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입영 통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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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설 차례 음식은 전과 달리 좀 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 무렵에는 집을 비워서 선물 가지고 오시는 분들에게 두 번
걸음을 시키는 무례함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농담을 했었는데,
막상 예상은 했지만 설 전날 우체부 아저씨가 전해준 선물 아닌
등기우편이 농담이 무색했다.
우체부 아저씨가 등기를 전해주며 수취인과의 관계를 기재하라는
데 "엄마" 라는 글을 적으며 단어가 무척이나 새삼스러웠다.
좀 전에 주방에서 파를 썰며 눈물이 나 그 눈물 가지고 거실로
뛰어가 "설날이 다가오니 엄마가 보구 싶어~~" 하며 장난거리를
만든 내가 아들의 입영통지서 종이 한 장에 파 냄새보다 더 뜨거
운 마음이 일어 울컥 눈만 아니라 가슴까지 젖어들었다.
주마등 처럼 스치는 생각들.........
임신 소식과 함께 친정 어머니를 먼 곳으로 보내드려야 했기에
생김부터 어쩜 슬픈 마음과 인생은 그런것이려니~ 하는 달관하는
마음으로 태교의 시작이였다.
세상 나오기 오일 전에는 할머니의 운명으로 내 배 안에서 놀지
도 못하고 숨죽이고 있느냐고 돌 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
을 했던 아들.
태어나서 평소 친정 어머님께서 누워 계신 모습으로 아이가
누워 있기에 생명 윤회설이란 무서운 마음도 사실 있었다.
그가 슬픔을 먼저 알고 태어났기에 눈물 흘리는 사나이가 되지
말라고 아무리 집안의 독자가 되었어도 난 모성을 감춘 채 강한
사나이가 되길 원했고 또 그렇게 크길 바랬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또!또!"라고해서 애칭이 또또였고,
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는 친구가 어디에 사는지 묻지 말 것,
그리고 친구와 자기를 똑 같이 대해줄 것등을 요구해 왔다.
이유인 즉은 아버지 안 계셔 친구 어머니가 장사를 해서 혼자
밥을 먹어야하기 때문에 점심을 함께 먹으려고 데리고 온 것 이라
며 착한 본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학교에서 배운 리코더를 어찌나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지 엄마
생각으로 이 녀석이 수사님이나 선생님이 되려나 ....하는 착각
도 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학교엔 왜 전부 이씨 성을 가진 사람만이 이사장이 되냐는 둥,
엉뚱한 질문도 하고 엄마의 마음엔 좀 사색하고 고뇌하는 햄리형
의 청년 모습이 였으면 좋겠는데 때론 아들은 돈키호태형으로 나
를 당황과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공부를 잘해야 나중에 이쁜 색씨와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럼 도대체 아빠는 공부를 어떻게 하신거예요?" 하여 나를
웃게 만들기도 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내 뒤로 와서 가슴을 만지며 "볼륨 업"
하고 추켜 세워주며 장난을 걸던 녀석이 군엔 간다니..
종갓집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니 기뻐하시는 시아버님께서
이 녀석이 군대 갈 정도로 통일이 안 되면 되것냐.. 하는 바램이
셨는데 통일은 그 후 이십이년이 되어도 되지 않았다.
가끔 주위의 부모들이 아들의 입영에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것은 남의 일 이였지 내 일이 아니라 별로 실감이
되어 돌아오지 않았다.
직접 내 손으로 받은 아들의 입영통지서에 가장 빠른 이해의
지름길이 경험이란 말을 다시 금 떠올리게 되었다.
또 다른 세계....사나이 길로 가야하는 아들!
언젠가는 그도 술 한잔을 마시면서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길
안주 삼아 떠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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