은 교부들의 저술들에 있는 성경 본문들의 인용(citations)들로부터,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교 예술(art)과 찬미가(hymnody)에서 더 자주 발견되는 바로 그 성경적 묘사(biblical images)들로부터, 도출될 수도 있는, 해석의 역사(the history of interpretation)(#3)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 강하게 독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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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번역자 주: 이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예를 들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06년 12월부터 제공해온 다음의 홈페이지에 있는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들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 용; 호환용 보기 설정 선택이 필요함]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 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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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게시자 주 2-1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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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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