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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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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균 [zoster] 쪽지 캡슐

2009-08-13 ㅣ No.6914

어제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5년만에 어떤 여자 환자분께서 급성장염으로 저의 진료실을 방문하셔서 반가운 마음에
" 그동안 어디 이사가셨나봐요?"  했더니, 그분 말씀이
"제가 그동안 선생님을 용서하느라고 그랬습니다." 그러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깜짝 놀래서 무안한 얼굴을 하고 "무슨 일이신가요?"  했더니...
 
자초지종이 이렇습니다.
그 분의 남편되시는 분이 5년전에 저의 병원에 몇번 들렸다가 제가 진단을 못하고
결국 폐암말기로 서울대병원에서 진단받고 2달만에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동안 저에 대한 섭섭한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에 저의 병원에 올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 부부는 그동안 저에 대한 믿음으로 저의 병원을 오랫동안 다녔었는데,
5년전 당시 생긴 병세를 제가 미처 진단을 못하고 계속 호전되지 않아 
서울대병원에 가셔서야 폐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미 늦어버린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세월이 흐르면서 저를 용서하게 되었고,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저의 병원을 오지 않다가 이제서야 그 마음이 다 풀려서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저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남아있지 않기에 오셨다는 겁니다.
" 아. 그랬었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세심하게 봐드렸어야 하는데..."
저는 차마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숙여 죄송한 마음을 표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환자분께서 돌아가신 뒤에 직원을 시켜서 챠트와 엑스레이를 가져오게 해서
서울대병원에 가기 1-2달전에 저희 병원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검토를 해 보았습니다.
폐의 좌측 첨부에 병변이 있었지만 과거에 폐결핵을 앓았던 흔적이라고 생각하여
한달 간격으로 폐사진을 추적했던 기록이 있더군요.
지금 다시 봐도 당시의 엑스레이의 병변을 폐암이라고 볼만한 소견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결국 진행된 폐암의 소견으로 결론이 났으니  참으로 안타깝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보다 적극적으로 C.T나 MRI를 권유했었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이 후회처럼 밀려왔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으니 소용없는 일이지요.
 
"이제는 선생님을 다 용서하였으니 자주 올께요" 하시면서
저의 진료실을 나가는 환자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난 5년동안 희희낙낙하며 살아오는 동안 
누군가 저를 용서하기 위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죄송스런 마음이 몰려옵니다. 
"아!  나는 별 것 아닌 것 가지고도 교만하게 다른 사람을 용서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주님께  매 미사 때마다 빌고 또 빌고도 용서하지 못하며 살고 있는데, 
어떤 자매는 남편의 폐암 진단을 못해 죽음에 이르게 만든 못난 의사를 용서하기 위해
5년 동안 많은 눈물을 흘리며 지내왔으니..."
 
그렇습니다.
그 자매의 용서에 비하면 그동안 제가 타인을 용서하지 못함은 참으로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별 것 아닌 용서에 매달려 끙끙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는 저를 용서하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더랬습니다.
저는 제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 제 주변의 누군가가
저 때문에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것 입니다.
 
주님!
주님 주님 하며 온통 제 입장에서만 교만하게 신앙생활을 해온 저를 용서하시옵소서.
저의 헛 부르짖음을 용서하시옵소서.
오늘 저의 오만과 거짓을 꾸짖어 주시고 제가 더 머리를 숙이고 납작 엎드리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저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제가 세상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저를 용서하고 있음을 알게 하소서.
지금 이시간 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을 많은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여 주시고
주님!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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