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동성당 게시판

주말을 잃어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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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진 [misoldo] 쪽지 캡슐

2002-04-29 ㅣ No.1559

잃어버린 주말, 어디서 찾나..?

 

 

 

" 경자씨, 주말에 시간 좀 내실수 있습니까? 다시 만나고 싶군요."

" 죄송합니다. 저는 주말에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안나는데요."

" 그럼, 다음주에는 어떠십니까? "

" 다음 주에도 마찬가지예요."

" 도대체 무얼 하시는데요..."

 

 

 

" 영호야, 아버지께서 모처럼만에 우리 가족 모두 다음 주말에는 어디를 다녀

오자고 하시는구나.. "

" 어머니, 저 주일학교 때문에 주말에는 시간을 낼 수 없는 것 잘 아시잖아

요.."

" 한번쯤 빠지면 안되니..? 오랜만의 우리 가족들의 시간인데.."

" 안돼요.. 그냥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하고 다녀오세요.."

" 원.. 애두..."

 

 

 

" 원정아, 기쁜 소식 전할게.."

" 뭔데..?"

" 우리 그룹에서 다음 주말 단풍놀이 야유회 가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 9시까

지 버스 터미널로 나오래. 우리집으로 와서 같이 가자.."

" 난 안돼.. 주일날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쳐야 하니까.."

" 너 아직도 그 주일학교 교사라는거 하니..? 그럼 3년동안이나 계속하는거 아

냐? 너 아니면 교사할 사람이 그렇게도 없니? 교회에서 월급을 많이 주는가

보구나.. 얘, 돈도 좋고 봉사도 좋지만 네 앞날도 챙겨라.. 그러다 언제쉬고

언제 결혼준비 하겠니..? 호호호..."

 

 

 

저는 지금 연극의 대본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일학교 선생님

들이 매주 듣고, 겪는 현실의 한 단면을 옮겨 적어 본 것 뿐입니다. 사회의

변천과 더불어 우리 모두가 바쁘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과거보다는 배워야

할 것이 많아졌고 해야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경쟁은 치열

해져서 남보다 앞서 공부하고 일하지 않으면 남에게 뒤지거나 빼앗기는 세

상이 되어 갑니다. 그래서 한가한 사람이란 이제 찾아보기 힘든 사회가 되었

습니다.

 

 

사회변화에 적응하며 일하고 공부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피곤하고 지쳐갑니

다. 바쁜 한주간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말을 즐기며 쉬는 시

간 뿐이라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렵게 살았던 우리의 과

거와는 달리 이제는 여가문화가 정착되어가는 기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즐거운 주말을 반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

다. 무엇을 위하여 누구에게 바치는 주말입니까?

 

 

주일학교 선생님들도 한주간 동안 남들과 똑같이 일하고 공부하며 피곤한

몸으로 새로운 한주간의 시작을 위해서는 휴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젊은 교사들은 친구들과 같이 멋진 휴일을 보내고 싶고, 주부교사들은 한 주

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단란한 시간을 쪼개야 하는 아픈 마음들입니다.

주일학교 때문에 애인과의 만남과 친구와의 우정도 때로는 멀어지고 가족

과의 소외감도 인내해야 합니다. 교회를 모르는 친구의 말처럼 월급은커녕

식사도 거르고 밤늦게 귀가하여 이웃과 식구들의 눈총도 견뎌야 하는 교사

들입니다.

 

 

주말을 잃어버린 사람들! 세상과 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컬어 주일학

교 교사들이라고 나는 지금 실례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주말,

선생님들은 어디서 찾으시렵니까?

새해에도 선생님들의 변함없는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선생님들간의 우정,

그리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시는 여러분의 깊은 희생에 더 큰 기대를 걸어

봅니다. 세상 사물뿐 아니라 시간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위해

바친 선생님들의 노고를 결코 잊지 않고 계실 것입니다.

 

- 나원균 신부님의 ’교사들에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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