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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 [bosco99] 쪽지 캡슐

2000-05-28 ㅣ No.769

국민학교 어린이도 돌을 던지고 (20일)

 

 

 

아침부터 데모가 시작되었다. 시민이 무리를 지어 떠들고 있었다. 어떤 부인은 연탄집게라도 들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의분을 토로하고 있었다. 나를 도와주는 언니의 딸, 국민학교 1학년생인 마리아가 엄마에게 한 말이다. "엄마, 엄마, 아이들이 그러는데 인민군이 쳐들어 와서 마구 사람을 죽인데요. 그래서 선생님도 집에 돌아가라고 했대요.... " 기가 막힌다. 이 철부지 어린이들의 눈에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군인들이 빨갱이 붉은 인민군으로 보였다는 것일까...

 

 

 

전날 언니가 시장에 안 갔기 대문에 계란에 비벼 점심을 때우고 교구청에 나갔다. 센터 6층에 있는 교구청은 출입구의 유리가 깨어져 있었으며, 투석에 의하여 유리창 2-3 군데에 구멍이 뚫어졌을 뿐 별 피해는 없었다.

 

 

 

오후 3시가 지나서였다. 서울에서 도착한 윤공희 대주교님을 위시하여 골롬반 신부까지 10명 가까이 신부들이 모였다. 군종으로 상무대에 있던 장 신부가 돌아와서 기관장 회의에서 토의된 일을 보고하고 잠시 후 역시 그 회의에 참석했던 부주교 장옥석 신부도 같은 말을 했다. 동석했던 신부 전원이 분개했다. 센터 6층에서 공수부대의 만행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계엄사령부가 허위보도를 시작했고 모두가 목격자요, 피해자인 80만 광주 시민을 우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노한 시민들은 도처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일부 병력이 계엄군을 교체한 것같이 보였다. 군인들은 시민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시민들이 모여들면 대열을 정비하여 분산시키고 있었다. 오후5시가 지나서 공사중인 한국은행 앞 사거리에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계엄 해제! 계엄 해제! 000 물러가라! 민주인사 석방하라! 구속자 석방하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가 뜨겁게 뜨겁게 불러지고 다시 각종 구호가 격렬해진다. 잠깐 사이 모여든 군중 때문에 도로는 가득 찼으며, 중고교생이 다수 보이고, 국민학교 5-6학년생도 띄엄띄엄 보인다. 몇 사람이 공사장에 굴러 있는 드럼통과 차단물, 각종의 드럼통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에 불을 붙혔다. 그러나 가는 연기만 올랐을 뿐 불은 곧 꺼졌다. 기름이 없었던 것 같다.

 

 

 

시민들은 드디어 와- 와- 소리지르며 계엄군 쪽으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하여 계엄군은 페퍼포그를 던지면서 속히 대응했다. 시민들은 흩어지며 돌을 던진다. 그 때였다. 한 국민학생이 길에서 돌을 주어 몰려드는 계엄군들에게 던지고는 달아났다. 너무나 어설프게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심각하다. 철부지 어린이까지 봉기한 것이다. 이제는 계엄군이 괴뢰군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80만 광주 시민 뇌리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국군에게 돌을 던지 어린이의 머리 속에 아니 온 몸에 찍힌 깊은 상처가 언제나 말끔히 씻길 것인가? 갑자기 피가 역으로 흐르는 강한 쇼크를 받아 돌아서 버렸다. 잠시 소강상태를 이룬 틈을 타 본당으로 돌아왔다.

 

 

 

7시 30분 성모상 앞에서 성월기도를 바치고 나서 8시에 수녀님들과 사무장 그리고 언니 6명이 큰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 무참하게 죽은 영혼들을 주님의 자비하신 손길에 맡기면서 아픈 가슴을 억제하면서... 성부와 성자와... 탕, 탕, 탕탕탕하는 갑작스런 총성이 오싹하며 온몸을 조여 들였다.

 

 

 

아! 이것이 나의 마지막 미사가 아닐까? 어디선가 총탄이 나의 머리통을 부수고 가슴에선 피가 솟아 하얀 제의를 빨갛게 물들일 것만 같았다. 세 수녀님들도 콩알처럼 보여졌다. 즉, 하느님 시작한 이 미사를 무사히 끝내게만 해 주십시오. 총탄에 쓰러져도 거룩한 이 제사만은 드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내 평생을 통해 간절한 기도, 절박한 기도를 드렸다. 8시 25분 제의를 벗으며 전깃불을 끄고 나니 어둡다. 달빛에 희미하게 집들이 보이지만 어느 한 곳에도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무서운 밤이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피가 땅을 적시고 얼마나 많은 학생과 젊은이들이 그리고 시민들이 죄도 없이 목숨을 빼앗겼을까?

 

 

 

(내일 계속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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