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성서공부

수요성서(6월22일) 행동과 실천이 뒤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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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 [vlxj3004] 쪽지 캡슐

2006-06-23 ㅣ No.101

 

   †그리스도님 우리의 평화                                         6;22

 

온 우주만물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는것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도

스스로 들의 흐름과 진행을 통해서 움직이는것 같지만

결국은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제가 믿습니다.

 

각자의 인생들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려고

세상에 보내짐을 받았고

그 인생 삶의 지침인 지극히 거룩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드러난

우리에게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주님께 향한 끝 없는 신뢰와 확신으로 변질됨이 없는 믿음 갖기를

그토록 원하시는 모습을 깨닳습니다.

 

우리의 생사 여탈권을 갖고 계시며

욕심으로 구하지 않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기도를 기꺼이 흠숭 하시는 아버지 께서는

그 기도 들어 주시고 영광 드러내 주실것 이라고 확실히 믿사옵니다.

 

 

※ 행동과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믿음 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 

 

14 절

나의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티 토 오펠로스.....메 뒤나타이 헤 피스티스 소사이 아우톤)

 

2:1-13, 절 까지 야고보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고 자처 하면서

같은 교우들을

외적인 모습으로 가난한 자들을 평가하는 가진자 들과,

있는자 들인 자기들과 형평에 어긋나는 차별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러한 자세의 믿음은

믿음도 아니고 신앙생활도 아니라는 것을 지적 했습니다.

 

14-26 절 까지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 한다면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믿음은 믿음도 아니고 신앙생활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 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전개해 나가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야고보는

우리에게 2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1,

만일 믿음이 있다고 자처 하면서

그에 따르는 실천이 있는 행함이 없다면 그것이 과연 믿음 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 내게 무순 유익을 줄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 입니다.

 

물론 대답은 아무 유익이 없다, 입니다.

 

에르가,(원형,에르곤)

행위, 행하여 지는 과정, 요구된 임무, 행동 또는 진행의 결과,

사실상의 실체, 라는 뜻으로

 

믿음 이라는 토양 위에

자연 스럽게 나타나고 드러 날 수 밖에 없는 행위를 말 합니다.

곧 실천이 전재된 믿음 입니다.

반듯이, 자연 스럽게 행동으로 나타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셈이니

그의 신앙 생활은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는것이고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지식적인 신앙의 지식만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신앙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라는 말씀으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26-27,

누구든지 자기가 신앙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혀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셈이니

그의 신앙 생활은 결국 헛것이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말 로만 의롭고, 말 로만 경건하고, 하는 외형적인것은

실상 그런 사람은

믿음도 없고 경건치도 못한 비 신앙인 이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내 주님으로 고백한 사람 이라면

예수님이 말씀 하여주신 사랑의 계명, 즉

 

세상에서 소외 받는 가난한 이들과 무시받는 빈천한 이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가 갖고 있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자에게 재물을 주셨다면

그것은 받은 그 개인이 치부를 하게하기 위하여 주신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신 재물을

그의 손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 가려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 하는것과 같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듯이

 

야고보는

이 예수님 말씀하신 말씀에 근거를 두고 말 하고 있습니다.

 

내가 잘나고 특해를 입어서 부자가 되었다고 교만치 말라는 것입니다.

모은 재물이 내것 이라고 착각 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않는 자에게 오는 결과는

 

▲마태오 7:21,23,    25:41-46,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또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그들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또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면 임금은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루가 6:46-49, 

"너희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하면서 어찌하여 내 말을 실행하지 않느냐?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주겠다.

 

그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큰 물이 집으로 들이치더라도

그 집은 튼튼하게 지었기 때문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큰물이 들이치면 그 집은 곧 무너져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2,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믿음, 입니다.

(에르가 데 메 에케; 메 뒤나타이 헤 피스티스 소사이 아우톤)

에르가 데 메 에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입니다.

 

자기가 갖고있는 믿음을

측량 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말씀이 명령 하시는대로 실천에 옮겼느냐 그렇게하지 않았느냐, 로

믿는자들의 행함으로 평가 힐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지적인 지식이 아니라

실천에 옮기는 행동임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에르가,(원형,에르곤)

이미 행동으로 옮겨진 상태,

요구된 임무를 진행 하고있는 상태,

행동의 진행과정, 행동 진행 과정의 결과, 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말씀, 곧

구약의 모든 말씀이 신약의 말씀으로 귀결 되여 들어 온

복음 말씀이 말씀이 근거가 되어

행동으로 자연 스럽게 나타나는 실천을 뜻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 한다면

사랑하는 분의 말씀대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기준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렇게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말씀을 기만하는 것이며

말씀을 내려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5 절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에안 아델포스 에 아델페 귐노이 휘파르코신 카이 레이포메노이

테스 에페메루 트로페스)

 

*아델포스 에 아델페: 형제, 자매, 입니다.

 

엑클레시아, 즉 교회의 공동체의 일원이며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십자가 제사로 한 형제 자매가 된

예수님 안에서의 한 지체들인 가족 개념, 이라는 뜻입니다.

 

귐노이 휘파르코신: 헐 벗은 상태, 입니다.

거이 나체에 가까울 정도로 몸에 걸친 옷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레이포메노이,(원형,레이포)

결핍하다, 없다, 부족하다,  라는 뜻으로

먹을 음식의 부족함을 뜻합니다.

 

야고보가 편지를 쓰는 당시의 교회 공동체의 실상의 모습 입니다.

교회 내에서 너무나도 벌어져 있는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현상 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인간이 살아 가는데 있어서 기초적으로 갖출 의식주가

너무나도 부족한 극도의 비참한 상태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만약 이 공동체에 예수님이 옆에 계셨다면

가난하고 헐벗은 그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매몰차게 대우를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아델포스 에 아델페(형제 자매) 가 되었는데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조롱하며 기만 할 수 있느냐, 라는 지적입니다.

 

▲고린토전서 12:12-27,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합니다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같은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몸은 한 지체로 된 것이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딸리지 않았다." 하고 말한다 해서

발이 몸의 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딸리지 않았다." 하고 말한다 해서 귀가 몸의 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각각 다른 기능을 가진 여러 지체를

우리의 몸에 두셨습니다

그래서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몸 가운데서 다른 것들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또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 안에 다음과 같은 직책을 두셨습니다.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이요

셋째는 가르치는 사람이요

다음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요

또 그 다음은 병 고치는 능력을 받은 사람,

남을 도와주는 사람,

지도하는 사람,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 등입니다.

 

같은 성체성사를 영하는

부자나 가난한자 모두는

예수님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서로가 연결이 되어 있는 지체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재물이

상대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더욱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더 깊이 들어가며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 시켜 주고자 하려고 합니다. 

 

16 절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

하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에이페 테 티스 아우토이스 엑스 휘몬....메 도테 데)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휘파게테 엔 에이레네: 평안하게 가거라, 입니다.

 

유대인들 끼리

만났다가 헤어질 때 자연 스럽게 인사를 하는 말인데

 

이 인사의 뜻은

상대방이 소원하는 모든것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이루어져

행복 하기를 바라는 사랑과 축복의 말 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땔감도 없고, 먹을것도 없으며, 걸칠 의복이 없는것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

분명히 나는 그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 손으로 그를 보내면서

 

입술로만 평안을 빌어 준다면

빌어주는 평안함이 진실된 평안함 이겠느냐

그렇게 빌어주는 평안함은

아무 짝에도 쓸대없는 백해 무익한 말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데르마이네스데,(원형,데르마이노)) 

중간태 명령어로

스스로 더웁게 하라, 라는 뜻입니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성의가 하나도 없는 쓸대없는 말은

가난한 자들을 놀리는 말이고 

차라리 그런 말을 하지 않는것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쓸대없는 말로 가난한 자들을 기만하고 놀리며 무시 하면서

전혀 책임감이 없는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부르게 먹어라,(코르타제스데,(원형,코르타죠))

풍족할 정도로 실컷 먹어라, 음식으로 만족을 얻어라, 

같은 중간태 명령어로

스스로 실컷 먹어라, 라는 뜻입니다.

 

값싼 동정심도 베풀지 않으면서

없는자 들을 조롱하며

가난한 자들을 기만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 입니다. 

 

최소한의 자비도 베풀지 않으면서

그 에게 왜 말 장난을 하는것이냐, 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연결된 같은 지체가 아니더냐,

 

그런데

사랑의 실천은 온데 간데가 없다면

그러한 상태가 어찌 믿는 신앙인 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느냐, 라는 뜻입니다.

 

▲잠 언 3:27,28

도움을 청하는 손을 뿌리치지 말고

도와줄 힘만 있으면 망설이지 마라.

 

있으면서도

"내일 줄 테니 다시 오게." 하며 이웃을 돌려보내지 마라.

 

▲이사야 58:6,7,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 주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주고 멍에를 풀어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너희 상처는 금시 아물어 떳떳한 발걸음으로 전진하는데

야훼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주리라.

 

▲고린토전서 12:26,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또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나 혼자만 잘먹고 잘 살라고 내게 재물과 여유를 주신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재물을 나누라고,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변리를 받지말고

그냥 거져 주라는 것입니다.

 

17 절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후토스 카이 헤 피스티스 에안 메 에케 에르가 네크라 에스틴 카드  헤아우텐)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피스티스 에안 메 에케 에르가 네크라 에스틴 카드 헤아우텐)

머리로 만 믿음이 있는 사람,

입술로 만 믿음이 있는 사람, 들이 갖고 있는 허구성의 믿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유명한 구절 입니다.

 

네크라,(원형,네크로스)

죽은, 생명이 없는, 죽음을 면치못 할 운명에 놓인,

죽음과 불행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파멸의 힘을 가진, 이라는 뜻입니다

 

행동이 뒤 따르지 않는 그런 신앙과 믿음은

본인에게도 무익 하지만, 무익한 그것으로 인해

치명적인 즉음으로, 치명적인 파멸의 길로 들어 선다는 뜻입니다.

 

카드 헤아우텐: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그것 하나만 으로도,

               라는 뜻입니다.

 

야고보가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라고

언급한 이유는

행동이 뒤 따르지 않는 상태의 믿음은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는것 이므로 죽은 믿음이며

그렇게 사는 삶은 신앙 생활도 아니고 신앙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정의 한다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믿음이 있다면 행함이 없을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다는 것은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것이므로

그 사람은 신앙인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그 믿음이 요구하는 행함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호흡 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호흡이 정지된 자는 생명을 잃게 되는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렇게 하는 그 행동 자체로 본인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심판 날에 갖고 오게 되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18 절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믿음이 있지만 나에게는 행동이 있소.

나는 내 행동으로 내 믿음을 보여줄 테니

당신은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시오.

 

*나는 내 행동으로 내 믿음을 보여줄 테니

(카고 소이 데익소 에크 톤 에르곤 무 텐 피스틴)

 

당신은: 쉬,

나는: 카고,

내: 무,

네게: 소이,

 

본 절은

나와 너를 대비 시키면서 믿음의 척도를 비교 하려고 합니다.

나, 는

전 절에서 이야기 한 믿음의 분량대로 행함이 있는 실천하는 믿음을

가진자, 이며

 

너,는

행함이 전혀 없는 형식적인 믿음 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신앙인 입니다.

 

데익소,(원형,데이크뉘미)

가정법이 아니고 직설법 능동태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위와같이 자신 만만하게 믿음과 실천을 갖고 있는 화자가

헛 믿음을 갖고있는 자들에게

"눈앞에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이겠다는",

확신을 담고 있는 어법 입니다.

 

19 절

당신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당신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

(쉬 피스튜에이스 호티 헤이스 에스틴 호 데오스)

 

쉬 피스튜에이스: 당신은 믿습니까?

호티 헤이스 에스틴 호 데오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신명기 6:4-9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문설주와 대문에 써 붙여라.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쉐마, 라고 합니다.

늘 언제나 야훼 하느님을 향해서 고백하는 기도문 입니다.

 

실천에 옮기는 믿음이 없으면서

자구적인 신앙을 위해 입술로 만 주술을 하는것과 같이

형식적인 고백행위는

속 빈 강정과도 같은 허구의 신앙인 이라는 것이며

 

그러한 고백은

귀신들도 하느님을 알고 있는 것 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하느님 존재를 인정 만 할 뿐이고

머리로만 갖고 있는 비정상적인 신앙 이라는 것입니다.

 

칼로스 포이에이스, 는

"하느님을 아는 그런 정도의 상식은 귀신들도 알고 있는것", 이라고

비꼬는 어법 입니다,

 

프릿수신,(원형 프릿소)

극한 공포에 사로 잡히다, 소름 끼치다, 라는 뜻으로

 

귀신들이

하느님의 이름만 들어도

자지러지는 놀라움을 느끼며 좌불안석을 하며 크게 두려워 할 줄 아는데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귀신보다 못한 믿음을 가졌다면

갖고있는 믿음이

과연 믿음 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겠느냐 는 뜻입니다.

 

▲마태오 8:28-29,

예수께서 호수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마귀 들린 사람들이 무덤 사이에서 나오다가 예수를 만났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서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갑자기

"하느님의 아들이여,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 오셨습니까?"

하고 소리질렀다.

 

 

하느님을 인정하는 지식적인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학문 이며

신앙을 표현하는 믿음은

말씀이 명 하시는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 믿음이 있는 자이고 신앙인 이라는 뜻입니다.

 

귀신들 보다도 못한 믿음은 사악한 믿음인데

이미 우리를 창조 하셨을 때

우리안에 하느님을 알 수 있도록 구조를 그렇게 만드셨는데

고의적으로 하느님을 외면하고 있으니

사악하다고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1:20-25,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거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황해져서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불멸의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에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욕정대로 살면서 더러운 짓을 하여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과 바꾸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예배하고 섬겼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분은 창조주이십니다. 아멘.

 

이렇게 인간을 이런 구조로 만드셨는데

마귀도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데

 

하느님이 손수 빚어 만든 인간은

사탄이 보다도 더 한 불순종을 하고 있으며

 

더구나

이러한 인간을 위해서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는 자비를 베푸셨고 

엄청난, 입을 수 없는

사랑과 은총을 입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들어가게 하셨는데

그 주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지않고 있으니

 

그러한 믿음은 믿음도 아니며

사악한 사탄이 보다도 더 못된것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다시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니

탕자를 기다리고 계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 이시라는 뜻입니다.

 

20 절

이 어리석은 사람이여,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이 어리석은 사람이여...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델레이스 데 그노나이 오 안드로페 케네 호티...아르게 에스틴)

 

델레이스 데 그노나이 오, 는

아!!.. 그릇된 신앙을 갖고있는 허울좋은 사람아..

네가 갖고있는 믿음이 얼마나 허탄한 것인줄을 알았으면 좋겠다, 라는 뜻입니다.

 

감탄사 오,

야고보의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단어 입니다.

 

케네,(원형,케노스)

빈 껍질, 속이 텅텅 빈,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열매없는, 빈 손의,

라는 뜻으로

 

영적인 실속도 없고 부요함은 더욱 없으며

속 빈 강정과도 같은 헛 믿음을 갖고 있는 줄 도 모르면서

머리로 만 갖고 있는 믿음이 최고의 믿음 인양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고,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참으로 딱한 신앙인 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아르게,(원형, 아르고스)

일 하지않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쓸모 없는, 무능한, 이라는 뜻으로

네크라: 죽은, 쓰임새가 전혀 없는, 입니다.

 

행함이 뒤 따르지 않는 믿음은

쓸모가 전혀 없는 헛 믿음이며, 생산성도 없고 생명력도 없는

백해 무익 해서 

마땅이 벗어 던져 버려야 할 헛 믿음 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어떻게 쓸모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21 절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친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까?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까

  (우크 엑스 에르곤 에디카이오네)

유대인의 최고 선조 아브라함

그 아브라함을 하느님이 택하시어 유대인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기신 것은 야훼를 믿는 믿음과

이삭을 바치는 행함이 있었기 때문에

전 인류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예를 들으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유대 민족의 조상이며

그들의 영웅이고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인물 입니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친,(아네넹카스 이사악)

아네넹카스,(원형,아나페로)

희생 제물을 제단 위로 올려놓다, 제단 위에 드리다, 라는 뜻으로

 

아들 이삭을 야훼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일반 동물들을 바치는 것과 같이 제단에 올려 놓고 죽여서 바칠려고

하였을 때, 라는 뜻이며

 

그렇게 하였을 때

야훼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에디카이오데)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에디카이오데,(원형,디카이오오)

옳고 바르게 만들다, 옳고 바르게 되게하다,

선하고 바른 것으로 보다, 죄 없는 것으로 생각 하다,

의롭다고 받아 들이다, 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의 실천적인 순명을 통하여

하느님은 그 과정을 지켜 보셨고

25 년 만에 얻은 직계 혈통인 이삭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매우 힘든 마음 고생을 거쳐

사흘 길을 걸어 아라랏 산에 아들 이삭과 도착하여

아들과 제단을 만들고

만든 그 제단위에 아들 이삭을 결박해서

막 죽이려고 하는 과정 까지 지켜 보셨습니다.

 

▲로마서 4:17-21,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백 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라는 말씀처럼

 

아브라함이 야훼 하느님께 보여드린 순명은

머리로의 믿음도 아니며, 입술 로의 믿음도 아니고,

100% 신뢰하는 믿음과 아들 이삭을 당신에게 바칠것을 명령하신 그대로 실천에 옮긴 것을 야고보는 예로 들고 있습니다.

 

22 절

당신도 알다시피

그의 믿음은 행동과 일치했고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믿음은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행동과 일치했고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믿음은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호티 헤 피스티스 쉬네르게이 토이스 에르고이스 아우투

 카이 에크 톤 에르곤 헤 피스티스 에텔레이오데)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명하는 행함의 실천을 통해서

하느님은 그의 믿음을 완전하게 배가를 하여 주셨고

이를 통해서

완벽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야고보가 이야기 하고자하는 주요 요지는'

아들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행위만 구약 성서에 나와 있지만

아브라함의 생애는

아들을 하느님께 드릴 정도로

하느님 명령에 철저한 순명의 삶을 살았다는 이삭 바치는 사건외적인 측면에

아브라함의 순명적인 삶, 곧 믿음의 실천을 요지로 우리에게 전달 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순명으로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보시면서 기뻐 하셨고 기뻐 하시는 이유는

순명 이라는 순환이

아브라함 전 생애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순명함 으로 믿음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고

내 믿음을 더욱 구체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텔레이오데,(원형, 텔레이오오)

완전하게 만들다, 완성하다, 끝에 이르다, 끝까지 달리다,

완전으로 나아가다, 라는 뜻으로

 

순명의 실천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를 믿음 이라고 말 할 수 없으며

허무한 것일 뿐 이라는 것이고

순명의 실천을 통해서 만이

성숙하고 생명력이 있는 믿음으로 진입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3 절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졌으며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카이 에플레로데 헤 그라페 헤 레구사 에피스튜센 데)

 

▲창세기 15:5,6,

그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어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보아라.

네 자손이 저렇게 많이 불어날 것이다."

그가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갸륵하게 여기시어,

 

자기의 직계 자손이 없을 때

위의 말씀을 하실때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 약속을 하시고 25 년이 지난 후에 아들 이삭을 주시게 됩니다.

 

주신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 때에도 기꺼이 순명을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17-19,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시험하시려고 이사악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기꺼이 바쳤습니다.

이사악은 외아들이었고

그를 두고 하느님께서 약속까지 해주신 아들이었지만

그를 기꺼이 바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악에게서 너의 후손이 퍼져 나가리라" 하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었던 사람들까지 살리실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를테면 죽었던 이사악을 되찾은 셈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느님의 명령에 대해서 머뭇 거림이 전혀 없는 순명을

야고보는 예화로 들고 있습니다.

 

에플레로데,(원형,플레로오)

충만하게 하다, 완성하다, 온전하게 하다, 라는 뜻이며

수동태로 되어 있으므로

 

하느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창세기 22 장에서의 순명으로 부터 출발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예화를 들고있는 야고보는

아브라함은 행위없이, 즉 말씀에 순명함 없이

하느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칭함을 받은것이 아니라

행위의 결과, 즉 순명함 으로 생명력이 있는 살아있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것입니다

(카이 필로스 데우 에클레데)

야고보는 아래의 구약 성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역대기하 20:7,

우리의 하느님이여,

하느님께서 이 땅에 사는 백성을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몰아내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이 땅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사야 41:8,

너, 이스라엘, 나의 종, 너, 내가 뽑은 자, 야곱아,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후예야,

 

필로스: 사랑받는 친구, 라는 뜻입니다.

이 칭호는 아무 에게나 붙여지는 칭호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인정 하시는 아브라함 같은 자에게 하느님이 직접

붙여주신 영예 스럽고 영광 스러운 칭호 입니다.

 

▲창세기 18:16-20,

사람들은 길을 떠나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도 그들을 배웅하느라고 같이 왔다.

 

야훼께서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셨다.

'내가 장차 하려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아브라함은 강대한 민족이 되고

세상 민족들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 복을 빌 것이 아닌가?

 

나는 그로 하여금 그의 자손과 그의 뒤를 이을 가문에게

옳고 바른 일을 지시하여 이 야훼의 가르침을 지키게 하려고

그를 뽑아 세우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그대로 이루어주어야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시고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아우성을 나는 차마 들을 수가 없다.

 너무나 엄청난 죄를 짓고들 있다.

 

▲요한 15:12-20,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주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4:4,

절조 없는 사람들!

이 세상과 짝하면

하느님을 등지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이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원수가 됩니다.

 

라는 말씀과 대조되는 말씀 입니다.

하느님과 친구가 있고 하느님과 원수가 있습니다.

 

24 절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람이 믿음만으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호라테 호티 엑스 디카이우타이 안드로포스 카이 우크 에크

 피스테오스 모논)

야고보서의 결론적인 말씀 입니다.

 

모논,

유일한, 하나만, 혼자서, 라는 뜻으로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반듯이

그 믿음의 근원이신 주님의 말씀과 명령에 당연히,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표현이고

주님의 명령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행함이 뒤 따르지 않는 믿음은 헛 믿음이며 죽은 믿음 이고

행함으로 증명되는 믿음만이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믿음 이라는 것입니다.

 

25 절

이와 같이 창녀 라합도

유다인들이 보낸 사람들을 친절히 맞아들였다가

다른 길로 떠나 보낸 행동으로 말미암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까?

 

*창녀 라합도,(라압 헤 포르네)

▲히브리서 11:30,3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음으로 예리고 성을 이레 동안 돌자

그 성은 드디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창녀 라합은

믿음으로 정탐꾼을 자기 편처럼 도와주어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이 당하는 멸망을 같이 당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2 장 참조)

 

하느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믿음은

생명력 있게 움직이는 행동 입니다. 가만히 앉아 입술과 머리로 만

믿는 정지된 지식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라합은 자기의 목숨을 내 놓고 이스라엘의 정탐군을 숨겨 주었고

예리고 성이 멸망을 받을 때 그의 가족 전체는 구원을 받았으며

유다족의 족장과 결혼을 하였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입은 여인이 되었습니다.

 

26 절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호스페르 가르 토 소마 코리스 프뉴마토스 네크론 에스틴)

흙으로 돌아가는 죽은 주검 같이

생명력이 없는 믿음은 시체와 다를바 없다고 단언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육체이고, 행함은 영혼 이라는 것입니다.

프뉴마토스,(원형, 프뉴마)

호흡, 숨, 생명, 이라는 뜻으로

호흡이 있는 생명을 뜻합니다.

 

그래서

행함이 뒤 따르지 않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호흡이 끊어진 시체 처럼

믿음 이라고 명명 할 수 없는 죽은 믿음 이라는 것입니다.

 

육체와 영혼은 생전에 떨어 질 수 없는 관계같이

믿음과 실천은

땔래야 땔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랑하는 분의 계명과 명령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는 그런 사람은

주님을 사랑 한다는것도 거짓말 이며 주님을 거짓말 장이로 만드는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 1 서 5-10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그대들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고 하느님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좇아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살고 있으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줍니다.

 

만일 우리가 죄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를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느님께 고백하면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모든 불의를 깨끗이 씻어주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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