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동성당 게시판

연하가 뭐 어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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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베네딕도) [hawhetal] 쪽지 캡슐

2000-10-06 ㅣ No.1728

철수는 몇 일을 은정이 누나에게 시달렸다. 심심하면 찾아 가던 정희 누나네도 가지 못했다. 은정이가 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밥은 얻어 먹을 수 있었다.

 

금요일날도 철수는 은정이 누나에게 밥을 얻어 먹었다. 철수는 남학생들이 많은 학생 식당에서 예쁜 누나와 단둘이 밥을 먹는다는 즐거움보다는 오후에는 뭘 시킬까 하는 불안감이 더 있었다.

 

"오늘 아침에 차 닦은거야?"

"깨끗해 보이지 않던가요."

"별로."

"쪽팔림을 무릅쓰고 닦은 거란 말이에요. 침까지 발라 가면서 닦았는데..."

 

"침을 발랐어? 지저분하게 그게 뭐야. 다음부터 침은 바르지마."

"그러면 세척제라도 좀 줘요. 벌레 죽은 거 붙은 것은 잘 안 닦인다 말이에요. 달랑 마른 걸레 하나 주고 닦으라 했는데 얼만큼 깨끗해지길 바랬던 거에요? 그리고 월요일까지 유효기간인데 다음부터란 말하지 마요. 나 월요일날 학교 안 나올거야. 씨."

 

"어머 얘 좀 봐. 내가 말한 일주일은 날짜로 일주일이 아니라 일 수로 일주일 을 말했던 거야."

"그런게 어딨어요."

"여깄다 왜."

"진짜 나쁜 녀..."

"너 년이라 말하려 했지?"

"녀자요. 녀자. 됐어요?"

 

"하여간 삼일 남았으니까. 이 번 토요일, 일요일 빼면 수요일까지는 내가 시키는 일 해야 된다."

 

"그럼 좀 맛있는 거 사주면서 부려 먹어요."

"니가 학생 식당 밥이면 된다고 했잖아."

"그건 보통 때 말이구."

 

"나중에 예쁘게 보이면 그땐 생각해 볼게. 그리고 오늘 집에 갈 때 같이 가자."

 

"왜요?"

 

"차 태워 주면 고맙다고 할 것이지 왜요는."

"오후에 수업 있어서 서명 받는 일 못해요."

"그건 빼 줄게. 수업 끝나면 나에게 연락해."

"누나도 삐삐 있어요?"

 

"아니. 헨드폰 번호 가르쳐 줄테니까 이리 연락해. 이거 아무나 가르쳐 주는거 아니다."

 

"헨드폰이요? 어디 한 번 봐바요."

 

철수는 은정이가 헨드폰을 꺼내 보여 주자 신기한 듯 이리 저리 돌려 보았다.

 

"헨드폰 처음 보니?"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만져 보는 것은 처음이에요."

"허!"

"누나 전화 한 통 해 봐도 돼요?"

"해 봐."

 

철수는 이상한 번호를 띡띡 눌렀다.

 

"통화가 안돼잖아요."

 

은정이는 아주 바보를 쳐다 보 듯 철수를 꼬아 보았다.

 

"어디 근처에 있는 곳에 전화 한거니?"

"네."

"국번 눌렀어?"

"눌러야 돼요?"

"으응."

 

은정이는 아주 거만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 거려 주었다.

 

"그래도 안되잖아요."

"send 눌러라."

"어디요?"

"거기 있잖아 바보야."

"아, 통화가 간다."

 

은정이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철수가 하는 모양이 귀여운가 보다.

 

"여보세요? 아저씨에요?"

"어디다 한 거야?"

"저 동엽이 친구 철순데요. 모르시겠어요?"

"..."

 

"모르신다구요? 내가 얼마나 자주 갔었는데.... 저 번에 어떤 이상한 여자하고 치러도 갔잖습니까. 그 여자한테는 졸라 아는 척 했잖아요."

 

"너 당구장에 전화 한거니?"

"이거 헨드폰이거든요. 아저씨 헨드폰 알아요?"

"뭐하는 거야 지금."

"네? 안 바꿔 줘도 돼요. 안녕히 계세요."

 

은정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철수를 꼬아 보았다.

 

"아까 말한 이상한 여자는 나를 말함 이겠지?"

 

"알아서 생각하세요. 그 헨드폰 참 신기하네. 저 수업 들어 가 봐야 겠어요. 천원 짜리 밥 잘 먹었습니다."

 

철수는 인사를 꾸벅 한 다음 은정이가 일어 서기도 전에 도망치 듯 학생식당을 나가 버렸다. 그런 철수를 보고 은정이는 뭐, 저런게 다있냐 하는 식으로 쳐다 보며 웃을 뿐이다. 철수는 학생 식당을 나오자 마자 공대로 돌진 한 것이 아니라 당구장으로 뛰어 갔다.

 

철수는 은정이 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여전히 뒷 좌석이다.

"갑시다."

"너 계속 뒤에 앉을거야?"

"여기가 편해요. 출발합시다. 홍기사."

"뭐어?"

 

"운전하면 기사지. 기사 좋은거에요. 우리 선배들 기사 자격증 따려고 도서관에 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사람들 많아요."

 

"니가 그런 말 할 수록 월요일날 더 고생스러울거다."

 

철수는 월요일 아침 학교에 오자 마자 은정이 누나를 만나게 되었다. 만난 것이 아니라 붙잡혔다.

 

"차 열쇠를 왜 줘요?"

"여기 마른 걸레랑 세척제도 있어. 오늘은 실내도 닦아 놔."

"이런 법이 어딨어요?"

"금요일날 내가 말했잖아."

"수업 있어요."

"너 월요일 오전에는 열한시 반부터 수업 있는 거 아냐?"

"에?"

 

"지금 일교시 수업 시작 시간은 지났지? 그럼 일,이교시 수업은 없다는 말이고 니가 이 시간에 학교를 나온 거 보면 3교시부터는 수업이 있다는 거 쉽게 추리 할 수 있잖아. 너 바보지?"

 

"틀렸네요. 4교시부터 수업 있어요. 동아리 방 가려고 나온거에요."

 

"4교시부터 있어? 오호, 그럼 차 닦아 놓고, 나 수업 끝날 때까지 여기 있어."

"누나는 수업이 언제 끝나는데요? 3교시부터 수업이면 적어도 1시 넘잖아요."

"3교시까지 실험 수업이야. 그래서 나 지금 지각한거야."

 

철수가 아주 못마땅한 눈초리를 보냈다.

 

"학생 맞아요?"

"실험은 조금 늦어도 돼. 여하튼 잘 닦아 놔. 안녕."

 

은정이는 뒤에서 철수가 알밤을 까고 있는 것을 모른 채 약대 건물 안으로 사라 졌다.

 

철수는 차를 열심히 닦아 주었다. 실내도 열심히 닦았다. 실내를 청소하면서 은정이 누나가 가지고 가는 것을 잊었는지 남겨 놓은 다이어리를 보았다.

 

''참 정신없는 여자네.''

 

철수는 생각없이 다이어리를 뒤척거렸다. 전화 번호부란에 썼다 지운 전화번호가 몇 있었다. 지워져 버린 전화번호는 모두 남자 이름의 것이었다.

 

''쯔쯧, 근데 이승주는 누구야? 남자야 여자야? 여자들은 따로 적혀 있는 걸 보면 남자 같은데... 요즘 사귀는 놈인가? 근데 제일 위에 있잖아. 오래 버티는 놈인가?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주소도 적혀 있고 어라? 생일까지 적혀 있네. 나보다 세살이 많군. 그럼 졸라 늙었네.''

 

사진도 있었다. 두장이 있었다. 한 장은 어떤 잘생긴 놈의 사진이었고 다른 한장은 그 놈과 같이 찍은 은정이 누나의 사진이었다.

 

''사진은 생각보다 적네. 새끼 나 정도 생겼구만.''

 

철수는 조금 더 다이어리를 뒤적거렸다. 안에 적힌 내용에는 무관심했다.

 

''이거 바보아냐? 이걸 차 안에 놔두면 무슨 소용이 있나? 쯔쯧.''

 

철수는 다이어리에서 자동차의 보조키를 발견하고는 또 한 번 혀를 찼다. 철수는 다이어리를 눈에 잘 보이는 계기판 위에다 놔 두고 청소를 계속했다.

 

철수는 청소를 다하고 난 다음 시계를 봤다. 이제 겨우 열한시다. 철수는 멀뚱멀뚱 서 있다 묘한 웃음을 지었다. 손에 들려 있는 열쇠가 참 유혹적이었다.

 

''복수할 수 있는 기회다.''

 

철수는 열쇠를 호주머니에 넣고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도망을 쳤다. 차 문들을 꼭 잠궈 놓고 말이다. 철수는 그 날 당구장에도 가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자 마자 기숙사 뒤로 난 개구멍으로 바로 자취방으로 날랐다.

 

철민은 자기 방에 앉아 라면을 끓여 먹으며 킥킥 됐다.

 

''좀 황당할거다. 전철을 타 보기나 했을까.''

 

시간이 아홉시 쯤 되었을 때 철민이 방 초인종이 울렸다.

 

"철수야 안에 있니?"

 

정희 누나의 목소리였다.

 

"네. 잠깐만요."

 

철수는 문을 열어 줌과 동시에 꿈쩍 놀랐다. 정희 누나의 뒤에는 화가 난 모습의 은정이 누나가 서 있었다.

 

"열쇠 줘 빨리."

 

은정이의 음성은 얼굴 모습과는 다르게 차분했다. 그렇지만 너무도 딱딱했다. 분위기가 어두웠다. 철수가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건네자 은정이는 바로 돌아서 가 버렸다.

 

"내일도 차 닦아요?"

"필요 없어."

 

은정이는 정희에게도 아무말 하지 않고 사라졌다.

 

"화 많이 났던가요?"

"그럼 화가 안 나겠니?"

"장난으로 한 짓인데. 분위기가 좀 틀리긴 틀리네요."

"은정이하고 잘 지내라. 알고 보면 착한 애야."

"들어 와서 차 한잔 하실래요?"

"아니, 나 졸업반이잖아. 할 일이 많아."

"누나."

"왜?"

"은정이 누나에게 미안했다고 전해 주세요."

"그게 미안한 표정이니?"

"당한게 많아서 그래요."

 

"칫! 쟤 많이 삐치기 전에 니가 가서 사과 해. 쟤 한 번 삐치면 아예 상대를 안해 버리는 경우도 있어. 그건 싫지?"

 

"흠. 별로 알게 된지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보기엔 많이 친해 진 것 같더라."

 

철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약대 앞에서 은정이 누나가 오기를 기다렸다. 은정이를 알게 된지 이제 한 달 보름 정도 되었지만, 좋은 말 오고 간 적 없지만 그래도 친해지긴 친해졌나 보다. 정희 누나의 말대로 은정이 누나와 모르는 사이가 되기는 싫었다. 어제 은정이 누나의 표정에서 잘못하면 그런 사이가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은정이는 차에서 내려 자기에게 인사하는 철수를 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차 닦아 드릴게요."

 

은정이가 고개를 돌려 철수를 쳐다 보았다. 하지만 아무말이 없다.

 

"화 풀어요. 그것 가지고 말이야. 참 속이 좁네요."

"너, 좀 좋아 지려고 해도... 아니다 너같은 애랑 말해서 뭐 하겠니."

"말이 틀리잖아요."

"뭐가?"

"먼저 모른 척 하진 않는다면서요?"

"뭘?"

 

"에이, 그 전에 한 말 있잖아요. 그 남자가 용기내어 고백 한 것을 받아 들이진 못해도 헤어질 마음은 없었다고 했잖아요."

 

"푸우, 어제 니가 한 짓하고 그것하고 무슨 상관이야?"

"나도 어제 용기내어 한 짓이거든요."

"참나!"

"어제 누나 표정이 내가 누나 본 이후로 가장 무서운 얼굴이었어요."

"그럼 그 표정 안 짖게 잘 닦아 놔."

"알겠습니다. 수업 잘 들으세요."

 

철수는 얼굴에 생긋한 미소를 지으며 은정이에게 인사를 했다. 은정이의 표정은 밝아졌다. 뒤에서 철수가 알밤을 까고 있는 걸 보지 못했기에...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중간 고사 기간에는 철수도 나름대로 공부 하느라 동아리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철수가 동아리 사람들을 보게 된 것은 시험도 끝나고 학기 초에 하지 못했던 신입생 환영 파티 겸 정기적으로 하는 모임에 나가서였다. 오랜만에 본 정희 누나의 모습과 은정이 누나의 모습이 반가웠다.

 

철수는 은정이 누나에게 제법 좋은 말도 해주고 잘해 주었다. 열쇠 사건 이후

로 완전히 기가 꺽인 듯한 모습처럼 보였다.

 

"누나 잘 지내셨죠? 많이 예뻐지신 것 같네요."

"니가 왠일이야? 내게 좋은 말을 다하구."

 

"이제 잘 할게요. 예쁜 누나 알게 된 것만도 기쁜 일인데, 친해 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 네가 그러면 충분히 친해 질 맘은 있어."

"당연하죠. 어려운 일 있으면 부탁하세요. 누나 컴 사용 할 줄 알아요?"

"아니. 잘 몰라."

"혹시 레포트 예쁘게 꾸미실 생각 있으면 저에게 부탁하세요."

"허허, 그래."

"누나는 호호 웃는게 더 예쁘요."

"그래. 호호."

 

철수는 은정이에게 잘 했다. 노래 방 가기 전까진 말이다. 가벼운 술 자리를 파하고 동아리 회원들은 노래방이란 것을 가게 되었다.

 

"누나는 집에 안가요?"

"나 술먹었잖아. 정희네 방에 가서 잘거야."

"그래요."

 

노래방의 분위기는 좋았다. 은정이에게 서먹한 마음을 품고 있던 다른 회원들도 노래 따라 그 서먹함을 없앴다.

 

"에, 저도 노래 한 곡 부르겠습니다."

"그래 한 곡 불러라."

은정이는 기분이 좋다.

"이 곡을 홍 모씨, 다른 말로 모은정양께 바칩니다."

"나에게? 얘가 오늘따라 귀엽게 구네."

철수는 열창을 했다.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아야 여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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