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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사랑(primal/primordial love)과 그 결과들 773_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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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7 ㅣ No.1678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들어가면서

이번 글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번역 용어인 사랑하다(to love, amo)라는 동사의 의미]에서 언급된, "원초적 사랑(primal love)"이라는 용어의 의미/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그리고 두 개의 그 즉각적 결과들에 대하여 함께 고잘하도록 하겠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7.htm <----- 필독 권고

 

2.

2-0. 지금부터, 이 글에서 말하는 "사랑"은, 3자들 사이가 아니라, 국소적으로(locally) 2자들 사이의 어떤 관계를 나타내는, 라틴어 "amor"가 나타내는 바로 한정합니다.

 

2-1. "원초적 사랑(amor)(primal love/primordial love)"이란, 영문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370항에서 "the chief passion(첫 번째 정)"이라고 말해지는 사랑, 그리고 프랑스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370항에서 "passion primordiale(원초적 정)"이라고 말해지는, 따라서 그 원인이 사욕(私慾)/사욕편정(私慾偏情)(concupiscence)이 아닌, 사랑을 말합니다. 즉, 아래의 발췌 문에서 지금 이 글자들과 동일한 색칠이 된 사랑을 말합니다.

 

(발췌 시작)

The chief passion is love which is drawn by the attraction of the good.

 

이 우두머리(chief) 정(情, passion)은 선한 사물의 매력(attraction)에 의하여 끌려가게 되는 사랑(love)을 말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즉,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65항에서, "the most fundamental passion"이라고 불리는, 바로 위의 발췌문에서 지금 이 글자들과 동일한 색칠이 된 사랑을 말합니다.

 

즉,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66항의 두 번째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된 사랑을 말합니다:

 

(발췌 시작)
All other affections have their source in this first movement of the human heart toward the good.

 

모든 다른 애정들은 선한 사물 쪽으로 향하는 인간의 심장(the human heart) 바로 이 첫 번째 움직임 안에 그들의 원천/근원(source)을 가집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즉,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q18, a8를 그 근거로 제시하면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1993년 회칙[제목: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 제78항에서, "primordial love"라고 불리는 바로 그 사랑을 말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hf_jp-ii_enc_06081993_vs_en.htm

 

[중간 결론 1] 즉,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q27, a3에서 말하는 "유유상종/비슷함(likeness, similitudo)"이 그 원인(cause)인, 그리고 이번에는(in turn) 이 비슷함의 원인은 명백하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good)이고, 그리고 이번에는(in turn) 선(good)의 원인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의지(the will of God)이므로, 따라서, 이 사랑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그 원인의 "원초적 제공자(primordial provider)"가, 피조물인 "나(I)" 혹은 "너(you)"가 결코 아니고"하느님의 의지(the will of God)"인, 선한 사물(the good) 쪽으로 [심장(heart) 안쪽에서 하느님에 의하여 야기되는, 따라서 심장 안쪽에 있는] 매력(끌려가게 됨, attraction), 즉, 심장의 첫 번째 움직임을 말합니다.

 

2-2. 다음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26, a2, Reply to Objection 2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발췌 시작)

The likeness we have to God precedescauses the likeness we have to our neighbor:

 

하느님 쪽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슷함/유사함(likeness)"은 우리의 이웃 쪽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슷함/유사함"을 앞서고(precedes) 그리하여 야기한다(causes).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3. [중간 결론 2] 따라서, 지금까지 제2항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우리는, "원초적 사랑(primal love)"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본문에서, "열한 개의 정(情)(passions)들" 중의 하나로 나열되고 있는 "사랑(amo, love)"을, 그리고 창조주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한문 문화권" 유학(儒學)에 있어서의 "칠정(七情)들"에서 나열되고 있는, "愛(amo, love)"를,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항에서는, 바로 이 "愛(amo, love)"의 직접적인(immediate)/근접(proximate) 결과들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

3-1. 우선적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q20 하느님의 사랑, a2 하느님께서 모든 사물들을 사랑하시는지? 을 반드시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_Ia_q20_a2.htm <----- 필독 권고

 

또한, 다음의 글의 제6항에 발췌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q20 하느님의 사랑, a2 하느님께서 모든 사물들을 사랑하시는지?를, 전후 문맥 안에서,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6.htm <----- 또한 필독 권고

 

3-2. 이제, 다음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q26 사랑 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74.htm <----- 필독 권고

 

3-3.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q27 사랑의 원인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4.htm <----- 필독 권고

 

특히,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의 a3 비슷함이 사랑의 한 원인인지?에서,

 

(i) "현실태적으로(actually) 동일한 질(quality)을 가지는 사물들 사이에 있는 비슷함(likeness)"은, 소위 말하는, "우의에 기인하는 사랑(love of friendship)"을 야기한다고 설명하고, 그리고

 

(ii) "다른 사물이 현실태적으로(actually) 가지고 있는 어떤 질(quality)을, 가능태적으로(potentially) 그리고 기울어짐(inclination)의 방식으로, 가지고 있는 하나의 사물로부터 일어나는 비슷함(likeness)"은, 소위 말하는, "사욕(私慾)/사욕편정(私慾偏情)에 기인하는 사랑(love of concupiscence)을, 혹은 유용성(usefulness) 혹은 즐거움(pleasure)에 근거를 둔 우의(友誼)"를, 야기한다고 설명합니다.

 

(iii) [중간 결론 3] (원초적 사랑의 결과들) 그러므로, 이둘 두 종류의 비슷함을 야기하는 "원초적 사랑(primal love/primordial love)"이 결국에 "우의에 기인하는 사랑(love of friendship)""사욕(私慾)/사욕편정(私慾偏情)에 기인하는 사랑(love of concupiscence), 혹은 유용성(usefulness) 혹은 즐거움(pleasure)에 근거를 둔 우의(友誼)" 둘 다를 결과들로서 야기함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4.

4-1. [추가 읽을꺼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 서술된 내용들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연역적 추론(deductive reasoning)을 하여 바로 위의제3-3항에서 이번 글의 두 번째 결과로서 말씀드린 "원초적 사랑의 결과들"까지 도출한 후에 인터넷 겁색을 하였더니, "Journel of Moral Theology"에 게재된  다음의 논문 [제목: Movements of Love: A Thomistic Perspective on AgapEros, 저자: William C. mattison III] 한 개가 검색 되었습니다:

"love of concupiscence" "love of friendship" "likeness" "movements of love" "Mattison" <----- 추가 읽을꺼리

 

그리고 바로 위의 검색 결과는 아래의 검색을 통하여 확보한 검색 결과입니다:

"love of concupiscence" "love of friendship" "lik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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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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