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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이야기 16 [반쪽짜리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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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나 [sanghoo] 쪽지 캡슐

2002-08-30 ㅣ No.3383

 

 

나뭇가지마다 작은 꽃망울들이 달린 봄날입니다.

 

 

두메산골 작은 마을에서 올라와 대학에 다니던 나는

 

한달에 한번 꼴로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언제나 누런 종이를 반으로 갈라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달호 보아라."

 

그런데 그날은 뭔가 이상했습니다.

 

달호가 아니라 "영숙아 보아라"로 시작된 편지는 아버지가

 

여동생 영숙이한테 보낸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겉봉투를 보니 ’최달호 앞’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참...."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봉투가 바뀐 거겠지 싶어 편지를 도로

 

넣으려던 나는 그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영숙아, 보아라. 네가 보내 준 돈은 네 오빠 등록금으로 보냈다.

 

오빠도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초등학교만 겨우겨우 졸업하고 그길로 공장에 취직해 뼈아프게

 

일만 해 온 여동생 영숙이. 다음 날 나는 바뀐 편지를 들고

 

동생이 일하는 공장으로 찾아갔습니다.

 

반갑게 달려나온 영숙이도 편지를 한 장 들고 왔습니다.

 

"오빠, 이것 땜에 왔지?"

 

우리 남매는 바뀐 편지를 서로 바꾸었습니다. 동생이 받은 편지는

 

’달호 보아라’로 시작됐습니다.

 

’성적이 올랐더구나. 애비보다 영숙이가 더 기뻐할 것이다. 너는

 

돈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거라.’

 

"오빠, 많이 힘들지?"

 

편지를 다 읽고 난 동생이 마다하는 내 손에 한사코 용돈을 쥐어

 

주고 달아났습니다.

 

저만큼 멀어져 가며 영숙이는 내게 크게 외쳤습니다.

 

"맛있는 거 사먹어 가며 공부해. 오빠, 나 간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언제나 반쪽짜리 종이에 ’영숙아 보아라’로

 

시작되는 편지를 내게 보냈고 그때마다 우린 만나서 편지를

 

교환했습니다.

 

반쪽짜리 편지는 우리 남매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버지가 일부러 꾸민 작전이었던 것입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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