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의 영성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 가브리엘[St. Gabriel a Vi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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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숙 [hsryu] 쪽지 캡슐

2001-02-28 ㅣ No.17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 가브리엘[St. Gabriel a Virg. Perdolente. C.]

 

                                                         (축일 2월 27일)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아시시가 전 세계에 유명해진 이유중의 하나는 13세기에 청빈(淸貧)의 사도이며 수도회의 창립자인 성 프란치스코의 출생지이기도 하지만 19세기에 아시시 市는 다시 또 다른 성인을 배출함으로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가 바로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 가브리엘’ 로 쾌활한 성격, 완덕에의 열심, 돌연한 회개 등 많은 점이 프란치스코와 비슷하여 속명을 프란치스코라 하였다.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 가브리엘은 1838년 3월 1일 아시시의 市長인 아버지와 경건하고 교양 있는 어머니에게서 열세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족한 점이 없이 태어난 그에게 불행이라면 네 살밖에 안됐을 때 어머니를 여윈 일이다. 어렸을 때 그는 대단히 활발하고 성격이 거칠어 나중에 성인이 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 교사의 훌륭한 가르침으로 자신의 결점을 바로잡고 예수회의 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성격이 달라졌다.  수재였던 그는 학교성적도 좋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망이 두터워 세상의 명예나 교제 등에 애착을 가졌다. 음악에 대한 재주나 광대한 지식 등이 많아 상류 社交界에도 출입하는 기회가 주어지므로 점점 사치함과 觀劇 기타 많은 취미를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세속적인 일에 몰두하면서도 그의 영혼을 정결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는 종교상의 책임에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그를 깨우쳐 주실 때가 다가왔다. 그가 세속적 쾌락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병에 걸려 중태에 빠졌는데 그때 비로소 현세의 허무함과 허망함을 깨달아 만일 자기 병이 낫는다면 반드시 수도원에 들어가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굳게 약속하였다. 기적과도 같이 중병은 낫게 되었고 건강하게 되자  전에 누리던 쾌락에 기울어져 약속을 잊어버린 듯 지냈는데 다시 병을 얻게 되어 생명이 위험하게 되었다. 어느 날 밤, 고통이 아주 심해 견딜 수 없었을 때 그는 에수회의 순교자 성 안드레아 보볼라의 상본을 들어 자기 목에 대고 그분의 전구로 이 병이 낫기만 하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수도원에 들어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다행히 그의 원의는 허락되어 이번에는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프란치스코는 다음날 즉시 예수회 수도원장을 방문하고 입회 허락을 청했지만 지금까지 너무 세속적인 생활을 하였기에 원장도 그의 眞意를 의심하여 고려해 보겠다고 약속하고 일단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동안 프란치스코도 생각을 달리하여 예수회보다 더 엄격한 십자가의 성 바오로가 창립한 예수 고난회에 들어가기로 결심하였다.

   성모 승천 대축일에 있었던 일이다. 과거 스보레도에 한창 유행했던 콜레라가 성모님의 전구로 소멸되었다는 이유로 많은 시민들의 謝恩行列이 대대적으로 거행될 때 프란치스코는 행렬 중 대주교께서 모셔 들고 있는 성모상을 쳐다보니 그의 입이 움직이며 "프란치스코야! 어찌하여 세속을 버리기를 주저하고 있느냐?" 하는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극히 감동되어 즉시 父親께 자기 결심을 말하였다. 아버지는 장차 자기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놀랐지만 하루종일 열심히 기도하며 생각한 결과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여 허락하였다.

   예수회 학교를 졸업한 후 스보레도를 떠나 모로발레의 예수 고난회에 들어갔다. 그때까지 아무에게도 수도회 입회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일시적인 마음으로 수도원에 들어간 것 같으니 오래가지 못하리라. 곧 염증이 나서 도망쳐 나올 것이다" 라고 생각했으나 그 예상은 맞지 않았다. 입회 11일째 되는 날 수련자가 되는 허락을 받아 미사 중에 예수 고난회 수도복을 입고 수도명으로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수사들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형제들에게 봉사하고 어려운 일이라도 자진해 맡아 하고 종종 있는 엄한 질책, 주의 훈계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들으며 수도 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이런 일들은 지금까지 세속에 있으면서 늘 남보다 나았던 안락한 생활과 모든 칭찬과 명예와 인망을 한 몸에 지니고 있던 그에게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일단 수도 생활을 결심한 이상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완덕에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다.

   예수 고난회의 목적은 주님의 수난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주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을 한층 더 드리는데 있다. 가브리엘은 주님의 수난에 깊은 존경을 드린 것은 물론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심도 뛰어났다. 그가 성모 마리아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는 "성모 마리아는 내 마음의 마음, 내 혼의 혼, 이 세상에서의 내 천국" 이라고 한 말로써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그가 덕행의 길을 꾸준히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성모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하느님과 함께 회칙을 세밀한 점까지 충실히 지키며 6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 때 신학, 철학 공부도 거의 마치고 다음해 성품성사의 하품인 4품까지 받기로 되어 있었지만 주님의 섭리로 폐렴에 걸려 병고를 참아내다 1862년 2월 27일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많은 기적이 그의 전구로 일어났으므로 1908년에 복자품에, 1920년에는 성인품에 올랐다.

 

   우리도 성 가브리엘의 표양을 본 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모 마리아의 고통에 대한 신심을 굳게 가져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주님의 고통과 성모님의 고통에 한 몫을 한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고통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자. 바오로 사도도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데살 5, 16-18).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께 영광과 흠숭을 드리자.

 

                                               - 카톨릭 성인전을 요약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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