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사제들의 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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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5-03-04 ㅣ No.365

 

 

서울 대신학교에서는 매달 첫 목요일 아침 미사 때마다 은인들을 기억하며 기도드립니다. 신학생들의 생활과 신학교 운영을 위해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물적으로도 지원해주시는 분들이 적지 않지요. 그래서 신학교에서는 이분들에게 기도로써 감사의 마음을 표시합니다.

신부가 되서도 은인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특히 보이지 않게 기도와 희생이라는 영적 지원을 해주는 분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분들 덕분에 사제 생활을 해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제가 굳건하게 자기 길을 잘 갈 때만이 아니라 휘청거릴 때에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사제도 잘못하면 어떤 식으로든 충고를 받아야 하겠지만, 충고 못지 않게 기도와 격려도 많이 해주었으면 합니다.

몇 년 전에 서울 어느 본당에서 주임 신부님과 신자들 간의 갈등이 불거져서 인터넷 상에서 공방전이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비판 일변도로 주임 신부님을 공격하는 신자들, 반대로 이런 신자들을 악의 무리라고 비난하면서 무조건 그 신부님을 감싸는 신자들 간의 감정 싸움이 증폭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한 신자분이 참으로 공감이 가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그 글을 쓴 분은 젊은 남자 신자분으로서, 공방의 대상이 된 신부님이 보좌시절에 자신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고민 끝에 늦은 시간에 그 신부님을 찾아갔더니 내치지 않고 밤 늦게까지 인내롭게 말을 들어주시고 격려를 해주셔서 큰 힘을 얻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향한 여정 중에 계시는 신부님들께서도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시기도 분명 있겠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시고 비틀비틀 그렇게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기가 분명히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만나는 신부님들의 모습은 하느님을 향한 그분들의 긴 여정 중의 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만났을 때 신부님의 모습이 비틀거리는 모습이었다고 해서
과거의 그분의 모습이, 혹은 미래의 그분의 모습이 내가 본 모습과 같으리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마치 '지금', '내가' 뜯어고치지 않으면 도무지 가망이 없는 무엇을 다루듯,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신자분은 신부님의 부정적인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이해와 인내로 대하자고 호소하는 것 같았습니다. 잔잔하고, 따뜻함이 배어 있는 글을 읽으면서 거칠어졌던 마음의 결이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신자분들도 사제들에게 대단히 중요하고 필요한 은인입니다. 기도와 희생, 물질적 희사를 통해 사제를 돕는 분들만 아니라, 휘청거리는 사제를 따뜻한 눈으로 인내롭게 견디어주는 신자들, 그들은 사제들에게 참 고마운 은인들입니다. 이런 은인들이 주위에 많이 있을 때 사제들은 좋은 사제로 성장해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 손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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