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교황의 장례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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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연 [aldus119] 쪽지 캡슐

2005-04-16 ㅣ No.424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미사 때의 한 장면입니다. 아무 장식도 없는 나무관이 거의 땅을 맞대고 있습니다. 관에는 십자 표시와 성모 마리아를 표시하는 Maria의 첫글자 M만 새겨져 있을 뿐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어렸을 적에 어머니를 잃었기에 성모님을 어머니 삼아서 살아오셨기에 성모님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에 관에도 성모님의 표식을 해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에는 복음서가 펼쳐서 놓여있을 뿐입니다.

국가 원수나 고위 인사의 장례식 장면을 보면 높은 관대에 관을 모셔놓고 행당 국가의 국기라든가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화려한 덮개로 덮어 놓습니다. 하지만 교황님의 관은 아무러 장식도, 덮개도 없이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유명하던 사람이라도 하느님께 돌아갈 때에는 그저 빈손일 뿐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 앞에 설 때에는 지위와 신분의 높고 낮음도 없이 그저 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것도 약점과 허물이 많은 인간!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는 가슴을 치며 "주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루가 18,13)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1978년 8월에 선종하신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자신의 관을 아무 장식도 하지 말고, 덮개도 없는 채로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성서만을 펼쳐놓으라는 유언을 남기셨답니다. 실제로 그분의 장례미사 때는 그분의 유언대로 했답니다. 어느 추기경님의 회고에 따르면, 바오로 6세 교황님의 장례미사중에 교황님의 관 위에 놓인 성서가 바람에 날려서 마치 누가 책의 장을 빨리 넘기는 것처럼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석한 많은 이들이 박수를 쳤답니다. 돌아가신 교황님이 성서를 넘기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꼈다는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도 바오로 6세 교황님의 유지를 받들어서 자신의 관에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고 오직 복음서만 올려놓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설사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해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믿을 때 그 무력함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죽음을 넘어서는 분이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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