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16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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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2-07-20 ㅣ No.938

연중 제16주일(가해. 농민주일. 2002. 7. 21)

                                              제1독서 : 지혜 12, 13. 16∼19

                                              제2독서 : 로마 8, 26 ∼ 27

                                              복   음 : 마태 13, 24 ∼43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은나라의 법률에는 재를 거리에 버리는 자는 사형을 시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자공이 공자에게 '이것은 너무 무거운 벌이 아닙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이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데 현명한 방법이다.  재를 거리에 버리면 반드시 다른 사람이 뒤집어쓰게 된다.  그러면 상대는 화가 나서 싸움을 하게 된다.  싸움을 하게 되면 손자의 대까지 계속 이어진다.  이런 중대한 죄이니 당사자를 사형해도 되는 것이다.  대체로 중벌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를 거리에 버리지 않게 하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  사람들이 간단한 일을 실행하여 좋지 않은 경우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람을 다스리는 경우이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재를 거리에 버리는 자를 사형에 처할 수 있다는 은나라의 법률과 다른 모습을 오늘 독서와 복음은 전해줍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어떤 죄를 저지를 때마다 곧장 벌을 내리신다면 하느님 앞에 어느 누구도 살아 남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기다리십니다.  "죄를 지으면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가르치셔서 당신 자녀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셨다"라고 오늘 제1독서인 지혜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오래 참으시고 오래 기다리시며 충분한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셨다는 것을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야기합니다.  성령은 마치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법조인이 아닌 이상 우리의 법적 지식은 턱없이 부족하고 막연합니다.  따라서 법적으로 풀어야 할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는 그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적절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우리의 권리가 됩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가 돈주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이 몸소 보내신 존재로 우리의 삶 전체를 지켜보고, 판단하고, 하느님 앞에 당당히 서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오늘 복음은 밀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자라면서 가라지도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종들이 가라지를 뽑아 버리려고 하자 주인이 가만두라고 말합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밀을 뽑을 수 있습니다.  주인은 추수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십니다.  이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착한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뒤섞여 사는 이 세상이나 우리 교회와 잘 어울리는 비유입니다.  세상 속에만 밀과 가리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랍니다.  성급한 이들은 나쁜 사람들을 교회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착한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을 가리는 일은 하느님의 종말 심판에 맡겨야 합니다.

  진리를 분별하는 일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그 영역을 우리가 감히 넘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권한을 곧잘 넘어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듯합니다.  밀과 가라지가 분명히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상대가 가리지인지, 상대를 가라지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가라지인지를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큰 죄를 짓는다 해도 하느님께선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악이 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선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오늘의 가라지가 내일엔 밀로 변할 수 없지만 오늘의 가라지 같은 인생은 내일엔 밀과 같은 인생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도 그랬고 성 아우구스띠노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기다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작정 끝없이 기다리시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선 악의 회개를 기다리시면서 동시에 악을 심판하실 마지막 날을 기다리십니다.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앙인에게 가장 큰 도전이요 위협입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이 풍성하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악의 도전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의 성장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기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 겹쳐서 일어날 때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잘못을 하고 난 다음 사고가 발생하면 내가 벌을 받는구나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잘못을 할 때마다 벌을 주시려고 지키고 계신 분이 아니라 십자가로 우리에게 죄를    용서받을 기회를 주셔서 희망을 가지고 살게 하신 분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이를 판단하고 구분하기보다는 용서하며 함께 하나의 모습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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