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영원한 생명이냐 ?(요한6:40-59)

인쇄

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0-06-14 ㅣ No.314

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만나냐 영원한 생명이냐

(요한6:40-59)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에유다인들이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42 그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이 요한복음 6장은 과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죽어야 할 자들을 대신하고 대표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에 대한 긴 설명입니다생존을 위해 이 세상의 을 구하러 주님께 찾아온 많은 무리들에게 오병이어 의 기적과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 등의 시청각 자료까지 동원하셔서 구원의 참 의미를 가르치시고 너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생존 에 필요한 세상의 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생의 이라는 것을 반복하여 설명해 주시는 예수님의 애타는 마음을 우리는 6장 전체의 본문을 통하여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을 구하기 위해 주님을 찾은 사람들은 요지부동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주님과 표징을 보고 주님을 찾아온 무리들과의 대화를 주의 깊게 보면 마치 선문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주님은 계속해서 영원한 생명의 이신 당신 자신에 대해 말씀을 하시는데 무리들은 집요하게 세상의 으로 대답을 합니다.

그건 비단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타인 지방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이 우주와 역사가 시작된 그 시점부터 하느님과 인간 간의 대 화는 늘 어긋난 선문답이었고 그 선문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하느님은 계속해서 하느님 이외의 다른 것을 절대 의지해서는 안 되고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의뢰하며 당신께 순종하는 삶만이 진짜 행복과 만족에 이르는 길이라고 역사를 통해 계시를 통해 반복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인간들은 계속해서 그 분께 세상의 힘을 복으로 달라고 조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느님과 인간간의 선문답은 오늘 본문을 비롯한 6장 전체에 편만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본문 41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수군거렸다고 합니다수군거리다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공귀조는 비둘기의 울음소리에서 유래된 동사로 불평하다투덜거리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불평불만을 통해 타인을 중상 모략하거나 비방하는 것을 수군거림이라고 합니다그래서 바오로는 타락한 인간 본성에 대해 묘사를 하면서 수군거림을 포함시킵니다.(로마1:29) 이스라 엘이 광야에서 물이 떨어지자 모세를 원망했지요?(출애15:24) 그리고 가나안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부정적인 보고를 했을 때도 이스라엘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민수14:2) 그러한 원망의 외침이 바로 수군거림이라는 단어가 함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쫓아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세상의 이 아닌 생명의 에 관해 이야기하시는 예수님께 불평과 불만과 원망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그러자 주님께서 수군거리지 말라하고 그 무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그리고는 또 다시 생명의 이신 당신에 관해 설명을 해 주십니다.

이번에는 주님께서 출애굽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쏟아졌던 만나를 예로 들어 설명을 하십니다유대인들이 지금 주님을 찾아와서 출애굽 광야에서 예언자 모세에 의해 주어진 눈에 보이는 만나와 같은 세상의 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바로 그 만나를 예로 들어 그 만나가 상징하고 있던 것이 바로 당신 자신이었음을 재차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6:48-51)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출애굽 때 광야에서 주어진 만나를 먹은 사람들은 잠시 배는 불렀을지 몰라도 결국은 모두 다 죽었다는 것이지요주님은 먹고 죽을 만나 정도가 아니라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을 주러 오신 분이심을 또 다시 천명(闡明)하신 것입니다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이스라엘에게 복으로 주어졌던 것이 아닙니다

만나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오직 하느님의 은혜로 그들의 결핍과 굶주림이 해결되는 모양을 통해 죄와 허물로 죽은 이들이 오직 하느님의 은혜로 하늘의 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복음을 설명하는 도구로 쓰인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죄인들은 절 대 이 세상의 배부름에 의해 하느님께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는 식물(食物)이었던 것입니다.(신명 8) 출애굽기 16장으로 가서 만나에 담긴 상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출애16:16~20) 16 주님께서 내리신 분부는 이렇다. ‘너희는 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여라너희 식구의 머리 수대로 한 오메르씩저마다 자기 천막에 사는 이들을 위하여 가져가거라.’” 17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렇게 하였다더러는 더 많이더러는 더 적게 거두어들였다. 18 그러나 오메르로 되어 보자더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더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인 것이다. 19 모세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아무도 그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마라.” 20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그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었다그랬더니 거기에서 구더기가 꾀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모세가 그들에게 화를 내었다.

 

하느님께서 만나를 주시면서 다음 날 것까지 미리 거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이스라엘의 하루하루 의 삶은 모두 하느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임을 가르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의도가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하느님의 백성은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로만 사는 것입니다그런데 어떤 이들이 다음날 것까지 미리 거둔 것은 하루하루가 하느님의 은혜임을 믿지 못하는 것이며 결국 자신들의 힘으로 내일을 준비하려는 시도였습니다생존의 문제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의 은혜 앞에 맡길 수가 없습니다도저히 불안해서 안 됩니다그래서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자기들의 꾀를 동원하여 자신들의 내일을 준비하려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만나는 그 다음날이 되면 썩어버립니다그 것은 너의 내일은 내가 준비 한다는 하느님의 외침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 다음날 것까지 거두어 집 안에 감추어 둡니다따라서 생명에 대해 말씀하시는 하느님 앞에 와서 자신의 내일에 필요한 힘들을 구하는 것은 유치한 신앙 정도가 아니라 불신앙인 것입니다하느님은 분명 당신의 입으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해 근심하지도 말고 구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루가12:29)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서 하느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살려내심으로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은혜에 의존해서만 살아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주셨습니다아울러 그 골고다의 십자가는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의 은혜의 장중 아래에서만 살아가 게 될 것임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만나는 바로 그 전체를 담고 있는 시청각자료였던 것입니다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은혜의 빵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살아나 게되는 것이며 그렇게 은혜로 살아난 자들은 영원히 하느님의 은혜에 순응하며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의뢰하며 살아가게 될 것임을 상징으로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만나는 오히려 매일 매일을 하느님의 은혜만 의지하여 살라는 하느님의 시청각 자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 만나를 오해하여 그와 같은 세상의 빵을 우리에게 달라고 주님께 조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그 말은 만나를 통해 영원한 생명이신 하늘의 빵이신 예수와 하느님의 은혜만을 쫓아 살아야 하는 하느님 백성의 삶을 배우라는 하느님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나를 세상의 배부름을 기대하며 먹음으로 모두 죽음에 이른 것같이 세상의 배부름을 위해 나를 찾아온 너희도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는 말인 것입니다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만 의지하며 세상의 힘들을 놓는 자들이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러한 하느님의 경고는 구약에서부터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2열왕 2:23~24) 23 엘리사는 그곳을 떠나 베텔로 올라갔다그가 베텔로 가는 도중에 어린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대머리야올라가라대머리야올라가라!” 하며 그를 놀려 댔다. 24 엘리사는 돌아서서 그들을 보며 주님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그러자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그 아이들 가운데 마흔두 명을 찢어 죽였다.

엘리야가 승천을 한 뒤 엘리사가 베텔로 올라갔을 때 아이들이 엘리사에게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조롱을 했습니다그러자 엘리사가 그들을 저주하여 암 곰 둘을 불러 사십 이명을 찢어 죽이게 합니다하느님의 종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속성을 쫓아 사랑하고 용서하고 용납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그런데 왜 엘리사는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놀린 것에 격분하여 곰을 불러 마흔 두 명이나 죽인 것일까요?

엘리야가 승천한 때는 BC848년입니다이스라엘이 솔로몬의 신하였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반역으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진 것이 BC931년이지요그렇게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지자 당장 문제가 된 것이 북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전 제사였습니다왜냐 하면 이스라엘의 성전은 남 유다의 땅인 예루살렘 한 곳에만 있었기 때문에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러 자주 남 유다를 찾게 된 것입니다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베텔과 에다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그 곳에서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1열왕 12:25-33) 그러니 베텔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금송아지를 섬기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텔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하느님의 집에서 하느님을 전적으로 의뢰하지 않고 애굽의 풍요의 신이었던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것을 하느님이라 부르며 세상의 힘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곳에 엘리사가 간 것입니다그런데 그 곳에 있던 아이들이 엘리사에게 대머리여 올라가라하고 조롱을 한 것입니 다그 말은 너와 네 스승이 섬기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필요 없으니 너도 네 스승처럼 하늘로 가버려라는 조롱이었던 것입니다하느님의 집에서 세상의 힘에 밀려 하느님이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하느님은 그것을 못 참으시는 것입니다그래서 마 흔 두 명의 아이들을 찢어 죽이는 모습으로 하느님의 분노를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대로 아이성의 아간에게서 반복하여 경고되고 있습니다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하고 여리고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성에 불과한 아이를 점령하려 했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이 아이에서 대패를 했습니다그 이유는 아간이라는 사람이 여리고를 점령한 후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외투 한 벌과 금은을 조금씩 숨겨 자신의 내일을 준비했기 때문이었습니다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택한 민족이었습니다하느님은 이스라엘 중에 임하시면서 이스라엘을 인도해 가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체가 하느님의 처소하느님의 집베텔이었던 것입니다그런데 그 하느님의 집에서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꾀로 내일을 준비한 행위가 나온 것입니다하느님은 그와 그의 아들들과 딸들을 모두 돌로 때려죽이게 하고 불살라 버립니다그리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대대로 그 일을 기억하게 했습니다그 까짓 외투 한 벌금은 조금을 숨긴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이기에 하느님께서 그렇게 진노하시지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세상의 힘들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죽음밖에 돌아갈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신약으로 와서 영적 이스라엘인 초대교회에서 또 한 번 반복하여 경고됩니다.

교회는 하느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집 베텔입니다초대교회는 오직 하느님만을 의뢰하며 세상의 힘을 상징하는 자신들의 재산을 모두 교회에 내어 놓고 필요한 이들의 결핍과 부족을 채우는 삶을 살았습니다그런데 아나니아와 삽피라가 재산을 다 팔아 조금 감추어 두고 교회에 헌금을 했습니다그런데 하느님은 베드로를 통해 그 들을 죽여 버리십니다재산 다 팔아서 교회에 헌금하고 조금 감춰둔 게 그렇게 죽을죄인가요?

하느님은 하느님만을 의뢰해야 하는 당신의 백성들이 자신의 꾀를 이용하여 하느님 이외의 다른 것에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못 참으시는 것입니다전적인 의뢰와 전적인 순종이것이 바로 성도가 도달해야 할 신앙의 목적지인 것입니다.

(고전3:16) 16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성경은 바로 우리 자신이 성전즉 베텔이라고 합니다그렇다면 우리 성도에게서는 하느님을 향한 전적인 의뢰와 의존과 순종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그러한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의 집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느님 이외의 다른 것을 구하면 어떻게 된다고요?  거기가 바로 아골 골짝인 것입니다거기가 바로 아나니아와 삽피라의 무덤인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하느님께 구하는 것은 자녀로서 당연한 것입니다당연히 우리 아버지께 우리의 필요를 구해야지요내 자식이 버젓이 아비가 살아있는데 옆집 아저씨에게 가서 자기의 필요를 채워달라고 하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그처럼 우리는 우리 아버지에게 우리의 필요를 고해야 합니다그렇지만  어떻게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들이 하느님의 뜻과 계획과 의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는 데에만 그 아버지를 이용하려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우리가 정말 성숙한 하느님의 자녀라면 우리 아버지에게 우리의 필요를 고하는 것에 선행하여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 드릴까어떻게 하면 우리 아버지께 효도를 할까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러한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계속해서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자녀가 정말 자녀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주님은 지금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세상의 빵을 구하러 온 그 무리들에게 아골 골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인 영생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데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배를 부르게 해 줄 세상의 빵만을 조르고 있는 것입니다본문 48절부터 57절까지를 차근차근 읽어보자고요.

 

(요한6:48-57)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실 수 있으시지요주님은 당신 자신이 생명의 빵이며 하느님께서 당신께 주신 자들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라고 분명하게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육신의 배를 불리고 육신의 목을 축이는 것은 주님이 공급하시겠다는 것들의 목록에 단 한 가지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그 영생의 삶을 실재 화하여 보여주는 삶을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입니다영생은 신적생명입니다하느님과 같은 성품과 하느님과 같은 됨됨이가 나타나는 삶이 영원한 생명입니다그 영생은 사랑으로 대표 됩니다.

따라서 생명을 먹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성도가 하느님 앞에 구해야 할 것은 사랑하는 자로의 성숙인 것이지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닌 것입니다하느님께서 예수를 통해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까요.

 

(루가12:13~15)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이 주님께 자신의 형이 부당하게 유산을 착복했으니 랍비로서 그 형에게 충고하여 유산을 공평하게 나누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이 이야기에서 야단을 맞아야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형입니다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생에게 유산을 하나도 물려주지 않고 혼자서 다 차지했으니까요그런데 주님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으십니다오히려 그런 부탁을 하러 온 그 사람을 야단치십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14) 주님은 이 세상의 힘을 정당하게 차지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사람도 이렇게 야단을 치십니다.

네 말이 정당한 것이기는 하다만 나는 그러한 것 챙겨주러 온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그 말은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주님을 찾는 것이 그러한 세상의 에서 기인(起因)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3서의 그 이야기는 그 요한3서의 수신자인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에 대한 칭찬과 더불어 그의 영적 강건함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3요한3-4) 3 형제 몇 사람이 와서 진리에 대한 그대의 충실성을곧 그대가 진리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증언할 때에 나는 매우 기뻤습니다. 4 나에게는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간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잘 보세요사도 요한은 가이오라는 사람이 진리를 듣고 진리를 받아들여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히 기뻐하며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바로 그 위의 1절과 2절은 그 편지의 인사말인 것입니다.

(3요한1-2) 1 원로인 내가 사랑하는 가이오스에게 인사합니다나는 그대를 진리 안에서 사랑합니다. 2 사랑하는 이여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

이 인사말을 3절과 4절과 연결시켜서 보세요. 3절과 4절에 의하면 여기서 네 영혼이 잘됨이라는 것은 진리를 듣고 진리를 받아들여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그게 바로 네 영혼이 잘된 것입니다진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가이오가 진리와 전혀 관계없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었는데 이제 진리를 받아들인 가이오가 진리를 따라다른 말로 하느님의 통치를 따라 그의 삶을 삽니다그게 그의 영혼이 잘 된 것입니다그러한 것처럼 매사가 잘되기를 기원한다는 것은 가이오의 모든 삶이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삶이 아닌 그렇게 진리를 따라하느님의 통치를 따라 사는 삶이되기를 기도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영적 건강함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므로 영적인 건강함까지 기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그게 사랑하는 이여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는 구절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 구절은 만사형통을 이야기하는 구절이 아니라 오히려 만사가 틀어질지라도 너의 매사가 하느님의 통치 아래에서 진리를 쫓는 삶이되기를 기도하는 구절인 것입니다

영생은 그렇게 매사에 하느님의 진리를 쫓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그 삶에 왜 지나치게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 삶에 왜 높은 지위가 필요하고 그 삶에 왜 멋진 자동차와 큰 집이 필요합니까그런데 왜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러한 세상의 빵들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입니까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성도의 부귀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입니다오늘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번영의 신학은 저주받을 사탄의 작품인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번영의 삶에 전혀 쓸모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마태16:21~23) 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주님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내게서 물러가라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함으로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가 주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주님을 야단치며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22절에서 반박하여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에피티마오는 비난하다훈계하다책망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 단어는 예수님이 풍랑을 꾸짖으실 때 쓰인 단어입니다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세상 부귀영화와 전혀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 죽으셔야 죄인들에게 생명이 주어지게 됨을 설명하시자 베드로가 펄쩍 뛰며 그럼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쫓아 온 우리는 뭐냐?’고 따지고 든 것입니다영원한 생명에는 관심이 없고 생존을 위한 빵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앞에서 죽으면 안 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죠그런데 그러한 자를 가리켜 주님은 사탄이라고 부르십니다그렇게 번영신학은 마귀의 신학인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쫓아 이 땅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을 보여주어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태16: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주님은 그렇게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주님의 죽으심을 만류하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성도들에게 죽는 모습으로다른 말로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모습으로 진짜 복을 주시는 것처럼 그 복을 받은 성도 또한 자기를 부인하는 자신의 죽음으로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고 제 목숨을 잃으면 찾을 것이라는 말은 자신의 육신의 생명을 위한 세상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인 것입니다그러한 세상 것들로부터 자유롭게된 자들만이 생명을 찾게 된다는 것이지요따라서 세상의 빵과 생명의 빵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구원도 주고 세상에서도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그리스도교는 가짜입니다.

 

28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느님의 통치에 순복하는 하느님 나라(교회)가 이 세상에 생기게 되고 그들 안으로 주님께서 들어가 그들을 통치하시는 그 광경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보게 될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따라서 교회의 특징은 주님의 통치에 순복하여 진리를 쫓아 사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과 이웃을 목숨 걸고 사랑하는 영생으로의 통치를 하시는 분이십니다그렇다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 바보처럼 사랑하고 바보처럼 용서하며 바보처럼 용납하는 삶을 살며 손해마저도 감수하는 삶을 살아야지요그런데 어떻게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혈안이 될 수가 있습니까기복신앙이 그거 아닙니까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나고 싶은 것그게 오늘날 번영신학을 외치는 이들의 신학 아닌가요?

교회가 그렇게 여전히 저 세상에서도 잘되고 이 세상에서도 잘 되어야만 한다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비춰지니까 그토록 많은 안티(anti)교인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교인들이 안티교인들로 부터 이러한 비난을 받고 있습니까그리스도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쫓아 세상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밟아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는 모습들을 자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다른 이들의 유익을 챙기는 영생의 삶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생명의 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그 영생에 관심을 가지셔야지요성도는 자신을 죽이는 것으로 그의 성도된 표지를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50절을 보면 예수는 우리에게 생명의 빵이 되셔서 우리를 죽지 않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다고 말씀을 하십니다어디서는 죽어야 한다고 하고 어디서는 죽지 않아야 한다고 하고 조금 헛갈리지요

죽지 않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속사람이고 죽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겉 사람인 것입니다사도 바오로가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고 고백을 한 것은 그의 속사람이 날마다 살아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우리의 탐욕우리의 야망우리의 비전 하느님 앞에 모두 내려놓으시고 하느님의 비전과 하느님의 계획이 우리의 삶을 채우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단 한 가지 당신의 백성을 새 사람으로 살려 내는 것입니다.

(요한6:40)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뜻은 우리의 삶 속에서 신적 생명인 영원한 생명이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우리의 겉 사람에 속하는 세상의 힘들을 자꾸 놓아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그게 자기 부인이요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입니다그러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는 그 전까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쌓아두었던 세상의 힘을 놓는 행위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자케오가 주님을 만나자 그의 재산을 내 놓은 것 기억하세요초대교회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상징하는 재산을 내 놓은 것을 기억하십니까그런데 예수를 부르며 오히려 그러한 세상의 힘들을 채우려 하는 건 반그리스도교시민연합 같은 안티그리스도교인들에게 조롱당해 마땅한 것입니다그리스도교인들이 자기들이 해야 할 것은 하나도 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자신들의 배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으니까  오명(汚名)을 뒤집어쓰는 것 아닙니까?

열아홉 살 미만의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금지도서로 지정해야 한다는  천만인 서명 란에 어떤 사람이 참 얼굴 뜨거운 댓글을 달 았더라고요. ‘걱정 마세요. 그리스도인들은 어차피 어른들도 성경을 안 읽어요자기들 소원 비느라 그럴 시간이 없어요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의 눈에 그리스도교인들은 자기들의 정경인 성경조차도 읽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욕심만을 쫓아 사는 자들로 보여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해야 할 바를 해야 합니다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배우고 연구하여 그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진리를 쫓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그게 영원한 생명의 빵을 먹고 영원한 생명을 살아내 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우리들은 그 일에 얼마나 열심을 내고 계십니까자기들도 읽지 않는 성경을 권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참 그런 코미디도 없다 싶어요우리 먼저 하느님의 말씀 앞에 올바로 서서 그 말씀을 쫓아 열심히 살아내십시다.

  



1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