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평의회[Con] 2006년 9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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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 쪽지 캡슐

2006-09-07 ㅣ No.39

 

Allocutio by Rev. Fr. Bede McGregor O.P.

Spiritual Director to Concilium


레지오 단원과 성체


우리들은 오늘 ‘그리스도의 몸’ 대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날을 ‘성체성혈 대축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해마다 이 날을 맞이하면서 전체 교회는 특별한 선물인 영성체에만 오직 관심을 기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교회의 전례생활에 일치시키는 것이 완전한 영성생활을 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삶과 교회 전례생활을 조화시키는 방법으로 우리들은 주님의 삶과 죽으심과 부활의 모든 신비에 진실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살면서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은 점차 그리스도를 닮게 되며 더욱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과 사도직을 수행함에 있어 성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레지오 교본에서 영성체에 관한 절(節)을 읽어보면 참으로 인상적이며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체는 모든 레지오 단원들의 성(聖)스러움과 사도직의 중심이며 원천입니다. “성체는 은총의 중심이며 샘이다. 그러므로 성체는 레지오 단원의 활동계획을 지탱하는 바로 그 머릿돌(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열정적인 활동을 한다고 하여도 그 활동의 주된 목적이 성체께서 모든 이의 마음을 다스리시도록 해 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한 순간이라도 잊는다면 우리가 설사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활동하였다 하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한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왜냐하면 성체께서 사람들의 마음 안에 계시며 그 마음을 다스리실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목적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여 사람들이 그분과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주로 성체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51 - 52).


모든 레지오 활동의 주된 목적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성체를 모시도록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왜 성체가 레지오에 있어 그 초석과 같이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물론 성체는 조각(彫刻)과도 다르고 성화(聖畵)와도 다릅니다. 그 조각과 성화가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 해도 말입니다. 성체는 물건도 아닙니다. 그것이 아무리 성스러운 물건이라 하여도 말입니다. 성체는 그가 아무리 위대한 분이었다 하여도 선종한 어느 성인의 유체(遺體)와도 다릅니다. 성체는 어느 특별하신 한 분이십니다. 성체는 누구인가 그 한 분이십니다. 성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의 실존(實存)입니다. 성체가 레지오의 초석이 되는 까닭은 우리 안에서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성체의 힘 때문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면 우리들이 찬미하는 그리스도의 그 인성을 우리 안에 모시게 되며 또한 그 분의 심장이 우리 안에서 뛰게 됩니다. 우리가 성체성사에 참여하고 성체조배를 할 때에 그 분은 몸소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들은 그 분이 베푸시는 성삼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분은 한 없이 크시고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성체를 모실 때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시는 그 넉넉하심은 놀라울 뿐입니다.


나는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 “성체를 묵상할 때에 우리들의 마음은 놀라운 믿음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그 분의 끝없는 사랑의 신비뿐만 아니라 사람이신 그 분의 신비에 관한 믿음입니다. 성체 앞에 서면 시편의 다윗의 말이 저절로 음송(吟誦)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당신은 그를 돌보십니까?’ 하느님이 자신을 사람이 먹을 양식으로 주신다면 그 분이 보시기에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가치가 있는가! 우리들의 심장을 오직 하느님만이 채울 수 있다면 그 안에 얼마나 넓은 공간(空間)을 감추고 있는가! 오 - 하느님! 당신께서 우리들을 몸소 지으셨습니다.” 성 어거스틴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심장이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 그 심장이 멈추지 않습니다.’ 레지오 단원 중에 누가 어떤 분을 성체 앞으로 인도한다면 그 레지오 단원은 인성으로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그 분을 인도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에게 이것 보다 더 근본적이며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우리 영혼이 그 타는 갈증에 시원한 샘물을 찾은 것이 되며,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진실로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성체를 모실 때 우리들은 바로 하느님의 앞에 서게 될 뿐만 아니라 그 분께서 차려주신 식탁에 초대 받아 먹고 마시게 됩니다. 그 분께서 바로 자기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나는 이 짤막한 훈화를 하면서 그리스도 실존(實存)의 믿음(信仰)을 우리들이 잃지 않도록 하는 이 성체성사에 관하여 지금 이 시간 잠간 깊이 생각해 보고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 특별히 미사성제의 희생제물인 성체의 또 다른 측면(의미)에 관하여 말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은총과 영혼구원의 사도직 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은총은 이 미사성제의 희생제물인 성체를 통하여 받습니다. 우리는 실존으로서의 성체의 풍요함의 예(例) 몇 가지를 어렴풋이나마 제시하고 있을 뿐 입니다. 성체 안에서의 예수님의 실존은 예수님께서 우리들과 물리적으로 혹은 우리와 그 분 사이의  거리가 멀거나 혹은 가까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중개(仲介)를 통하여 사람 의 사람에 대한 어떤 특별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영적인 일치입니다. 그 분은 우리들에게 넘치도록 넉넉한 관심을 몸소 보여 주시며, 우리들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시고 우리들을 적극적으로 도우시려는 사랑이 넘쳐나십니다. 그러므로 성체 안에서의 예수님의 실존은 우리들에 대한 그 분의 관심과 사랑을 몸소 직접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며, 동시에 사람과 사람 즉 예수님의 우리들과의 어떤 특별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영성체는 그 분의 육적 현존을 통하여 중개(仲介)됨으로서 이루어지는 우리들과 예수님의 친밀한 관계를 상징하는 우정의 성사입니다.


마리아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과 우리들이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그 분과 서로 부족함이 없는 벗이 되어 주기만을 바랍니다. 우리들 역시 이 목표를 좇는 것은 마리아에 대한 진실한 헌신과 사랑을 실천하고 마리아와 하나 되어 마리아와 함께 사도직에 나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사목교서 ‘Redemptoris Mater'(구세주의 어머니)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면서 이 훈화를 마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교본에서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성찬식 - 구원의 신비 성찬식 - 에 참례할 때 마리아의 모성을 특별히 깨닫고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이 성찬식에 그리스도께서 즉 동정 마리아의 아드님으로 태어나신 그 분의 몸이 우리들에게 오셔서 함께 하시게 됩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들의 경건함과 신심을 통하여 복되신 동정녀에 대한 헌신과 성체 흠숭(欽崇) 사이에는 어떤 확실한 관련성이 있음을 언제나 정확히 감지(感知)하고 있습니다. : 이것은 하나의 사실로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성찬식과 여러 종교 계파들의 전통이나 현대적 영성운동(청년들의 영성운동도 포함됨) 또는 각지(各地)의 성모성지들에서 행하는 사목적 의식(儀式)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신자들을 성체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레지오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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