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동성당 게시판

"바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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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영 [goodforyou] 쪽지 캡슐

1999-10-20 ㅣ No.315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날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진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오늘은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노래였다.

      나는 이 노래만 나오면 코끝이 찡해옴을 느끼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또 한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이 노래를 들으니 그 기억이 다시 되살아났다.

       

      6학년 마지막 겨울방학.

      나는 아버지를 따라 삼양동에 있는 "한빛 맹아원"이라는 곳에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다.

      그저 맹아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매우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따라나선 길이

      었다. 맹아원은 주택가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꽤 큰 편이었다. 학교, 교회, 그

      리고 기숙사가 있고, 운동장도 매우 컸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기억에는 100명이 넘

      는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맹아원을 둘러보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멀건 배

      추국에 밥, 그리고 김치가 전부였던 것 같은데, 나는 비위가 상해 밥을 먹지 못한 것으로 기

      억이 된다. 오후가 되어서는 함께 간 봉사단원들과 맹아원생들이 레크레이션 시간을 가졌다.

      예배당에 모여 함께 노래를 부르고 간식을 나누어 먹고... 나는 모든 것이 낯설어 함께 간

      언니 옆에 꼭 붙어 앉아 있었다. 손에 먹을 것을 잔뜩 쥐었으나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마

      냥 좋아하는 원생들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들은 눈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눈

      동자가 점점 작아진다. 그러다 보니 눈이 점점 푹 꺼져 들어간다고 했다. 내 옆의 언니와 짝

      이 된 아이는 내 기억에는 내 또래였던 것 같다. 나의 존재를 볼 수는 없지만 느낀 그 아이

      는 나에게 자신의 귤을 까서 먹으라고 내밀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움찔했다. 옆의 언니가

      받아서 내게 쥐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귤을 먹지 못했던 것 같다. 그네들은 노래를 무척

      잘 불렀다. 정말 놀랄 정도로 노래를 멋들어지게 잘 불렀다. 그리고, 아주 기쁘고, 즐겁게...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라디오를 끼고 산다고 했다. 우리가 TV를 보며 즐기는 동

      안 그들은 라디오를 즐기는 것이었다. 최신 유행하는 가요들을 정말 잘 불렀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에 크게 와닿은 노래는 바위섬이라는 노래였다. 한 어린 학생이 이 노래를 얼마나

      구슬프게 부르던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원생들은 모두 큰 대문 앞까지 따

      라 나왔다. 그 중 어린아이들은 언니와 아저씨들에게 매달리며 가지 말라며 울었다. 꼭 끌어

      안고는 손을 놓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눈물을 감추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도 따

      라 울었다. 아이들은 또 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에야 손을 흔들며 우리를 보내주었다.

       

      그들은 바위섬이었다. 가족이 있으나 앞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떨어져서 지내야 했다.

      여름철이 되면 인파가 바위섬에 몰려든다. 하지만 그들은 바위섬에 상처만 남기고 모두 떠

      나간다. 철새도 그냥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파도만은 말없이 바위섬의 친구가 되어준다. 결

      코 바위섬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런 파도가 필요한 것이었다. 이제는 아주 가끔씩

      밖에 들을 수 없는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또 내가 파도가 될 수 없음이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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