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5년 9월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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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5-08-26 ㅣ No.21

산으로부터 온 빛

(F. 바이저 지음/ 조문숙 옮김/ 성바오로 출판사)

 

누구한테 소개를 받은 적도 없고 신문이나 잡지 광고를 본 것도 아닌데,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보물 같은 책이 가끔 있다. 길 가다 우연히 주운 소품이 평생의 애장품이 되는 바로 그런 경우인데, 이번에 소개하는 책이 내겐 그렇다.

오래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한 달에 한 번은 신부님이 멀리서 오시고, 나머지 주일은 신자들끼리 그 도시 작은 가톨릭대학교의 소성당을 빌려 공소 모임을 해 나갔었다. 그 성당 한쪽 귀퉁이 작은 책꽂이에서 그저 오랜만에 보는 한글이 반가워 집어 들었다가 이후 나의 추천도서 가운데 하나가 된 게 이 책이다.

<산으로부터 온 빛>은 빈에 사는 남자 고등학생 플리츨의 시각에서 쓰인 1인칭 소설이다. 이 대도시 소년의 집에 알프스 산골 티롤 지방의 친척 소년 하이니가 도시 학교를 다니기 위해 찾아온다. 둘은 동갑이라 같은 학년 같은 반에 들어가고, 집에선 남동생과 함께 셋이 한방을 쓰게 된다.


책에는 구체적인 시대 배경이 제2차 세계대전 전인지 후인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종교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풍조가 만연해 있어, 학생들 대부분은 유아세례 받은 것을 못마땅해하여 스스로를 ꡐ등록된 신자ꡑ라고 하고, 신앙에 충실한 소수 아이들은 기를 못 펴는 분위기다.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처럼 심하진 않지만, 학교에선 하이니를 왕따로 만들거나 타락시켜 자기들 패거리로 끌어들이려는 ꡐ자유주의파ꡑ 아이들의 음모가 끊이지 않는다.

플리츨은 신앙의 도움을 받을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점에서 자유주의파에 가까운 아이지만 실은 고상하고 순수하고 선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 플리츨은 촌스런 얼뜨기일 줄 알았던 하이니가 누구보다 속 깊고 자신의 신앙을 당당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설명까지 능란하게 해내는 것을 보고 놀라지만 마음을 열지는 못한다. 그러던 중 형제는 성탄 방학 때 훌프메츠의 하이니의 집에 초대받아 가는데, 그곳에서 아름다운 신앙의 실상을 목격하게 된다.

성모 마리아같이 헌신적이며 사랑 깊은 어머니, 더없이 화기애애한 가족,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기도, 평화로운 시골 성당의 성스러운 미사, 눈 덮인 알프스의 거대한 봉우리들… 드디어 플리츨은 자유롭고 기쁘게 하느님의 성스러운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은혜로 자신의 나약함을 이기는 것만이 자신의 이상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난 생활을 진실하게 고해하고 보속해야 한다는 마지막 결단 앞에서는 여전히 망설이는데, 여름 방학을 맞아 다시 훌프메츠로 초대받아 간 플리츨은 신부가 되겠다는 하이니의 고백을 듣고 ꡐ신앙에서도 나는 노예이며 비겁자구나ꡑ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낀다.

다음날 혼자 산꼭대기에 올라가 십자가 옆에 섰을 때 플리츨은 비로소 하느님께 ꡒ네!ꡓ 하며 무기력한 피로감이 영혼에서 벗겨져 나가는 경험을 한다. 그는 하이니를 만나 고해성사를 보고 싶다고 얘기하고, 하이니의 고해 신부를 소개받는다. 둘은 두 사람의 기쁜 소식을 모레 온 가족에게 알리기로 약속하고는 플리츨은 다음날 종일 홀로 지내며 고해 준비를 하고, 하이니는 플리츨에게 줄 꽃을 꺾으러 등산을 떠난다.

_이혜정 바올리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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