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짝사랑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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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성 [greenbee] 쪽지 캡슐

2000-06-01 ㅣ No.806

부제. 18년간의 짝사랑이야기.

 

 

오학년이 되는 첫날, 철민은 1반으로 배정되어 갔다. 다른 반에서 이 반으로 배정되어 온 아

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으나 아직 교실이 학생들로 다 채워지지 않았다. 철민은 제법 키

가 컸다. 자기와 같은 반으로 배정되어진 친한 애들과 창가 분단의 뒷 좌석에 자리를 차지

하고 담임이 들어 오기를 기다렸다.

"어! 현주가 우리 반이네."

철민이 앞에 앉은 동엽이가 그와 이야기 하느라 등을 돌리고 있다가 뒷문으로 들어 오는 아

이들을 보며 소리쳤다. 현주, 자주 듣던 이름이다. 남자 애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잘나고 예

쁜 여학생들 중의 한명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민은 현주가 누구인 줄은 몰랐다.

단지 이름만 듣고 있었을 뿐. 철민도 고개를 돌렸다.

"누가 현주냐?"

철민이 뒷문쪽을 보다가 낯이 익은 여자애를 발견했다. 전에 자신에 마음에 들어 왔던 그

키 큰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쟤도 우리 반인가 보네.’

"6반에서 오나 보네. 저 키 큰 애가 현주야. 남학생들 사이에서 쟤 모르면 간첩인데..."

"쟤가 현주냐?"

바로 철민의 마음에 들어 왔던 그 소녀다.

"응. 몰랐었냐?"

"너 쟤하고 친하냐?"

"아니. 쟤는 나 모를거야. 유명인이잖아."

자기보다 훨씬 키가 큰 소녀의 얼굴은 하얗고, 흰색 브라우스에 남빛 맬빵 치마가 도회적으

로 보이는 것이 여간 예쁜 모습이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 와서 인사를 했다. 싫어 하는 눈치가 엄청 많다. 특히 7반에서 온 애들

의 모습은 거의 울쌍이었다. 5학년 1반의 담임은 작년에 4학년 7반을 맡았던 선생님이었다.

집안 환경에 따라 아이들을 차별 대우하고 돈을 밝히기로 소문난 선생이었다. 거기다가 한

번 눈밖에 나 버리면 그 학생은 일년 내내 알게 모르게 모진 대우를 받아야 했다. 국민학생

들이니까 별 문제가 없었지 고등학생 정도만 되었어도 분명 문제가 되었을 선생이 이 반 담

임이었다.

"으이씨, 이제 우린 죽었다."

동엽이가 그 선생을 보자 마자 혼잣말을 했다.

 

앉을 자리가 배정 되었다. 주일마다 분단은 바뀌지만 분단 전체가 다른 분단으로 옮겨 가는

것이었기에 고정된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철민이가 앉은 분단의 오른 쪽 옆 분단의 제일 뒷

자리가 현주의 자리였다. 철민이가 앉은 줄보다 두 자리가 뒤다.

 

이틀 뒤에 반장 부반장 선거가 이루어 졌다. 담임이 반장 출마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작년에

우등상을 받은 아이들에게 한정 시켰다. 육십명 가까이 되는 한 반에서 우등상은 열명만 준

다. 철민은 작년까지 사년 연속으로 우등상을 받았었다. 하지만 철민이는 반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출마 했던 다섯명 중에서 반장이 된 아이는 자기 아버지가 세무소 소장이고 작년에

육반 반장이었던 그러니까 철민이가 던진 공에 맞아 쓰러졌던 현철이라는 녀석이 되었고,

부반장 두 명 중 여부반장은 바로 현주가 되었다.

"잘난 것들끼리 반장, 부반장 나눠 먹었구만."

다행히 철민이와 짝꿍이 된 동엽이가 혼잣말을 했다. 동엽이는 이 도시 근교에서 과수원을

한다.

"잘났으니까 반장, 부반장을 하지."

철민이가 작은 소리로 대꾸했다. 철민이는 반장으로는 그 현철이를 찍지 않았지만 여자 부

반장은 현주를 찍었었다.

 

"우리 반을 세계 제일의 반으로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반장이 된 현철이가 당선 소감을 발표했다.

"저거 또라이 아니냐?"

동엽이가 그 소릴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응, 또라이 맞는 것 같어."

"반장을 잘 내조하여 우리 반이 세계 제일의 반이 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현주가 이어 당선 소감을 발표했다.

"저것도 또라이구만."

"야이, 쟤는 아니지."

 

담임은 반장 선거가 끝나자 마자, 가정 환경 조사를 했다.

"집에 자가용 있는 사람?"

손을 든 아이는 여섯 명이었다. 반장과 여자 부반장도 손을 들었다.

"반장은 아버지 차가 뭐야?"

"아버지 차는 로얄 살롱이구요. 엄마 차는 로얄 엑스큐에요."

반장이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쟤는 엄마도 차가 있나 봐?"

"그러게 말이야. 너도 손들지 그랬어. 니네 집에 경운기 있잖아."

다소 배가 아픈 듯 동엽이와 철민이는 입맛을 다셨다.

"부반장은 뭔데?"

"피아트라고 했어요."

담임은 그 뒤로 전축 있는 사람. 피아노 있는 사람. 비데오 있는 사람을 차례로 물어 보았

다. 손을 든 아이는 계속 손을 들었고 그러지 못한 아이들은 계속 그냥 손든 아이들의 모습

만 바라 보았다. 손을 든 아이들은 우월감을 가졌을 것이고 그러지 못한 아이들은 그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담임이라는 사람이 어린 아이들의 편을 가르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에 칼라 텔레비젼 있는데 왜 그건 안 물어보지?"

동엽이가 한번도 손을 못 든 것이 분했는지 철민이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도 있어 임마. 그리고 우리 집에는 좋은 사진기도 있어."

 

오학년이 된 지 한 달이 지나도 철민은 현주에게 단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현주도 철

민이에게 영 관심을 주지 않았다. 현주는 사 학년 때부터 친했던 반장과 자기 짝꿍, 그리고

자기 주위로 모여드는 아이들과 친해져 갔다. 현주 주위에는 모두 살만한 집안의 아이들이

었다. 철민은 그래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물론 그는 잘 모르지만. 현주와 친한 여자

애 중에도 그를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현주 앞에 앉은 아이였다. 이름은 박 지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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