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광장

티벳에 가고싶어.. <김복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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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선 [delltapose] 쪽지 캡슐

2004-11-30 ㅣ No.632

구게왕국 폐허

티벳으로 떠나겠다고 말을 했을 때 주위의 한결 같은 반응은
“도(道)를 닦으러 가느냐?”는 되물음이었고 그것은 티베트가
‘부처의 나라’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딱히 도를 찾아 떠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티벳이 작년에 있었던
인도 여행, 부처를 만나러 가는 길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의 길을 나섰던 석가모니의 길을
걷고 싶었던 오랜 꿈은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는 성경(루가 4:25)의 말로 맴돌았고 오히려 아둔한 의문으로 남았다.

쯩바에서 파양에 이르는 황무지에 방목한 야크 무리

만나고 싶었던 부처는 인도에 없었다.
인도에서 불교는 이미 힌두교에 편입되어 있었고 부처는 비쉬뉴의 환생으로
힌두교 신들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었다.
힌두교에 대항하여 탄생한 불교가 자신의 땅에서 외면 받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기에는 오래전부터 부둥켜안고 지냈던 깨달음이란 화두가 너무 컸던 탓인지 모른다.
혹자의 말처럼 불교가 요구하는 철저한 수행을 통한 구원의 길이 민중이 겪고 있는 현실의
고통과 내세의 불안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했다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그러다 새벽 강에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아득한 신비함이 있는 티베트를 만났다.

어둠이 걷힐 무렵부터 다시 질 때까지 티베트의 수도 라사(拉薩)를 가득 덮는
향 연기, 수천 킬로 떨어진 자신의 집에서 라사를 향해 오로지 부처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잊고 고통을 잊으며 기어, 기어 오는 사람들, 바람이 부는 모든 곳에 불경을 새긴
천을 매달아, 바람이 이 세상을 불토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 평화에 대한
갈구가 나라를 잃게 했지만 아직도 그 자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 망자의 육신을 찢어
새들에게 던져줌으로써 그 영혼을 하늘로 보내는 사람들. 또 다른 부처의 길을 보고픈
어리석은 욕심이 꿈틀거렸다.

오체투지례로사원을 돌고 있는 순례자들(자따부리)

< ※오체투지(五體投地):두 다리 두 팔을 땅에 대고, 머리마저 땅에 닿는 神을 향한 한없는 思量의 수행법 >

그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짐으로써 얻고자 하는 것이 깨달음인지 아니면 구원인지
직접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올 해 내내, 부처의 나라 티베트는 그렇게 다가왔다.
사실 티베트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여행하기가 까다로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행객들을 어쩔 수 없는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고산병, 그리고 그야말로
티베트 말살 정책의 일환이 아니라면 도저히 그 용도를 짐작할 수 없어
의심을 받고 있는 중국 당국의 여행허가서는 끊임없이 여행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여행자들은 어찌되었든 항로와 육로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행허가서 유무에 따라
합법적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그 중에 항로는 쓰촨(四川)성의 성도 청뚜(成都)에서 하루 1회 운항하는 비행기를
합법적으로 이용하는 것이고 육로는 칭하이(靑海)성의 꺼얼무(格爾木)를 통해서
들어가는 길로, 합법적인 버스를 타는 방법과 여행 허가서 없이 불법적으로
트럭이나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이다.

라사에서 카일라스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상상 마을

특히 육로는 증명되진 않았지만 고산지대에 서서히 적응함으로써 고산병에 적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버스는 합법적이긴 하나 거의 비행기 삯에 맞먹는 요금을 내고
조악한 시설에서 16시간 이상 추위를 견뎌야 한다는 점에서 악명 높고, 경비절감을 이유로
어렵사리 트럭이나 택시를 히치하이킹(hitch hiking)한다고 해도 언어의 장애를 무릅쓰고
공안들의 검문을 피하며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여행자들의
선택은 쉽지 않다.
여행이란 것이 늘 편하거나 즐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 오랜 기다림과 설렘을
힘들게 맞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나는 결국 비행기를 선택했다.

경문통을 돌리며 순례하고 있는 한 카일라스 순례자

안개처럼 우울한 회색 매연이 짙은 청뚜(成都)시의 빵따(邦達) 공항을 이륙한 라사 행
비행기의 안내 방송은 여행객들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티베트를 지우고 중국
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 라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중국이 최근 행하고 있는 역사왜곡의 일환으로 라사에서
티벳이라는 흔적을 지우고 오로지 광대한 그들 대륙만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의 발로이겠지만
오히려 그것은 약소민족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그들 스스로의 이념을 배반한
국수주의가 행한 침략의 부끄러운 증거
일 뿐이다.
티베트는 중국 문헌에 나와 있는 것처럼 기원전 2세기 유목민족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국가적 형태를 갖추지 못했고 본격적인 역사는 7세기,
남리 송첸 왕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그의 아들 송첸 캄포가 최초의 통일국가인 투보 왕국을 건설하면서 현재의 중국 영토
4분의1을 차지하게 되고 이에 위협을 느낀 당(唐)태종이 문성공주를 티베트으로 시집을 보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쪽에서 바라본 카일라스

하지만 이 역사는 1950년 티베트를 침공한 사실과 함께 중국이 가장 감추고 싶어 하는 시간임에
틀림없다. 사실 티베트를 작년 인도 여행에 있었던 젊은 날의 열정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렸던
지난 세월들에 대한 변명의 연장에 있었다.
늘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가를 고민했던 지난 80년대 대학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피할 수 없었던 선택의 문제로 학생운동이란 길을 택했지만 그것은 치열하지 못한 지금의 삶에
멍에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묻고 또 묻게 만들었다.
세월을 지나오면서 결국 나는 다르다고 소리쳤지만 결코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쉽게 자신을
합리화 하거나 변명하며 젊은 날들을 팔아 살아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반성이 있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처럼 격랑의 세월을 지우지도 못했고 ,그 순수했던 열정들을
부정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세상에 대한 절망과 옆길을 보고 훔치며 살아온 날들에 너무
아파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고 더 이상 부끄러움이
절망이 되지 않는 시간을 만나고 싶은 욕심이 인도에서 다시 티베트를 향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하거나 확인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

인더스강 최상류를 이루고 있는 자따부리

행여 그렇다 하더라도 비록 작은 것이긴 하나, 마흔을 넘어서야 자신이 모진 집착과
모난 욕심을 지닌 못난 사람이라는 깨달음이 더 어긋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에
채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가진다.
이제 정말 두려운 것은 남들의 이목이 아니라 단지 내가 가지고 있는 보통 이하의 도덕성마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갑자기 비행기가 소란스러워진다.

파란하늘과 뭉게구름을 벗삼아 웅장하게 솟아있는 카일라스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있다.
눈 덮인 봉우리들이 구름 아래 가득하다.
졸고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일어나 평생 잊지 못할 운해의 순간을 놓칠까 사진을 찍어대고 있다.
이제 한 시간 후면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 만난다.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문명과 야만을 규정하는 것은 엄청난 인식의 오류라는 레비스트로스의
통렬한 비판은 언제나 내게 여행의 기준이다.
그들의 삶을 섣부르게 판단하거나 재단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티베트 사람들이

부처를 대하는 마음, 옴마니 반메홈(연꽃 속에 핀 보석이여)을 되뇐다.

카일라스를 순례하는 티벳 여인들

 

: 매일신문 2004/9/6. 전태흥氏가 쓴 "길위의 삶-(1)티벳-라사로 가는길" 

 

*글쓴이 전태흥은 1962년 부산 출생.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후 학생운동에 따른
제적,투옥 및 재야단체활동을 비롯 택시운전기사, 농산물 경매인 등을 하며
지난 96년 입학 15년만에 경북대를 졸업했다.

국회의원 비서관과 한나라당 대구시지부 홍보부장을 거쳐 현재 청소년 문화교실 및 개인사업을
준비중이다.

최근에는 인도,티베트,네팔 등지를 배낭여행하며 길 위에서 부딪치는 각양의 삶들과
그 속에서의 희망찾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는 인도기행문 ‘사람의 숲에서 보내는 편지’가 있다.

 

(사진은 월간 山 참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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