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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88: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5 -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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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20 ㅣ No.341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88)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5) - 아브라함

“야훼 이레, 야훼께서 마련해 주신단다”

 

■ 무신론자의 성경읽기

지독한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그는 과학과 인문학의 온갖 삐딱한 지식을 동원하여 ‘신의 부재’ 곧 실제적 무신론을 퍼트리려 한다. 그 일환으로 저술된 책이 「만들어진 신」이다. 과연 그의 논조는 어떨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굳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겠다. 대신 다음의 문장에서 그 일단을 확인해 보자. 그는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라 하신 하느님의 분부와 관련된 성경의 대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독설을 늘어놓았다.

“결국 신이 농담을 했던 것이다. 신은 아브라함을 ‘유혹하고’ 믿음을 시험했을 뿐이다. 현대의 도덕주의자들은 그러한 심리적 외상을 아이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의 도덕 기준들로 보면, 이 수치스러운 이야기는 아동학대이자,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핍박이자,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때 나오는 것 같은 변명이 처음으로 기록된 사례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에도 도킨스의 일차원적 알레르기 반응에 공감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겸허하게 밝히거니와, 이러한 해석은 전적으로 짧은 안목에 기인한다. 하느님의 안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차원적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8-9).

이해력은 철저히 안목에 비례한다. 안목이 떨어지면 높은 수준의 섭리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큰 일을 계획하실 때, 그 일을 위해 부르신 인물에게 당신의 안목을 무조건 수용하도록 훈련을 시키고자 하신다.

바둑의 예를 들어보자. 바둑 10단이 바둑 10급에게 묘수를 가르쳐 주어도 10급짜리는 그 훈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10급짜리가 바둑을 잘 두려면 10단이 시키는 대로 이행해야만 한다. 이것이 실력을 향상시키고 바둑을 잘 두는 비결이다. 그러다 보면 수가 보이고, 안목이 이해되는 것이다.

불문곡직하고,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분부는 누가 들어도 납득이 안 되는 명령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말이 안 되는 이 말씀을 일부러 내리셨던 것이다. 어떻게 하나 보려고 말이다. 이는 일종의 지혜다. 어떤 부하가 나에게 충성을 다하는 부하인가 아닌가 알아보려면, 말 되는 명령을 해서는 알아볼 수 없다. 말 안 되는 명령을 해도 충성을 다할 때 그가 바로 충복이다. 가령 새벽 2시에 갑자기 전화를 해서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지금 당장 출근하시오”라고 했을 때, 출근하는 사람이 충성을 다 바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나중에 사장감이다. 이런 정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 아브라함의 변론

무엇이건 최고의 것을 배우려면 고수의 문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믿음을 배우기 위하여 이른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한 수 깨우침을 청했더니, 영감 속에 이런 속삭임이 들렸다(졸저, 「맥으로 읽는 성경」 참조).

나도 꽤나 영특한 사람이었소.
안 되겠다 싶을 땐 용한 잔꾀도 부릴 줄 알았소.
파라오와 아비멜렉 앞에서 아내를 누이라 했던 것도,
하가르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은 것도,
다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소.
돌연 나는 바보가 되었소.
숨을 넘길 나이 아흔 아홉에
이가 다 빠진 할망구의 뱃속에
아이가 태동하는 걸 보고선,
그만 말을 잃었소.
그때부턴 무조건이오.
네, 네, 네,
예스, 예스, 예스.
가라셔도 아멘, 오라셔도 아멘.
주셔도 아멘, 달라셔도 아멘.
허, 거-어-참.


■ 야훼 이레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2 참조).

이 명령은 아브라함 이야기의 대단원이다. ‘떠나라’ 하시면 떠났고, ‘가라’ 하시면 갔던 아브라함이었다. 또 ‘믿어라’ 하시면 믿었던 아브라함이었다. 하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직 인간적인 잔꾀가 섞여 있는 믿음이었다. 그랬기에, 이집트 파라오 앞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부인을 여동생으로 속여 말했던 인간적인 잔머리를 꾸짖으셨고, ‘대리모’라는 인간적인 술수로 후사를 보려했던 믿음의 부족을 일깨우기 위하여 90세가 된 사라의 쭈그렁 자궁에서 이사악이 태어나는 기적도 보여주셨다. 이런 일련의 충격적인 깨달음의 결과로 아브라함에게는 요지부동의 믿음공식이 생겼던 것!

“나는 앞으로 하느님이 뭐라고 그러셔도 무조건 따를 거야. 더는 생각 안 해.”

이런 믿음이었다. 그럼에도 외아들, 그것도 100세 늘그막에 얻은 유일한 희망을 바치라는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뇌였을 터다. 너무나 잔인한 명령! 어쩌면 도킨스의 논리처럼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끔 하는 폭압 같은 것! 그랬기에 하느님의 명령과 양심의 소리 사이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갈등은 얼마나 그를 괴롭혔겠는가.

단장의 마음앓이 끝에 그는 결국 이 믿음으로 새벽 일찍 일어나 이사악을 바치러 간다. 그런데 알려져 있듯이 장작, 불쏘시개 등은 다 있는데 제물이 없다. 이상한 생각이 든 이사악이 아버지께 묻는다.

“아버지 제물은 어디 있는 거예요?”(창세 22,7 참조)

아브라함의 답변은 천연덕스럽다.

“야훼 이레, 야훼께서 마련해 주신단다”(창세 22,8 참조).

궁지를 모면하려고 임기응변으로 한 답변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이미 마음속에 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설령 아들을 잃는다 해도 내가 상상치 못한 더 큰 선물을 주시리라!”

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을 그대로 결행하였다. 그는 이윽고 모리야 산에 당도하여 아무 생각 없이 이사악을 제물로 묶어 희생 제사를 바치려 했다. 바로 그 때 야훼의 천사가 하늘에서 큰 소리로 아브라함을 부르며 아이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

“나는 네가 나를 얼마나 경외하는지 알았다. 네 외아들마저 서슴지 않고 바쳐 충성을 다하였으니, 나는 너에게 더욱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하리라. 세상 만민이 네 후손의 덕을 입을 것이다”(창세 22,12-18 참조).

이 말씀을 듣고 주위를 살펴보니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이 있다. 아브라함은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 제물이로구나!” 하고 이사악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린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시험을 통과했고 저 하느님의 약속은 오늘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10월 19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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