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끝이 시작’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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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2-13 ㅣ No.10083

 

김형준/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흘렀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아직 대선이 끝난 것 같지 않다. 최근 새누리당은 민주당 의원들의 ‘대선 불복 선언’과 ‘부친 전철 답습 발언’의 배후로 문재인 의원을 지목했다. 문 의원은 최근 발행한 저서에서 “지난 대선에서 ‘종북(從北) 프레임’의 성공이 박근혜 후보의 결정적인 승인이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문 의원의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단순한 믿음과 직관에서 벗어나 실증적 자료를 통해 이를 입증해야 한다.

첫째,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이 다른 이슈보다 전폭적인 관심을 끌었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한국선거학회(KAES)가 지난 대선 직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NLL 논란’(45.9%)보다는 박 후보가 주도적으로 제기한 복지 확대(74.3%)와 경제민주화(70.6%)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문 후보가 이슈 경쟁에서 박 후보에게 밀린 것이 종북 프레임보다 훨씬 더 중요한 패인(敗因)이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둘째, 문 후보 개인 역량이 박 후보보다 훨씬 뛰어난데 종북몰이 같은 색깔론이 선거를 결정지었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한국갤럽이 대선 직후 실시한 조사 결과, 박 후보에게 투표한 이유로 ‘능력이 있어서’가 12%로 나타난 반면, 문 후보에게 그 비율은 6%에 불과했다. 한편, 박 후보를 찍은 이유 가운데 ‘상대 후보가 싫어서’는 6%인 반면, 문 후보는 그 비율이 15%로 훨씬 높았다. KAES 조사에서는 박 후보 지지자의 경우 ‘아주 만족한다’는 비율이 49.3%인 반면, 문 후보 지지자는 그 비율이 17.8%에 불과했다. 어쨌든 박 후보가 종북몰이와 같은 외부 충격으로 이득을 봤다기보다는 개인 역량을 통해 자발적인 지지자를 많이 모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셋째, 누구를 찍을지 선거 막판에 결정했던 유권자들에게 종북 프레임이 크게 작동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총괄본부장은 대선 막판 부산 유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제기했다. 이것이 ‘종북몰이’의 완결판이었다면 선거 막판에 박 후보에게 표가 몰렸어야 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선거 전 일주일 이내에 투표할 후보를 결정한 유권자는 23%였다. 그런데 이들의 후보 선택을 분석해 보면 박 후보 16%, 문 후보 27%로 나타났다. 박 후보보다 문 후보의 표심(票心) 결집이 선거 막판에 집중됐다는 뜻이다.

대선 패자가 민심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인이 대선 민심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면 자신과 당에 독(毒)이 될 수 있다. 올바른 시점에 올바른 메시지로 국민을 올바르게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속에 증오와 투쟁만 있으면 국민은 피곤하고 편히 쉴 수 없게 된다. 지난 대선에서 문 후보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이 ‘종북 프레임’이 아니라, 후보 개인과 민주당 요인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면 민주당은 이제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큰소리가 아니다. 자기 혁신이다. 민주당은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 회복과 수권(受權) 정당으로서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민주당은 최근 몇 가지 치명적인 모순에 빠져 있다. 대선 불복은 아니라면서 끊임없이 대선 불복성 막말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의 역량이 부족해 대선에서 패배했다고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종북 프레임에 매달린다.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면서 언제나 과거에 집착한다. 권력을 쥔 대선 승자가 집권 후 스스로 정국을 극단적 대치로 몰고 간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문 의원이 ‘끝이 시작이다’는 화두를 던진 만큼 그의 행보도 달라져야 한다. 대선 패배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참회 없이는 결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문 의원에게 필요한 것은 종북 프레임을 제기하고 차기 대선 도전 의지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이 겪고 있는 모순들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혹시 자신이 민주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힘들더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증오를 내려놓고 대선 승복에 대한 명쾌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 끝이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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