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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신학생들에게(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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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1-03-02 ㅣ No.6488

 

 

2001, 3, 1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복음 묵상

 

 

루가 9,22-25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사람이 온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묵상>

 

그저께 저녁 때 동기 신부들 몇 몇과 함께 신학교를 찾았습니다. 착의식(4학년이 되면서 '수단'을 입는 예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 입학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나는 언제 저 옷을 입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수단을 입는 선배들을 바라보는 양복 정장의 후배들의 부러움은 사실 대단한 것이지요. 나이 먹고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간 제 입장에서는 더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 날 수단을 입은 후배들은 너무 기뻐했습니다. 저도 무척 기뻤지요.  그렇지만 사실 인간적으로는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수단은 '세속에서의 죽음'을 상징하는 옷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옷을 입으면서 기뻐한다는 것은 기막힌 신앙의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옷을 입는 날을 기대하며 신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넘어서는 참 생명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수단을 입는 것 자체만으로 세상에서 죽고 하느님과 함께 새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수단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를 현실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모처럼 착의식에 참석하면서 착의를 하는 후배들에게 축하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수단의 의미를 삶 안에서 드러낼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이끌어주시기를 말이지요.  항상 "주님, 이 옷을 입음으로써 당신 진리와 성덕을 갖추어 당신 모상대로 만드신 새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라는 수단 입을 때 바치는 기도를 정성껏 바치면서 세속에서 죽고 주님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새로 태어난 사람으로서 부끄럼없이 살아가기를 말이지요.

 

그리고 어제는 독서직(미사 독서를 하는 직무, 4학년 때 받게 됨)과 시종직(미사 때 제대에서 복사를 서며, 예외적으로 성체 분배를 할 자격을 부여하는 직무, 대학원 1학년 때 받게 됨) 수여미사가 있어서, 이번에 독서직과 시종직을 받게 되는 후배 신학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오후에 신학교를 다시 찾았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독서직과 시종직을 받고 밝고 희망 찬 모습으로 성당 밖으로 나오는 후배 신학생들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축하의 악수를 나누면서 '지금 이 마음 변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말을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주님의 사제로서 가지는 기쁨과 희망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희망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함을 알기에, 오늘 후배 신학생들이 가진 기쁨과 희망이 세상이 주는 달콤한 유혹 때문에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성체를 본받아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밥으로 내어주는 기쁨과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어줌으로써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꽃피우려는 희망으로, 서로를 잡아 먹으려는 치열한 세상 논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랑하는 후배 신학생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거룩한 사명을 기쁘게 수행해 나갑시다.

비록 인간적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죽음의 길이지만 이 길이 참된 생명의 길임을 알기에, 힘들어하는 벗들 함께 일으켜 끝까지 이 길을 걸어갑시다.

어제 그대들이 보여준 기쁨과 희망 가득한 모습에 저 역시 힘을 얻고 오늘 사제로서 또 한걸음 내 딛습니다.

후배 신학생 여러분! 사랑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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