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2동성당 게시판

(공모)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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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숙 [koeunsuk47] 쪽지 캡슐

2000-10-29 ㅣ No.654

거의 2000년전에 한 성서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집마다 누군가에 의해서 지어집니다. 그런데 모든것을 지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지금도 떨립니다.I.M.F가 시작된 해에 집을 지었습니다. 한 쪽에선 질타의 눈빛으로, 또 한쪽에선 그나마 일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찾아오는 분들이 성심 성의껏 집을 지어갔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뿌연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 쓰며 일꾼들과 똑같이 면장갑을 끼고 쓰레기 분류, 쓸기, 닦기, 나르기, 할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했습니다. 어쩌다 비오는 날이면 떨어진 못들을 주어모아 한 푸데 고물장수 할아버지께 건네주면 함박웃음으로 담뿍 되돌려 받앗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이 완성되어 갈 무렵 잠시 피곤하여 쉬고 있을 때 였습니다. 옆에 누가있는지 오직 일 하나에 매달려서 이무도 안보였습니다. 그런데 내 발밑에 무엇인가 뚝 떨어졌습니다. 엎드려 그걸 주운 순간, 묵주 십자가 였습니다. 옆에 할머님이 서 계셨습니다. 할머님 손에 십자가를 꼭 쥐어주며 "할머님, 신자시군요.본명이 뭐예요?" "안나.." 순간,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스쳐갔습니다. 어머님도 안나였습니다. 살아계시면 나이도 비슷했습니다. 할머님과 제 손은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님은 어느새 저를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초라한 방이었지만 예수님과 성모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얼마만입니까. 저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습니다. 내가슴엔 어느새 성모님이 안겨졌고 먼지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은 장미빛 묵주알처럼 물들어 갔습니다.

’성모 마리아님’

당신처럼 피었다가 당신처럼 살고팠던 나날들이

왜이리 힘들었습니까.

현란한 소유에만 눈이 멀었습니다.

화려한 이름에만 눈이 멀었습니다.

순명보다 명령이 앞섰습니다.

설마 하면서도 한가닥 저려오는 아픔은

늘 당신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배고프면 헛소리처럼 불렀던 메아리...

늘 그랬습니다.

늘 그랬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집이 완성되어 입주하는날 아침, 집 앞에 나무묵주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성모마리아님께서 할머님을 통해 놓아주신 선물이라 생각하며 아직도 할머님이 주신 성모님상을 바라보며 묵주신공을 합니다.저는 25년동안 냉담한 신자였습니다. ’공소’가 무엇인지 모를만큼 외면한 채 버티다 우연히 길에서 저한테 몇번 권유했던 자매님을 만나뵈었습니다. 바로 집 앞에 공소가 있으니 나오라구요. 저는 "공소라니요?" 물었습니다. 자매님께선 "성당을 지을동안..."

그냥 달려갔습니다. 성모님,할머님,자매님.. 지금 안가면 언제 가겠습니까. 미약하나마 집을 짓는데 도움이 되달라고 매일같이 기도합니다. 우리가 지금 지을 곳은 세속의 집이 아닌 성스러운 곳입니다. 아름다운 곳입니다. 영원한 집입니다.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더 짧은 시간. 흩어진 마음들을 한데 모아 성령의 힘으로 엮어간다면 하느님께로 모든것을 부여받은 성모님과 일치하여 놀라운 은총, 자녀들을 보호할 ’쉼터’를 하루 빨리 마련해 주시지 않을런지요.

10월, 왠지 한 여인이 생각납니다. 그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어느날 공항에 전송나갔다가 짐을 맡기는 카운터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다급하게 달려와 짐과 짐 사이에 사람들이 서 있는 줄 모르고 비집고 들어왔다가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며 허리를 깍듯이 굽혀 "도우모 스미마생,도우모 스미마생(정말 미안합니다)..." 지금 그 여인처럼 낯이 뜨겁습니다. 성급하게 다급하게 달려 왔지만, 당신 앞에 더 나아가지 못함은 넋이 나간 수인의 마음처럼 설 수 없는’ 미안함’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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