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광장

꽃에게 말을 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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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선 [delltapose] 쪽지 캡슐

2012-01-16 ㅣ No.2165

 

 [독서 人]투병중인 이해인 수녀 ‘삶이 버거울 땐 꽃에게 말을 거세요’

암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는 백일홍을 보며 희망을 얻는다고 했다. 5일 오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만난 그의 활짝 웃는 얼굴이 백일홍보다 밝았다. 웅진싱크빅 제공

 
“투병하다 보니 손발이 차요. 날씨가 춥고 을씨년스러우면 마음도 침울해지죠. 하지만 오늘은 명랑해졌어요. 햇살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하루하루 깨닫고 있지요.”

부산 광안리 바다가 보이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5일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67)를 만났다. 한파가 몰아닥친 날이었지만 수녀원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봄볕처럼 따스했다. 이 수녀는 씩씩하고 명랑했으며 수시로 호호 웃었다. 단지 조금만 걸어도 숨을 급히 몰아쉬곤 했다. 그는 2008년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던 중 암이 발견돼 항암치료 중이다.

이 수녀와 만난 곳은 그가 인터뷰를 할 때 주로 쓰던 수녀원의 ‘언덕방(言德房)’이나 ‘해인글방’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물건들을 모아둔, 일종의 ‘이해인 기념관’ 같은 곳이었다. 그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를 기억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만든 곳인데 여기 볕이 좋아 요즘 자주 머문다”고 소개했다.

“불현듯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어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요. 그럴 때면 ‘백일홍 편지’(자작시)를 되새겨요. 생각보다 오래 펴 있는 백일홍을 보며 희망을 얻죠. 그 꽃이 제게 다가와 ‘살아있는 동안 많이 웃고 행복해라’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거든요.”

이해인 수녀를 생각하면 ‘꽃시’가 떠오를 정도로 그의 인생엔 오롯이 꽃물이 들어있다. 그가 꽃을 좋아하게 된 건 숨쉬기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어릴 적 납북된 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이 함께 꽃밭을 가꾸던 거였어요. 몇 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도 항상 꽃잎을 붙여 편지를 보내셨죠. 여름엔 치자꽃, 가을엔 코스모스, 겨울엔 장미를 붙이셨어요. 저도 10여 년 전부터 독자들에게 사인할 때 항상 꽃 그림을 그려요. 꽃 한 송이가 믿음과 소망, 사랑과 행복을 말할 수 있거든요.”
그가 최근 재미있게 읽은 소설 ‘꽃으로 말해줘’(노블마인)도 꽃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했다. 사랑의 표현이 조심스러웠던 영국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 꽃은 연인들의 연서이자 암호였다. 이성에게 꽃을 받으면 집으로 돌아와 꽃말의 뜻을 찾아보며 상대의 마음을 확인했다. 이 소설은 위탁시설에서 태어난 소녀 빅토리아가 꽃말을 배우면서 외로움을 극복하고 사랑을 받아들이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얼마 전 중학교 때 친구였던 남자 아이,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그가 제게 편지를 보내왔어요. 당시 제가 책을 한 권 줬는데 그 안에 장미가 꽂혀 있었나 봐요. 꽃잎이 이해인이라는 ‘소녀’를 상징하는 것 같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더군요. 소년의 풋풋함이 느껴져 마음까지 발그레해졌죠. 그런데 어렸을 땐 사람들이 저보고 코스모스 같다고 했는데, 요즘은 국화가 떠오른대요. 전 여전히 코스모스이고 싶은데, 호호.”

이 수녀는 “요즘 사람들이 꽃에 대해 너무 모른다. 심지어 문인들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있다’고 쓴다”며 안타까워했다. “둥굴레꽃이나 봄까치꽃은 모양새만큼이나 이름도 예쁘죠. 꽃도 이름을 불러줘야 마음속에 진정한 꽃으로 피어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수녀가 추천하는 책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가지’(현암사)다.

요즘 그는 사람들이 보내온 크리스마스 편지나 카드에 답장을 쓰느라 바쁘다고 했다. 며칠 전엔 록 그룹 ‘부활’ 팬클럽 카페에 들어가 글을 남겼다. 그는 김태원 씨를 비롯해 부활 멤버들과 무척 친하다. 짬짬이 책을 보고 글을 쓰며 강의도 한다. 다음 달 초엔 시인 정호승 씨와 함께 시인학교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암에 걸린 사실을 알기 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올라가 항암치료를 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치료를 받을 때면 저 역시 너무 아파 기도마저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고통의 의미를 체험하면서 아픈 이들을 잘 이해하게 됐어요. 암센터에 가면 ‘아들이 암에 걸렸다’, ‘나도 수술했다’며 제게 ‘보고’하는 이들이 많아요. 전 웃으며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죠. 그들에게 더 진정성 있게 희망을 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부산=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 이해인 수녀의 추천 도서 ::

◇꽃으로 말해줘/버네사 디펜보 지음


한 소녀가 꽃으로 말하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영국 빅토리아 시대 연인들은 꽃말로 감정을 전달했고, 위탁시설에서 태어난 소녀 빅토리아도 꽃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면서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고 사랑을 받아들인다. 꽃말 사전을 부록으로 담았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가지/김태정 지음

사계절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피는 우리 꽃 100가지를 골라 생생한 컬러 화보와 함께 소개한 우리 꽃 백과. 꽃의 생태와 쓰임새, 갖가지 꽃에 얽힌 사연을 자세하게 풀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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