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의 영성

천주의 성 요한 수도자 [St. Joannes de Deo.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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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숙 [hsryu] 쪽지 캡슐

2001-03-14 ㅣ No.19

                천주의 성 요한 수도자 [St. Joannes de Deo. C.]

     

                                                                                  (축일 3월 8일)

     

       ’천주의 성 요한’ 이라 함은 이 성인이 회개 후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았다는 점에서 이처럼 부르게 되었지만 그는 교회에서 빈첸시오와 같이 자선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원의 창립자로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1495년 포루투칼의 한 작은 마을 몬테모로 노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극히 신심이 깊었지만 어린 요한은 부모와 달리 그다지 신앙에도 열심히 하지 않고 모험심과 호기심이 강해 도리어 악에 기울어지기 쉬운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죄악에 물들지 않고 지낸 것은 그의 유일한 장점 즉 성모 마리아께 대한 깊은 존경심 때문이었다.

       7세 때 그는 갑자기 스페인의 나그네로부터 그 나라의 얘기를 듣고, 보고싶은 호기심에 대담하게도 집을 나오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어머니는 그것이 화가 되어 중병에 걸려 곧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아버지도 세상의 허무함을 깨닫고 리스본 시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그도 2, 3년 후에 아내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요한은 태연하게도 그리워하던 나라 스페인에 가서 오로페사라는 백작가(伯爵家)의 목동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충실히 15년 동안 봉사한 보람이 있어서 주인에게 총애를 받아 나중에는 주인 딸과 혼인문제까지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매일 여전히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던 요한은 굳은 결심으로 그 혼담을 물리치고 결국 그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럴 즈음 전쟁이 일어나 병정을 모집하고 있었으므로 이를 기회로 스페인의 군인이 되었다데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극히 불행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방종(放縱)한 환경에 물들고 유혹되어 마침내 죄악을 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두 번이나 죽을 뻔한 후 갑작스럽게 고향이 그리워져 부모의 소식도 알 겸 몬테모로 노보에 돌아왔다. 이미 부모는 세상을 떠났고, 이것도 자신의 불효의 탓이란 것을 들었을 때 그는 얼마나 놀라고 슬퍼했는지 모른다. 다시금 통회의 눈물로 젖은 요한은 이제야 전반생의 죄를 보속할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를 위해 성 베드로 놀라스코(S. Petrus Nolascus) 등과 같이 회교도의 포로가 되어 있는 그리스도 신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건너가려고 생각하고 먼저 부모의 묘를 찾아가 이별을 고한 후 지브랄타르 해협을 거쳐 아프리카를 향해 떠났다. 그러나 우연히 도중에서 악한의 모함을 당해 포루투칼로부터 추방당한 어느 귀족을 알게 되었는데 그 가족은 낙심해 생계를 유지할 생각도 없이 다만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가련한 처지였다. 그는 이런 사람들을 구출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일이라 생각하고, 자기의 의복을 팔아 급한 것을 돕고 또한 공장에서 노동을 해서 받은 월급을 전부 그 가족에게 희사했으므로 그들은 성인의 은혜에 감동되어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 후 요한은 포로 구제의 일의 곤란함을 깨닫고 스페인으로 돌아와서 우선 지브랄타르에서, 다음엔 그라나다 시에서 성구(聖具), 성화상(聖畵商)을 시작했다. 그리고 상업을 하는 한편 무식한 농부나 노동자나 아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성모께 대한 도리를 알려 주며 그들의 마음에 신덕을 심어주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와 같은 교리를 가르쳐 주는 일이 성격에 맞았던지 그는 그 일을 진정으로 좋아했으나 하느님께서는 후에 그를 더 존귀한 사업에 부르셨다.

       1539년 1월 20일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 축일 때의 일이다. 16세기 스페인에서 명성이 높았던 아빌라의 성 요한이 그라나다에 와서 대죄와 지옥에 대해 일장의 설교를 했다. 이것을 들은 천주의 요한은 매우 감동되어 다시금 자신의 과거의 죄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지금까지의 보속으로는 아직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그들의 용서를 청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가 발광하는 줄로 오해하고 끌어다가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아빌라의 요한을 만나 위로를 받고 우울하던 기색도 사라져 이후부터는 일생을 자선 사업에 봉헌하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업의 시작으로서 그는 그라나다 사립 병원의 간호인이 되어 무보수로 일하도록 했으나 얼마 안 되어 그 병원에 화제가 났으므로 그는 독자적으로 한 병원을 창립할 계획을 갖고 즉시 노동을 해 임금을 저축하고 재료를 구입하며 기타의 비용에 충당하기로 했다. 물론 가난한 그에게는 여간 힘이 드는 사업이 아니었지만 하느님께서 강복해 주셨기 때문에 의외로 빨리,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한 병원을 세울 수가 있었던 만큼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가련한 병자를 수용하여 그들에게 주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가능한 친절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래 환자한테서 한 푼도 안 받았기 때문에 경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요한은 아침에 간호의 임무를 마치고 나서는 광주리를 어깨에 메고 항아리를 손에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선과 기부를 청하고 희사한 사람들에게는 감사의 뜻으로 성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고 자신은 극단적으로 검소한 수도 생활을 감수하며 구걸해온 모든 것을 사랑하는 병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박애의 정신을 나타낸 요한의 활동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 안 되어 그의 소문은 전국에 퍼져 이제는 귀족과 부호도 기꺼이 그의 사업에 헌금하게 되고 심지어는 국왕 필립보 2세까지도 의연금을 하사하게 되었으므로 그는 병원을 확장하고 제반의 설비를 완전히 하고 더욱 불행한 병자를 구제했다. 더군다나 그의 협력자도 많이 꼬여왔으므로 한층 더 활발한 활동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요한은 따로 수도원을 세울 의사는 없었다. 다만 주교의 권고로 동료들은 모두 사제복과 비슷한 제복을 입게 되었다.

       요한은 사람들의 생활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도 보살펴 주었다. 자포자기한 윤락녀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그들을 설득하고 갱생을 위하여 부채를 지불해 주기도 하고 바른 직업을 알선해 주거나 진실한 결혼 생활을 이루도록 주선도 하였다. 이로 인해 미움을 사거나 조소를 받는 일도 있었으나 모든 것을 인내하며 영혼을 잃지 않은 가련한 여인들을 구제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정신병자에 대한 동정도 남보다 몇 배로 강해 그들의 보호구제에서도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성인은 자선과 박애를 위해 밤낮 활동을 계속했으므로 차차 몸이 쇠약해짐을 깨닫게 되었다.  헤니르강이 범람해 홍수가 났을 때, 물에 휩쓸려 떠내려온 한 어린이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들어 간 것이 원인이 되어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그라나다 주교께서 친히 병석을 방문해 성사를 주고 나서 "아무거나 말씀하실 것이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요한은 "참으로 제 마음에 거리끼는 일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오늘까지 하느님께 이루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은혜를 받았으나 아직 만분의 1의 은혜도 갚지 못한 것과, 둘째는 애써 바른 길에 돌아온 부인들이 다시 죄에 떨어지지 않을 까 하는 점과, 또 한가지는 이 명부에 기록되어 있는 환자의 부채가 아직 지불되지 않고 있는 점입니다" 하고 말하면서 베개 밑에서 공책 한 권을 꺼내 보였다. 주교는 "당신의 첫째 근심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탁합시다. 그리고 제2, 제3의 근심에 대해서는 내가 맡아서 어떻게든지 처리하겠으니 아무쪼록 안심하십시오"하고 말하니 요한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임종이 임박하자 그는 문득 일어나서 십자가를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1550년 3월 8일이었다.

       성인이 떠난 후에도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이어 자선 박애사업을 계속했는데 후에 인가를 얻어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라 정하고 아직도 성 요한의 정신을 따라 병자 간호에 힘쓰고 있다. 1690년에 시성 되었고, 병자와 간호원 그리고 병원의 수호 성인이다.

 

                                                                                      -카톨릭 성인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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