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아홉 자식과 처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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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현 [star63] 쪽지 캡슐

2000-01-03 ㅣ No.2029

오늘 시무식을 하고 점심도 하고 지금 스팀이 나오는 방에서

나른하게 오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연중 가장 조용한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

지난 한해 함께 했던 모든 분들에게 대희년 은총이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얼마전 부주임 신부님이 마니또 선물로 주신 책을

보니까 무지와 맹신이 부끄럽더군요,,하나 하나 정리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믿음도 "알아야 한다"는 지극히 근본적인 부분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올해에는 신앙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도 좀 열심히 읽고 말입니다.

 

지난 연말 이야기를 좀 쓰려고 합니다.

작년 12월 31일에 주일학교 교장선생님 알로이시오, 레지오 단장이자

청년 성가대 지도 선생님인 로베르토, 온두라스에서 오신

스테파노 형님등, 그리고 주일학교 선생님 등이랑 함께 간 불우시설 가운데

한 곳이 계속 어른거려서 마음을 다잡기가 쉽지를 않습니다.

 

모두 네 곳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오늘 그중에 화양동 이야기만 쓸렵니다.

같이 다녀온 분들 중에서 다른 분들이 아마도 다른 곳의 이야기는

곧 올리리라고 생각되니까요.

 

화양동이었습니다. 골목길,,겨우 차 한대가 지나가는 곳이었는데

집을 잘 몰라서,,전화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어린아이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가져간 쌀을 스테파노씨가 어깨에 둘러메고

우리 본당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이 마련한 선물들을 가지고 따라갔습니다.

 

실평수로

얼마나 될까요,,한 15평 남짓 정도? 거실겸 바로 부억이 있고,

마름모 꼴로 방이 세개 있었습니다. 방 하나마다  작게는

2-3평에서 3-4평???????

거기에 애들 9명하고 정말로 천사같은 처녀 엄마가 있었습니다.

얼굴은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30대 초반의-나중에 31살이라고 들었습니다.- 9남매의 엄마는

우리 일행을 맞으면서 해 맑은 웃음을 띄었습니다.

 

품에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정말로 막 태어난 것 같은 아기,,

생후 23일 된 젓먹이 아이가 자매님 품에서 눈을 맟추고 있었고,

2,3살 짜리 아기에서 초등학교

5학년 아이까지 모두 9명이 단 한명의 처녀엄마에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우리의 시각과 기준으로 보자니 너무도 안스럽고 힘들어 보여서

처녀엄마를 바로 볼 수가 없었지요,,,방에서 마주 않았는데

저는 시선을 두기가 정말로 어려웠습니다. 아이들 중 둘은

옆에 앉아서 가지고 간 학용품들을 뜯어보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도중에 아까 마중나왔던 초등학교 5년 어린이는 차를 끓여오고요,,

(이 애가 거의 반 어른 구실을 한다고 했습니다. 집안 일을 많이들

거들어 주는 것입니다. 손님들이 오면 애들을 건사하고, 손님 시중까지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정말로 그 애는 우리가 마구잡이로 들어서자 좁은

현관에 여기저기 널려있는 신발들을 가지런히 플라스틱 통에 담아놓았습니다.

나중에 찾아서 나가기가 아주 쉬웠습니다)

 

 

이곳에 처음부터 자매님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전에 다른 사람이 운영을 했었는데,,도와주러 왔다가

"시선을 맟추는 아이들 때문에,,,,,,,,"

이제는 자신이

이집을 맡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밤잠이 없다는 이제 23일된

신생아가 자매님을 더욱이나 힘들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중에 나이가 아주 어린 애들은 계속 엄마,엄마 하면서

말을 걸곤 했습니다. 일일히 상냥하게 대하는 자매님의 얼굴을 대하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처녀 엄마는 문득 "빨래가 정말 장난이 아니예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말 도중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네사람 비좁게 앉은 옆으로

책장하나,,그리고 옷 넣어두는 서랍장하나,,바닥에는 아직 개지

못한 아이들 옷들이 여기저기 참으로 많이 널려 있었습니다.

주변에 도와주는 자매님들이 있다고는 했지만,,,정말이지 9명 애들의

빨래가 상상을 넘을 것 같았습니다.

 

로베르또씨가 안되었는지 옆에서 젖먹이 애를 받아서는 얼르더니,,애를

재우더군요,,그리고 또 이런 저런 이야기,,,,옆방에서는 같이 간

우리 본당 어린이들과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나머지 애들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이곳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데리고 간 분은 로베르토씹니다.

전화로 이 곳에 연락을 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어냐고 물으니까,,

"애들이 우유를 좋아하는데,,하루에 2리터씩 마시니까,,,사 줄 수가

없어서,,,우유를 몇통 사다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우유를 사가지고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깟 우유 정도야"하는 생각도

있었겠지요,,,그런데 그게 아주 절실한 것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미쳐 몰랐던 것이지요,,남에게 절실한 것도 내가 하챦으면 그렇게

치부해 버리는,,,,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 우리집을 생각했습니다. 애들은 집으로 배달되는

우유도 남기지요,,어떤 때는 우유가 남아서 그냥 버릴 때도 있습니다.

 

돌아서서 나올 때는 2살 남짓한 여자애가 이인화 선생님 품에서 떠나질

않으려고 하더군요,,우리 딸애도 안아주고는 무척 좋아했습니다.

다시 두 곳을 더 둘러야 했기때문에 서둘러 나왔읍니다만,,,

무언가 좋은 일을 했다는 뿌둣함으로 기분이 좋기 보다는,,, 돌아서는

발걸음이 참으로 무거웠습니다. 헐렁한 추리닝 바지를 입고 집 밖에까지

나와서 배웅하는 자매님의 눈 빛이 참으로 곱게 느껴졌습니다.

 

기분이 참,,,이상하던 참에,,,,

마침 집 앞에 떡볶이랑 오뎅을 팔고 있었는데,,,온두라스에서 오신

스테파노 형제께서 이게 제일 먹고 싶더라는 말에 전부다 매달려서

한 꼬치씩 했지요,,,바닥을 보고 말았더랬습니다. 아주 맛이 있었지요,,

오뎅과 떢복이랑,,,

 

언제 꼭 다시 한번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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