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펌글] “어른들이 우리들 순수성을 왜곡 시켰어요.”

인쇄

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08-07-14 ㅣ No.6292

 

 “어른들이 우리들 순수성을 왜곡 시켰어요.”



   2주 전쯤 한 종교단체가 주최한 촛불집회 관련 세미나에 사회를 본 적이 있었다. 시류를 의식해서인지 그날 세미나 주제발표자는 물론이고, 토론자 대부분도 촛불을 들고 나섰던 젊은 청소년들에 대한 찬양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이들의 발표가 다 끝나고, 세미나에 참석했던 청중들에게 질문의 기회를 주자 한 청소년이 손을 들고 하는 첫 말이 “어른들이 우리들의 순수성을 왜곡시켰어요. 우리는 이런 촛불집회는 다시는 참가하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이었다. 일순간 발표자와 토론자는 물론이고, 청중들마저도 아연 긴장했다.


   그러고 보니 그 이후 계속적으로 열린 촛불시위에서 젊은 청소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들의 목소리조차도 ‘명박 퇴진’과 같은 정치구호에 의해 묻혀 버렸다. 그런데 이들이 촛불을 든 이유는 간단하다. 잘못된 협상을 한 이명박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아돌 미국산 쇠고기를 학생들 급식용으로 돌린다고 하니까 생겨난 것이다. 우리들도 인격적 ‘주체’인데 수단적 ‘객체’로만 인식하는 어른들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일리 있는 도전이었다.


   만일 정부가 “아무리 힘들어도 젊은 청소년들에게는 미국산 수입소를 절대로 먹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더라면 이들 청소년들은 거꾸로 “괜찮아요. 우리들이 기꺼이 먹을게요. 그 대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세요.”라는 자신감을 표명했을 그런 세대였다고 본다. 그렇지만 광우병 위험이 적다고 해서 “너희들이나 먹어라”는 식으로 대응하니까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촛불이라는 은유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이 댕긴 촛불은 처음엔 약했는지 모르지만 점점 타올라 광장 이곳저곳에 번짐으로써 이들의 존재는 더욱 드러났다.


   그런데 정치권으로부터의 반응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청소년의 이런 멋진 은유를 향해 “배후가 누구야”라는 가장 멋쩍은 말투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청소년들은 ‘정말 아니야’라고 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실체를 확인하고 말았다. 물론 이들이 댕긴 촛불시위를 이어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실망의 빛은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이들의 손에도 촛불이 쥐어졌지만 청소년들의 마음처럼 순수한 입장에서 촛불을 댕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회 개원에 자신이 없는 야당, 시류에 편승하려는 시민단체, 파업의 명분을 찾으려는 노조가 자신들의 이해를 촛불에 담아 본 것이다.


   그래서 그 감동적이었던 촛불시위는 이내 우리들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대신 경찰과 물리적으로 대치하는 시위대의 도발적인 모습만이 우리들 기억 속에 하나 더 추가되었을 뿐이다. 이런 모습이 우리 자식들이, 내 동생들이 처음 촛불을 댕기고자 했을 때 바라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 기성세대가 이들의 꿈을 앗아간 셈이다. 촛불이라는 가장 소박한 은유로 기성세대의 일방적 소통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했는데 기성세대의 일방적 소통방식에 의해 이들의 촛불은 꺼지고 말았다.


   이제 정치권은 이들 젊은이들이 제기한 문제에 답하는 길만이 촛불집회로 인해 난마처럼 얽힌 시국을 풀어나가는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본다. 그것은 쇠고기 재협상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하나의 구실이었지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문제 삼고자 했던 것은 소통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청소년들에겐 그야말로 탈출구가 없다. 입시에서부터 시작해 이들이 듣는 소리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아이콘뿐이다.


   이명박 정부까지 가세해 무한경쟁을 독려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광우병 걸린 소마저 먹으라고 하니까 어쩌면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반발이 비단 청소년층에 한할 것인가? 어쩌면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사람도 이런 식의 불만이 있었을 것으로 보아진다. 그런 불만들이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터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두 그룹의 애국자가 있습니다. 하나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면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자고 외치는 애국자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일터에서 소임을 다하면서 FTA 협상을 성취시켜야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애국자가 있습니다.” 지도자가 이런 태도를 보일 때 국민들은 흑백논리를 뛰어넘어 자신들의 갈 길을 선택하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합리적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이 시기에 국민들의 격정적인 목소리를 원망하기보다 합리적 판단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 지도자의 큰 몫이다.


- 김정탁 성균관대·신방학과 교수



169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