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구 미아3동)성당 게시판

믿음으로 엮어진 가족(연중 3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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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1-01-24 ㅣ No.6213

 

 

2001, 1, 23  연중 제3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마르코 3,31-35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이냐)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를 불러 달라고 사람을 들여보냈다. 둘러앉았던 군중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 분들이 밖에서 찾으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시고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묵상>

 

이제 곧 설날입니다.  아니 우리 마음 안에는 이미 설날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기쁨에 마음이 설레입니다. 한자리에 모여 살아도 아쉬울 가족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흩어져 삶의 현장을 누비다가 모처럼 모든 근심 걱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한 자리에 모이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넉넉한 시간입니다. 지금쯤 가족들이 하나 둘 모여 화기애애한 이야기의 꽃을 피우겠지요.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지 모릅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오늘, 같은 지구(서울대교구 6지구)에 계시는 신부님들과 함께 우리 지구에서 생활하시는 은퇴 신부님들을 찾아 뵈었습니다.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들었습니다. 한평생을 주님께, 그리고 하느님 백성에게 봉헌한 아버지 같고 할아버지 같은 신부님을 후배 신부로서 찾아 뵈옵는 찡한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 뻘, 아니 손자 뻘 되는 후배 신부들을 지긋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면 그 넉넉한 가슴으로 받아들이시는 은퇴 신부님들의 마음을 어찌 저의 작은 품에 담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은퇴 신부님들께 세배를 드리고 나서, 늦은 시간 아버지 신부님(신학교에 들어갈 때 추천을 해주신 신부님입니다.)을 찾아 뵈었습니다. 그동안 많이 늙으셨지만 아들 신부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희망이 더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비록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이 세상 어느 것도 갈라놓을 수 없는 모진 인연의 끈이 선배 신부님들과 저를 하나로 묶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내게 생명을 주신 부모님이나 나와 피를 나눈 친형제보다 지금 당장에 싫든 좋든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믿음의 벗들이 더 정겹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영락없는 사제구나! 아니 사제이기 전에 하느님의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선배 신부님을 만나면서 부모님을 떠올렸습니다. 신학생 시절, 부모님께서는 집안의 어려움을 저한테만큼은 애써 감추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서는 안된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말입니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신학교를 들어가면서 그동안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용돈이나마 들였던 것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 너무나 죄송스러웠는데, 부모님께서는 자식의 이러한 죄송스러움을 넘어 아예 집안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끊으라고 다그치셨습니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참으로 야속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자리에서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그 당시에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갈갈이 찢어졌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부모님이 계셨기에 저는 지금 남부럽지 않을만큼 많은 믿음의 식구들과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포기하셨습니다. 아니 저를 포기하심으로써 저를 통해서 더 많은 식구들을 당신의 품에 안으셨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부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써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오늘 제가 띄우는 보잘것없는 묵상글을 부모님께서 보실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께 따뜻한 인사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보잘것없는 저를 당신의 사제로 부르셔서 당신의 수많은 아들 딸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하느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어머니!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끝으로 주님께서 하나로 이어주신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께, 세상의 어떠한 유혹에도 마지막날까지 하나로 묶여있을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의 벗들이여! 사랑합니다. 우리의 사랑과 믿음, 그리고 희망, 영원히 변치말고 마지막 날 활짝 꽃피울 때까지 함께 보듬고 갑시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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