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明洞聖堂) 농성 관련 게시판

10월 5일(화) - 7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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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환 [franco2] 쪽지 캡슐

1999-10-08 ㅣ No.181

 10월 5일(화)

 

  08:10 - 언덕에 왠 탄광의 광부들이 나타났다.

일사분란하게 커다란 소나무로 굉목을 삼아 순식간에 굉도를 만들고 있다. 그것도 계단 한폭판에다. 일단 중지를 시키고 대표를 만나자고 했다. 민노총 사람과 함께 강원도의 모 일간지 기자와 도계탄광 노조 위원장이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두툼한 자료를 하나 건낸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대한석탄공사 국정감사 제출용)로 보내는 "석탄감산보조비 횡령의혹 관련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국정감사 청구서"였다. 횡령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아무리 요구해도 아무런 대책을 마련해 주지않아 부득불 이렇게 달려와 여기에서 농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7일(목)이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국정감사가 있기에 이틀 동안 이를 알려야 하겠기에 다급해서 왔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느냐고 말하곤 이틀이니 서로 조금씩 양보해 성당에 오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한에서 해보자고 했다.

굉도는 계단 3개를 이용해 높이 180Cm, 넓이 2M, 길이 6M로 하고, 바닥에는 골판지를 대고 설치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작업을 마친 광원들은 석탄을 얼굴에 바르고 굉도 앞에 묶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주된 주장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1994년부터 국영탄광을 비롯해 민영탄광들이 석탄을 줄이는 대신 석탄감축 보조비를 지원했다. 이에 대한석탄공사도 지난 94년부터 97년까지 4백34억1천5백92만원을 지원 받았다. 그 중, 97년분 99억5천7백만원은 광원 1인당 80만 3천원씩 지급해 주기로 결정된 것인데, 실제 지급액은 1인당 70만원 뿐이었고, 나머지 10만3천원을 모은 4억5천여만원은 석공 산하 각 노조지부에 보내졌다. 이에 도계광업소의 경우도 할당된 1억2백96만원이 광원들에게 지급되지 않고 대한석턴공사 본사 노동조합 총무부장이 도계광업소 노조지부장 개인통장으로 입금시킨 것으로 보아 석탄공사 본사와 노동조합 그리고 각 광업소 노조지부가 연계되어 공금횡령의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19:00 - 굉도에 비닐을 쳐, 천막으로 만들었다.

화가 났다. 이곳은 유일하게 남은 통로이자 대문인데 어쩌자고 굉도를 천막으로 만들었느냐고 강하게 항의를 했다. 날씨가 추워서 그랬다고 말한다. 그럼 그 이틀도 견디지 못하는 정신가지고 서울까지 올라와 농성을 하느냐고 역정을 냈다. 또 여긴 분명 성전 앞인데 안에서 술가지 마시고 무슨 짖이냐고 또 따졌다. 그리고 연탄을 이렇게 부수어 엉망으로 만들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 술을 먹는다면 어떻게 당신들이 올바른 정신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따지자, 곧 치우고 술도 먹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내일 05:00까지는 비닐을 걷겠다고 했다.

 

  22:00 - 너무 화를 낸 것이 미안했다.

소주 두병을 사들고 이들을 찾았다. 아까 화를 낸것은 미안하지만 정말 여러분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관철될 때까지는 올바른 정신과 올바른 몸가짐으로 투쟁해 나가야 옳지않겠느냐고 다시 말하고 사과의 뜻으로 잔을 돌렸다. 잔을 받아든 덩치들과는 금시 친해졌고, 그들도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어느덧 01:00가 넘었다. 힘 내시고 꼭 진실을 밝히라는 말을 남기고 오르는 언덕길은 무겁고도 가벼웠다.

 

 10월 6일(수)

 

  05:00 - 광원들은 정말 약속을 지켰다.

깨끗하게 언덕을 치우고 다시 복장을 갖추고 비장한 모습으로 시위에 들어갔다. 하루종일 시위를 마친 이들은 굉도를 치우고 19:00에 국회로 향했다.

 

  부디 이들의 진실규명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10월 7일(목)

 

  11:50 - 또 왠 시위대가 계단을 채웠다.

머리를 밀고, 커다란 깃발을 들고 비장하게들 서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명동성당 언덕을 보고 "삼국지에 나오는 진영같다"라고 표현 했었다. 천막이 세워지고 천막마다 깃발이 나부끼고 있기 때문이다. 흰 광목에 붉은 글씨로 "도시빈민대책위"라고 썼다. 일단 위원장을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위원장은 우리의 사정은 절박하다고 전재를 하고 절박한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재개발을 둘러싼 인권유린의 실태와 둘째는 노점상들에 대한 무대책 철거에 관한 사항이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지고 또 6명이나 사망했는데 언론도 외면하고 있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삭발 단식농성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말을 다 듣고 나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뭘 했느냐고 쏘아 붙였다. 올 초부터 그런 상황들이 계속 있어 왔는데 그 때는 무엇을 하고 지금에 와서야 이 난리를 치느냐고 다그쳤다. 80년대 중반부터 재개발의 붐을 타고 일어난 인권유린이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될 때는 너도 나도 이 문제를 가지고 들고 일어났었는데, 이후 잠잠해 지면서 차츰 사회의 이목으로부터 멀어지면서 그 문제가 잊혀져가고, 그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인권유린의 문제를 당신들 조차도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했으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당신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이제는 언덕에 더이상 천막을 칠 공간도 없으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그래도 이제부터 시작하는 우리를 보아달라고 말하며 천막을 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정을 해보자고 했다. 오늘은 일단 범민련과 함께 천막을 쓰고, 내일 교육대책위와 전학협이 떠나는 날이니 그 자리로 들어가라고 했다. 범민련과의 문제는 내가 협조를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쑥스러워하며 떠나는 모습에서 일관성 있고 순수한 마음들로 투쟁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고마움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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