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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lapa] 쪽지 캡슐

2000-05-30 ㅣ No.3243

 

*이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눈이 오는 한겨울에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당신의 퇴근 무렵에

따뜻한 붕어빵 한 봉지 사들고

당신이 내리는 지하철역에서 서 있겠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당신의 피로한 어깨를 느끼겠습니다...

 

당신이 돌아오는 당신의 집에

향내나는 그런 집으로 만들겠습니다.

때로는 구수한 된장찌게 냄새로

때로는 만개한 소국들의 향기로

때로는 진한 샤넬의 향기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당신이 늦게까지 불켜놓은 당신의 방에서

담배연기 자욱해 하며 책을 볼때

나는 슬며시 레몬넣은 홍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미모와 외모로서 당신곁에 잠시 머무는 여자가 아니라

나는 당신의 가장 가까운 벗으로서

있어도 없는듯, 없으면 서운한

그런 맘 편한 얘기 털어놓을수 있는

그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잠을 청하기 위해 불켜놓은 보금자리

대화하다가 동이 트는 것을 보아도

서로의 대화로 인해 풍성해진 우리 맘을 발견하겠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나를 빌어 태어난 아이가 장성해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당신으로 꼽는다면

나는 영광스럽게 두번째 자리를 차지하여도

행복하겠습니다.

 

느을~ 사랑해서 미칠것 같은

꼭 내꺼로만 여겨지는 그런 아내가 아니라

아주 필요한 사람으로, 없어서는 안되는

그런 공기같은 아내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행여

내가 세상에 당신을 남겨두고 멀리 떠나는 일이 있어도

가슴 한구석에 많이 자리 잡을수 있는

그런 현명한 아내가 되겠습니다.

 

지혜로와

슬기로와

당신의 앞길에

아주 밝은 헤드라이트 같은 불빛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호롱불처럼 아니라면 반딧불처럼

당신가는 길에 빛을 비출수 있는

그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내가

흰서리 내린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당신은 내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었소..."

"당신을 만나 작지만.. 행복했었소..."

라는 말을 듣는 그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 이런 남편이 되겠습니다 *

 

눈부신 벚꽃 흩날리우는 노곤한 봄날

저녁 어스름이 몰려올 때쯤

퇴근 길에 안개꽃 한 무더기와

가운데 수줍게 핀 장미 한 송이를 준비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환한 웃음으로 날 맞이하는

당신께 진한 내 마음 담겨진 그 꽃 무더기를 건네도록 하지요.

당신은 눈부신 장미가 되어주십시오.

나는 당신을 돋보이게 할 안개꽃이라도 행복합니다.

 

날 기다려주는 우리들의 집에

웃음이 묻어나는 그런 집으로 만들겠습니다.

때로는 소녀처럼 수줍게 입 가리고 웃는

당신의 호호ㅡ 웃음으로.

때로는 능청스레 바보처럼 웃는

나의 허허ㅡ 웃음으로.

때로는 세상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우리 사랑의 결실이 웃는 까르륵ㅡ 웃음으로.

 

피곤함에 지쳐 당신, 걷어놓지 못한 빨래가

그대 향한 그리움처럼 펄럭대는 오후..

곤히 잠든 당신의 방문을 살며시 닫고

당신의 속옷과 양말을 개켜두도록 하겠습니다.

때로 구멍난 당신의 양말을 보며

내 가슴 뻥ㅡ뚫린 듯한 당신의 사랑에

부끄런 눈물도 한 방울 흘리겠습니다.

 

능력과 재력으로 당신에게 군림하는 남자가 아니라

나는 당신의 가장 든든한 쉼터, 한 그루 나무가 되겠습니다.

여름이면 그늘을, 가을이면 과일을,

겨울이면 당신 몸 녹여줄 장작이 되어주겠습니다.

다시 돌아오는 봄 나는 당신에게

기꺼이 나의 그루터기를 내어주겠습니다.

당신이 앉아 부드런 봄바람을 느끼며 쉴 수 있도록 말이지요.

 

문득 고향에 두고온 부모님 생각에

당신 눈물 지으면

날이 하얗게 새도록 당신을 내 품에 묻고

하나 둘 돋아난 시린 당신의 흰 머리칼을 스다듬으며

당신의 머리를 내 팔에 누이고 꼬옥 안아주겠습니다.

그날 하루 휴가를 내서라도

당신의 부모님 모셔다가

당신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걸

내 기어이 보렵니다.

 

당신으로 인해

더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가 장성해서

가장 사랑하는 이를

당신으로 꼽는다면

나는 절대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렵니다.

순위를 가려 시상대에 오른다면

내게 도전을 해온 우리 아이와 함께

첫 번째 자리를 꼬옥 차지하겠습니다.

 

항상 풍요로운 삶을 제공해주는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영주같은 남편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잠든 새벽

앞치마 두르고 어설프나마 정성껏

당신이 그러하듯 나 역시 당신을 위한

식탁을 차리고

당신은 비록 포크와 나이프 대신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스테이크와 샐러드 대신

설익은 밥과 짠 된장국을 먹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님이 될 수 있도록

나는 마법사 남편이 되겠습니다.

 

현명하고

박식해서

당신의 앞길을

아스팔트 마냥 탄탄대로 깔아주지 못하더라도

꽃잎이 아니라도 이름모를 잡초라도

당신 앞에 뿌려져

힘겨운 세상 길 걸어가는

당신의 고단한 발을 만져줄 수 있는

그런 남편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내가

황혼으로 물든 고즈넉한 생의 뒤안 길에서

"다시 태어나도 나 당신을 만날거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놓치기라도 하면 큰일날 듯

깍지 낀 손으로 느끼게끔 할 수 있는

그런 남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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