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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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석 [andrea1] 쪽지 캡슐

2009-02-25 ㅣ No.9178

80년대 독재권력을 비판하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역할이 지금 또다시 기대되는 시점이기도 해서 많은 분들이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추모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80년대 독재권력에 맞서며 보여주셨던 그 단호한 모습이 권력의 일방 독주가 한층 가혹해진 지금 다시 떠오릅니다. 이명박 정부의 폭력적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명동성당의 따뜻한 품이 더욱더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많은 국민들의 추모물결이 이어졌던 것도 그러한 연유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김수환 추기경님의 삶에 대한 평가를 어찌 쉽게 할 수 있겠습니까만 논란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본래 김수환 추기경님은 성직자로서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안타깝게도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분에 대한 비판에 민주 진영마저 서로 분통을 내면서 사분오열하는 것을 보니 분명하게 선을 긋고 논할 것은 논해야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김수환 추기경 그 분은 분명 독재권력에는 반대했으나 그렇다고 시민권력에 전적으로 찬성한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민까지 살해하는 독재를 비판했다고 낮은 곳으로 임하는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 다음아고라 북새통 선생 글...

그게 바로 추기경님의 한계입니다. 그 한계는 어디로부터 나왔을까요? 어찌 알겠습니까만 일정한 추측이야 가능합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교육의 무의식적 영향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짧게나마 제국의 군인으로 복무했던 경험도 잠재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이 보수적인 카톨릭의 수장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겠지요. 또한 나이가 찰수록 안정적인 것에 안주하는 인간의 본성이 발현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카톨릭의 교리상 독재정권의 살인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카톨릭이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과 아주 잘 융합되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 황제 시절 공인받은 카톨릭은 중세 봉건주의 시대에서 최고의 권위적인 지위를 누렸으나 결코 근대의 문을 연 르네상스와 잘 화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르네상스를 따라 종교개혁이 이루어져 개신교가 탄생한 역사적 배경을 카톨릭이 아직 스스로 극복하는 데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요.

 

김수환 추기경님은 독재권력에는 반대했지만 권위주의적 보수에 더 친숙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재권력이 무너진 이후에 한국 사회의 권력이 급속도로 국민들 사이로 내려와 낮은 곳으로 임할 때 그 분은 그것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대중보다는 엘리트, 즉 사회구성원의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의 도출보다는 소수 엘리트의 판단에 따른 의사결정을 선호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추기경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의 인연이 존재하는 듯 합니다.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가 눈물을 흘리고, 한승수 총리가 자신과 가족들에게 큰 사랑을 주셨다고 하는 한편에서는 진중권씨도 애뜻한 경험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종교의 품이 이회창씨도 안았고 진중권씨도 돌보았습니다. 박정희의 장례도 집전했고, 기타 여러 사회적 지도층의 장례식도 많이 집전한 걸로 보이더군요. 물론 빈민들과도 소통하셨겠고요. 그 분이 여러 계층을 두루 접하신 걸로 보이지만 카톨릭의 최고 지위에 있는 이상 수구적인 인사들과도 많은 접촉을 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인연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많고 오히려 일정한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아무래도 지난 10년간 수구신문들의 장난질도 많았겠지요. 사회의 큰 어른이신 분의 한마디가 논란의 향배에 종지부를 찍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겠습니까. 한나라당 당대표이던 박근혜씨를 만나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수구언론이 환영일색인 반면에 독재권력의 피해자이자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에게는 심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독재권력의 상징이 국가보안법으로 극명하게 집약되는데, 그 당시 걸출한 문학작품인 태백산맥이 아직도 국가보안법에 옭매어 있음에도, 명동성당에서 시위대를 지켜주던 이 분이 과연 그런 말을 하다니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지요. 다시 살펴보는 것입니다. 아하, 김수환 추기경은 극단적인 독재정권에는 반대했지만 그것이 의외로 소극적 결과물이었구나. 명동성당으로 피해들어간 학생들을 독재정권의 억압으로부터 막아주었지만 그것이 우선은 독재를 반대하고 폭력을 배제하기 위한 것일 수는 있어도 전면적인 시민권력의 민주주의에 대한 찬성까지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뼈아픈 한마디였습니다. 국가보안법을 추기경님이 지켜주고 있다니 누가 상상을 했겠습니까. 배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잘 살펴보니 배신은 아니고 착각이 맞겠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김대중보다는 김영삼을, 노무현보다는 이회창을, 그리고 촛불을 들고 있는 국민보다는 이명박을 먼저 생각하는 추기경님의 모습을 반추해보면 결과적으로는 독재시절의 극단이 착시현상을 불러일으켜 놓은 면이 있습니다. 국민을 죽이는 극단의 수구독재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 나머지는 모두 사회의 스펙트럼에서 한 편이었던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놓았던 영향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한국 카톨릭에서 30년 이상을 유일한 추기경으로 계시면서 최고의 권위 속에 존재하셨던 분입니다. 이것이 그 분의 삶의 궤적을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가 유신의 독재로 치달았을 때, 전두환의 폭압에 의해 대학생이 사망하였을 때, 김수환 추기경님은 그런 독재정권의 행위를 용납할 수는 없었겠지만 한편으로는 보수적인 사회지도층과의 교류도 많았던 한국 카톨릭의 수장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님은 본인 자신의 삶의 행적 이외에도 한국 카톨릭의 역사적 정체성을 감당해야하는 자리에 있었으므로 싫던 좋던 과거 일제시대 한국 카톨릭의 친일 행적들에 대한 자리매김이 달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추기경님 본인이 비록 친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바로 전세대 카톨릭을 대표했던 노기석 대주교의 친일 행적이 공개적으로 세상에 드러나기 보다는 묻혀 있기를 바라는 카톨릭의 입장을 김수환 추기경님이 외면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한국 카톨릭이 과거사에 대한 부끄러움에 대한 고백과 참회보다는 단순히 어쩔 수 없었던 시대의 아픔으로 치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으나 한국 사회의 영적 리더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신 분들의 자세로서는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독재의 시대가 간 후에 역사를 제대로 기술하려는 시기에 김수환 추기경님은 그에 대한 반작용을 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추기경님이 권력자나 재벌의 성대한 장례식을 집전하는 것보다 빈민들의 외로운 장례식에 위로와 축복을 전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입니다. 추기경님이 말년에 보여주신 인식의 한계를 국민들은 얼마든지 실망스러워하고 안타까워 할 수 있습니다. 독재의 시대가 끝나고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펼쳐지면서 김수환 추기경님이 보여준 위치와 한계에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80년대 독재권력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외치던 국민들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였던 명동성당은 민주주의의 성지가 아니라 또 하나의 침범하기 힘든 권위로 울타리 쳐놓은 종교적 품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재권력은 단지 그 안에서 종교권력을 무시하고 패악질을 부려 결판을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김수환 추기경님이 독재로 치닫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제대로 살펴보았다면 분명히 반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간 수구언론이 거짓된 정보로 혼란스러운 판단을 부추기며 고명한 인사들의 메세지를 왜곡했던 짓거리도 김수환 추기경님이 명철한 지성으로 제대로 살펴보았다면 소용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을 더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었던 80년대의 김수환 추기경님이라면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 손을 들어주셨을 것은 분명합니다.

 

언젠가는 김수환 추기경을 정점으로 했던 한국 카톨릭마저도 극복하지 못한 한계를 뛰어넘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오래 전부터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은 낮은 곳으로 임하며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부가 독재권력으로 변질되며 과거로 회귀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한국 카톨릭이 더욱더 국민들의 눈높이로 돌아와 낮은 곳을 돌보는 성자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모 물결은 그런 희망과 기대의 결정체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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