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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첫미사후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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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5-07 ㅣ No.36

교회를 위한 미사


성 시스티나 경당에서 추기경단과 함께 드린
공동 집전 미사를 마치며 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첫 미사 후 연설
2005년 4월 20일 수요일



존경하는 형제 추기경님들과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들,
선의의 모든 분들에게!

1.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가 충만하기를 빕니다(1베드 1,2 참조)! 저는 지금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제 이곳 사도좌에서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 제게 맡겨진 책임 때문에 보편 교회 앞에서 제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과 인간적으로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속 깊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례에서 노래하였듯이, 하느님께서는 당신 양떼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친히 성자의 대리자를 뽑아 목자로 삼으시어 영원히 당신 양떼를 인도하게 하셨습니다(사도 감사송 1 참조).

사랑하는 여러분, 그 모든 것에도 제 마음은 온통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은총에 대한 감사로 충만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존경하는 저의 선임자이신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저를 위해 얻어 주신 특별한 은총 덕분입니다. 마치 그분의 힘센 손으로 저를 꽉 붙잡고 미소어린 눈으로 저를 바라보시며 특히 지금 이 순간 제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선종과 이어지는 며칠 동안은 교회와 온 세계에 특별한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분의 선종이 가져다 준 큰 아픔과 마음속 빈자리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위로는 한 물결을 이룬 믿음과 사랑과 정신적 연대 안에 드러났고, 장엄한 교황 장례식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은 어떤 면에선 하느님의 권능을 인식할 수 있었던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진리와 사랑의 일치시키는 힘으로 교회가 하나의 위대한 인류 가족을 형성하기를 바라십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항 참조]. 선종하시는 순간에, 스승이신 주님과 결합되신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그리스도인 백성에게 신앙의 확신을 주시고, 그들을 당신께 불러 모으시어 온 인류 가족이 더욱 일치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 주심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은 그 긴 교황직의 최후를 장식하셨습니다.

어찌 이러한 증거로 힘을 얻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은총의 사건이 주는 힘을 어찌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 저의 모든 예상을 깨고 뜻밖에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섭리로 존경하는 추기경님들의 뜻을 통하여 위대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잇도록 저를 불러 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 저는 이천년 전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한 베드로의 말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5-19)고 하신 예수님의 장엄하신 말씀이 제 귓가에 맴돕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저는 지금 이 복음 장면을 재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저는 갈릴래아 출신의 그 어부가 걱정스럽게 한 말을 떨리는 목소리로 되풀이하며, 스승이신 하느님께서 안심시켜 주시며 하신 약속에 진심으로 다시 한 번 귀 기울여 봅니다. 지금 나약한 제 어깨 위에 놓인 책임이 막중하지만, 하느님의 힘은 더욱 크시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마태 16,18). 주님께서는 저를 교황으로 뽑으시어 주님을 대리하여 모든 사람이 편히 쉴 수 있는 ‘반석’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의 나약한 힘을 채워주시어 당신 양떼의 용기 있고 충실한 목자로서 언제나 당신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청 드립니다.

제게 주어진 이 특별한 봉사직인 ‘베드로’ 직무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며 보편 교회에 봉사하는 일입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 저를 온전히 맡겨 드리며 그 의탁을 새롭게 하려 합니다. “주님, 주님께 의탁하는 이 몸 끝내 부끄리지 않으리다.”(시편 30[31])

추기경님들, 제게 보여주신 여러분의 신뢰에 감사드리며 꾸준하고 적극적이며 현명하신 협조와 기도로 저를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형제 주교님들께서도 제가 참으로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 될 수 있도록 기도를 통하여 제 곁에 머물러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주님의 뜻에 따라 하나의 사도단을 이룬 것과 같이, 공의회가 강조했듯이(교회 헌장, 22항 참조), 베드로의 후계자와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은 서로 긴밀하게 일치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단체적 친교는, 비록 교황과 주교들이 하는 역할과 임무는 다르지만, 교회와 신앙의 일치에 이바지하고, 현대 세계의 복음화 활동의 효과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따라서 저 역시 존경하는 선임 교황님들이 걸어온 이 길을 따라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생생한 현존을 이 세상에 선포하고자 합니다.

3. 특별히 제 앞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증거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더 용기 있고 더 자유롭고 더 젊어진 교회를 남겨 주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과 표양에 따라 과거를 차분하게 되돌아보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를 말입니다. 대희년을 맞이하여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시대에 맞춰 권위적으로 재해석한 복음을 가지고 새 천년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가리켜 제삼천년기의 광활한 대양 속에서 우리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판’이라고 적절하게 표현하셨습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57-58항 참조]. 또한 그분께서는 당신의 영성록에 이런 말씀을 적으셨습니다. “저는 앞으로 오랜 동안 새 세대들이 20세기에 있었던 이 공의회의 풍부한 유산의 덕을 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2000.3.17.).

저 역시, 베드로의 후계자의 고유한 봉사를 시작하며, 제 선임 교황님들을 좇아서 그리고 교회의 오랜 전통을 충실히 이어가는 가운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이끈 그 투신을 따르려는 확고한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싶습니다. 올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폐막식(1965.12.8.)이 끝난 지 정확히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공의회 문헌들은 그 시대성을 잃지 않고 있으며, 그 가르침은 특히 교회와 세계화된 현대 사회의 새로운 요구들에 적절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4. 매우 의미심장하게도, 교회가 성체성사에 바친 이 특별한 해에 제 교황직이 시작됩니다. 제가 부름받은 직무의 특성이 이러한 섭리와 우연히 일치하고 있음을 어떻게 간과할 수 있겠습니까? 성찬례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심이며 교회의 복음화 사명의 원천으로서 제게 맡겨진 베드로 직무의 영원한 핵심이며 원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찬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항구한 현존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성찬례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고, 당신의 성체 성혈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이처럼 그분과 맺는 완전한 친교에서 교회 생활의 모든 다른 요소가 흘러나옵니다. 곧 신자들 사이의 친교,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하기 위한 노력,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하고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열정이 흘러나옵니다.

따라서 올해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거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찬례는 8월에 쾰른에서 열릴 세계 청년 대회와 ‘교회 생활과 교회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를 주제로 10월에 열릴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의 핵심입니다. 모든 사람이 앞으로 몇 달 동안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신심을 더욱 키우고 특히 전례를 장엄하고 올바르게 거행함으로써 주님의 참 현존을 용기 있고 분명하게 표현하도록 당부합니다.

또한 특별히 사제들에게 당부합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각별한 애정으로 여러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제 선임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수없이 강조하셨듯이, 사제 직무는 성찬례와 함께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진 다락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당신의 마지막 성목요일 담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제의 삶은 더욱더 성찬례로 ‘구현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2005년 성목요일 담화, 1항) 모든 사제 생활과 사명의 중심인 미사 거행을 날마다 정성들여 바치는 일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바지할 것입니다.

5. 성찬례로 자라고 성찬례에서 힘을 얻는 가톨릭 신자들은 그 다락방에서 그리스도께서 바라셨던 완전한 일치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촉구받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의 후계자는 자신이 거룩한 스승의 이 숭고한 바람을 특별히 유념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에게는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루가 22,32 참조).

따라서 베드로의 후계자인 저는 베드로가 순교한 로마 교회 안에서 저의 직무를 온전히 깨닫고 이 직무를 시작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의 가시적이고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저의 첫째가는 임무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제가 품은 뜻이며 제가 해야 할 의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호의를 표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 일치의 길로 가는 모든 진보의 전제는 바로 내적 회개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일깨워 줄 수 있는,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양심을 움직이는 그러한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만 합니다.

신학적 대화가 필요합니다. 과거의 선택들이 내려진 역사적 이유들을 깊이 검토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시급한 것은 ‘기억의 정화’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자주 일깨우셨던 이 기억의 정화만이 그리스도의 충만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든 생명의 대 심판관이신 하느님 앞에 서야 하며,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의 완전하고 가시적인 일치라는 커다란 선을 위해서 우리가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언젠가는 그분께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이 문제에 직접 관련되어 있음을 통감하며, 교회 일치라는 근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 하겠습니다. 선임자들의 뒤를 이어, 저는 여러 교회와 교회 공동체 대표자들과 만남과 일치를 증진하는 데에 적절한 모든 활동을 장려하려는 굳은 결심을 합니다. 지금 이 자리를 통해서도, 모든 이의 한 분 주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를 보냅니다.

6. 지금 이 순간, 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돌아가신 뒤 그분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우리가 함께 겪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을 기억합니다. 맨 땅에 놓인 그분의 유해를 중심으로 국가 지도자들, 각계각층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모여서 기억에 남을만한 사랑과 존경을 보여주었습니다. 온 세계가 그분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통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확대된 그러한 열렬한 참여는, 두려움과 불안, 미래에 대한 의구심에 시달리는 현대 인류가 교황에게 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하신 한 분 하느님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릴 임무를 새롭게 자각하고 있습니다. 교황 직무를 맡으면서 저는, 제 직무는 그리스도의 빛을 오늘날 사람들에게 비추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빛이 아닌, 그리스도의 빛을 말입니다.

이러한 인식으로, 저는 다른 종교 신자나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인류와 사회의 참된 선을 찾는 데에 있어서, 교회는 그들과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계속해 나가기를 바란다는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하여 저는 소박하고 다정하게 그들과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께 인류 가족을 위한 일치와 평화를 간청하며, 모든 가톨릭 신자는 온 인류의 존엄을 존중하는 참된 발전에 기꺼이 협력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저는 선임자들께서 시작하신 여러 문화와 나누는 유익한 대화를 추구해 나가는 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헌신할 것입니다. 상호 이해는 바로, 모든 사람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특히 젊은이들을 생각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특별히 즐겨 대화를 나누셨던 젊은이들에게 저도 사랑의 인사를 보냅니다. 올해 세계 청년 대회 때 쾰른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대화를 계속해 나가면서 여러분의 기대를 듣고 여러분이 살아계신 그리스도, 언제나 젊으신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만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성체성사의 해를 맞아 발표하신 교황 교서의 제목이기도 한 이 간청은, 그리스도께서 불러 주신 제 직무를 시작하면서 마음에서 절로 우러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처럼, 저 또한 저의 무조건적인 충성을 새롭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분의 교회에 온전히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오로지 그분만을 섬기고자 합니다.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저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의 전구를 간구합니다. 성모님의 손에 저와 교회의 현재와 미래가 놓여 있습니다. 거룩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모든 성인의 전구도 빕니다.

이런 마음을 안고, 저는 존경하는 형제 추기경님과 이 예식에 참여하신 분들,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지켜보시는 모든 분들에게 특별한 사랑의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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