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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가난? 결핍? 나누세요 넉넉해집니다! -정 추기경님 새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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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용 [parkky44] 쪽지 캡슐

2009-01-02 ㅣ No.9049

나누세요 넉넉해집니다 그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중앙일보]

정진석 추기경의 새해 메시지

 
  정진석 추기경은 “하느님이 정하신 질서가 진리다. 그래서 진리가 선이고, 선이 아름다움이다. 진선미가 하나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명동성당 옆 집무실에서 정진석(78·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을 만났다. 경기 한파의 찬바람이 몰아치는 신년 벽두를 향해 정 추기경은 ‘고통’과 ‘참다운 행복’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10년 전 외환위기 때를 돌아보라.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사는 게 아니라, 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럼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오병이어(五餠二魚) 일화’와 ‘다윈 200주년, 진화론 150주년’에 대해 깊고도 파격적인 답을 던졌다.

-일주일 전 성탄 메시지에서 ‘경제만 좋아지면 우리의 모든 삶이 다 해결될 것이란 헛된 기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헛된 기대’입니까.

“사람은 물질만 가지고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부탄이나 방글라데시 국민을 보세요. 그들의 행복지수는 문명국보다 더 높아요. 행복의 요건은 물질에 달려 있지 않다는 거죠. 마음 여하에 달려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물질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물질, 그 자체가 행복을 좌우하진 않아요. 행복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겁니다. 물질을 가져도 어떤 사람은 노예가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물질을 가졌으면서도 그걸 초월하죠. 그런 사람들은 덕(德)이 있는 이들이죠.”

◆‘오병이어’ 일화는 기적 아닌 사랑

그 말끝에 정 추기경은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 일화를 꺼냈다. 갈릴리 호숫가 언덕에서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여자와 아이들은 제외한 수치)의 군중을 배불리 먹였다는 이적(異蹟) 일화다. 정 추기경은 그 사건을 ‘기적’으로 풀지 않았다. 대신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사랑’으로 풀었다.

“성경을 보세요. 어린이와 여자를 빼고도 5000명이 모였죠. 그럼 적어도 7000∼8000명은 됐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50명씩, 혹은 100명씩 무리 지어 앉게 하셨어요. 서로 낯선 이들이었죠.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죠. 물론 그중 일부는 같은 마을 사람도 있었겠죠.”

당시 예수는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모인 이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러고도 남은 조각을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성경에는 기록돼 있다.

정 추기경은 사람들 사이에는 ‘친밀도’가 있다고 했다. “가장 친밀한 이들이 가족이죠. 그 다음에 학벌로 뭉친 이들, 이권을 위해 모인 사람들 등이죠. 그럼 가장 친밀도가 낮은 이들은 누굴까요. 시장 바닥에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언제 볼지 모르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마음을 안 여는 사이죠. 갈릴리 호숫가 언덕에 모인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죠.”

정 추기경은 예수가 올린 ‘감사의 기도’에 주목했다. “그게 어떤 기도였을까요. 그건 ‘마음을 열어라. 하느님께 감사하라’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그런 예수님의 기도를 듣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이 열린 겁니다. 그래서 저마다 품 안에 숨겨 두었던 도시락을 꺼냈던 거죠.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 겁니다. 자신이 굶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죠. 그렇게 나누고 남은 게 열두 광주리를 채웠다는 겁니다. 거기에 ‘오병이어’ 일화의 진정한 뜻이 있습니다.” 그건 나누면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사람들 마음 여는 기적 필요한 때

-그럼 ‘오병이어’ 일화에서 예수가 보인 기적은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두 마리, 세 마리로 불어났다는 기록은 없어요.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얘기도 없어요. 그럼 예수님이 보이신 진정한 기적은 뭘까요. 다름 아닌 꼭꼭 닫혔던 사람들의 마음을 여신 거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과 도시락을 나누게 하신 거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죠.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마음이 필요한 겁니다.”

-그런 마음이라면.

“10년 전 외환위기 때를 보세요. 우리 국민은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죠. 그런 공동체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한마음이 돼야 합니다. 한 배를 탔다는 공동체 의식이 있으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요.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고가 아닙니다. 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정 추기경은 ‘동물의 세계’를 보라고 했다. 거기에 오히려 배울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동물의 세계를 보세요. 사자가 먹다가 남기면 독수리가 와서 먹죠. 독수리가 남기면 그 다음으로 약한 동물이 와서 먹죠. 그렇게 다들 와서 남김 없이 다 먹죠. 그게 공평입니다. 그게 자연의 섭리죠. 동물의 세계는 창조주께서 설정하신 섭리를 곧이곧대로 따르는 사회니까요.”

-인간은 어떻습니까.

“동물에겐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본능’이 있죠. 반면 인간에겐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욕망을 절제할 수도 있고, 남용할 수도 있고, 악용할 수도 있죠. 자유를 잘 쓰면 달라지죠. 희사하고, 기부하고, 약자를 도와주는 선행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서 우러나는 거죠. 동물의 세계에는 그런 게 없어요.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살리는 일, 그건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이죠.” 정 추기경은 여기에 열쇠가 있다고 했다. 경제 한파의 어둡고 긴 터널을 우리가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다고 했다.

◆‘진화론’은 신의 섭리 알아가는 과정

 
 
2009년은 ‘진화론의 해’다.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 진화론의 고전인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다. 한때 발명가의 꿈을 꿨던 공학도(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답게 정 추기경은 “우리 인간이 아는 것은 우주 전체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인간의 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은 결국 신의 섭리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며 ‘진화론’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답했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진화론은 ‘시간’을 전제로 한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등생물이 나왔다는 게 요지입니다. 그럼 ‘시간’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를 알아야죠. 시간은 빅뱅 때 생겼습니다. 빅뱅으로 인해 이 우주가 생겼고, 그로 인해 시간과 공간도 생긴 거죠. 그래서 매 순간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어떤 분일까요? 하느님도 시간의 영향을 받는 분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왜냐고요? 하느님은 빅뱅 이전부터 존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계신 분이죠. 그러니 시작이 없고, 변화가 없고, 끝이 없는 거죠. 그래서 성경에는 ‘나는 있는 나다’(탈출기 3장14절,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는 모세의 물음에 대한 하느님의 답변)라고 기록돼 있는 겁니다. 그게 영원한 법이죠.”

-영원한 법이 뭔가요.

“사람 몸의 세포는 7년마다 다 물갈이를 하죠. 저는 70대니까 육체가 열 번 바뀐 거죠. 그런데도 나는 나죠. 결국 나의 육신이 ‘나’가 아니라는 거죠. 나의 영혼이 ‘나’라는 겁니다. 그럼 오늘 태어난 아기의 영혼은 언제 만들어진 겁니까. 바로 ‘지금’ 만들어진 거죠. 그러니 진화가 아니라 창조가 되는 겁니다. 하느님에겐 1억 년 전도 ‘지금’이고, 1억 년 후도 ‘지금’이죠.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니까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죠.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죠.”

정 추기경은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법을 ‘영원법’이라고 불렀다. “그런 영원한 법을 사람이 다 알 수는 없어요. 다만 그 법의 한 부분을 사람의 이성으로 알아낸 것이 바로 ‘자연법’이죠. 그래서 자연법은 영원법의 일부에 불과한 겁니다. 진화론은 자연법에 속하는 거죠.”

◆사람의 길은 양심, 거스르면 병 얻어

2008년은 유명 연예인의 잇따른 자살과 인터넷 악플(악성 댓글) 등으로 시끌시끌했다. 정 추기경은 ‘인터넷 악플’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철로 위에서 기차는 자유롭죠. 빨리도 가고, 천천히도 가죠. 하지만 철로를 벗어나면 꼼짝도 못 하죠. 그게 ‘길’입니다. 지구도 길이 있고, 태양도 길이 있죠. 이 우주의 천체도 길이 있어요. 그 길 위에서 자유로운 겁니다. 길을 벗어나면 자유를 잃게 되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 추기경은 사람의 길은 ‘양심’이라고 했다. 우리는 ‘양심’ 안에서 자유롭다고 했다. “동물의 자유는 본능이죠. 동물에게 본능을 어길 자유는 없습니다. 그럼 인간의 본능은 뭘까요. 다름 아닌 ‘양심’입니다. 양심을 거스르면 마음이 괴롭고, 병이 생기죠. 인간에게 양심을 거스를 자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악플’은 양심을 거스르는 일이죠. 말로 살인을 하는 거죠. 우리에겐 그럴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정 추기경은 최근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한 성왕-다윗』을 출간했다. 부제 시절, 그는 룸메이트였던 고 박도식(전 대구가톨릭대 총장) 신부와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금껏 47권을 냈다. 약속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정 추기경은 “공무가 시작되기 전 매일 새벽에 일어나 책을 쓴다”며 “책을 쓴다는 건 내가 하루하루를 살았다는 표시”라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정진석 추기경은 1931년 서울 수표동에서 태어났다. 친가와 외가 모두 4대째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다. 중앙고를 졸업한 뒤 ‘발명가’의 꿈을 안고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졌다. 군 복무 중 숱한 죽음을 겪으면서 “내 삶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전쟁이 끝난 후 가톨릭 신학대에 입학, 30세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39세(1970년)에 국내 최연소 주교, 2006년에는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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