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의 영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Sts. Cyrillus et Meth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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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숙 [hsryu] 쪽지 캡슐

2001-02-21 ㅣ No.15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Sts. Cyrillus et Methodius, C. C.]

 

                                                                                         축일 2월 14일

 

   슬라브 민족은 본래 동부에 있는 대 평야, 즉 중앙 아시아 지방에 정착했으나, 그 후 차차 발칸 반도를 거쳐 중앙 유럽 즉, 모라비아와 보헤미아 지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민족이 그리스도교의 빛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이 발칸에 진출할 때부터였으나 당시는 소란스러운 시대였으므로 전 민족이 그리스도교를 받들어 행할 수 없었고 특히 중부 유럽지방에 진출한 이들은 귀화의 은총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도 복음의 씨를 뿌릴 수 있는 성인들을 파견하셨는데 그 중에 유명한 분은 치릴로와 메토디오 두 성인이시다. 이 두 분은 테살로니카 시의 레오라는 고관의 자손으로서 형제였다. 테살로니카는 옛적에 성 바오로께서 전교 하시던 곳이요, 현재는 살로니카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 당시는 각 국과 거래하는 일대 무역 항구로서 그 시외에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따라서 이 곳에서 성장한 치릴로와 메토디오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의 풍습과 언어를 습득했고, 후에는 그들의 사도로서의 소양을 얻는 것이니, 이 역시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테살로니카에는 훌륭한 학교가 있어서 이 두 분은 마음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형인 메토디오는 재질이 풍부하며 아버지와 같이 관리가 되었으나 곧 출세하여 테살리아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세속 생활을 싫어하여 관직을 은퇴하고, 엄격하고 경건한 생활을 택했다. 그의 동생 치릴로는 콘스탄티노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역시 재능이 뛰어나고 학식이 출중한 청년으로, 궁중에 근무하여 영예스러운 지위에까지 올랐으나 그도 오히려 이를 싫어하고 은퇴해 어떤 조그마한 섬에 숨어살았다. 그가 다시 발각되어 궁중에 되돌아갔을 때 황제의 명령으로 철학 교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당시는 회교와 유다교가 논쟁이 벌어진 때였다. 그는 황제 미카엘의 칙서를 받아 그 해박한 지식으로 이교도들과 논쟁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가서 성공리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후 곧 그 형 메토디오와 더불어 흑해 지방의 민족을 회개시키기 위해 파견되어 그곳에서도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862년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이 미카엘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어 원조를 간청했는데 그 내용은 그들이 천주교를 믿지만 대세에 억눌려 신자가 되었기 때문에 교리에 무지하니 이를 인도하고 가르칠만한 지도자를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는 다시 치릴로와 메토디오를 모라비아에 파견했다. 그들은 이를 대환영했다. 치릴로는 이미 사제의 품을 받았었고, 형제는 협력하여 많은 신자들을 교도하고 강론과 교회 예식으로써 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들은 슬라브족이 아직 글자를 가지지 못함을 유감으로 여기고 자기들이 창안한 치릴로식 알파벳을 사용하여 이것으로 성서와 전례서들을 슬라브어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슬라브 문학의 시조는 성 치릴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모라비아 인들을 훌륭한 천주교 신자로 양성한 두 형제는 그곳에 3년 동안 체류하고, 그 후 교황의 축복도 받고 자기들을 비난하는 이들에 대한 변명도 할 겸 로마로 향했다. 이에 교황 아드리아노께서는 이 두 분을 매우 반갑게 영접하시고 모라비아에 있어서의 그들의 수고를 치하하시어 메토디오를 사제로, 치릴로를 주교로 승급시키려 했으나, 치릴로는 오랜 세월동안의 활동과 노고에 힘이 쇠진해 로마에 있는 어떤 수도원에 은퇴하여 수도서원을 발한 후 50일만에 하늘로 향했다. 때는 869년 2월 14일이었다. 메토디오는 형대신 주교로 임명되었다.

   메토디오는 다시 모라비아로 귀환했으나 전란으로 포교사업에 전념할 수 없었음으로 판노니아로 가서 그 지방민의 회개를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허락 없이 전교 했다는 죄로 구속되었으나 곧 교황의 도움으로 석방되었다. 메토디오는 그 외에도 여러 방면에서 장애와 비난을 받았으나, 그 때마다 교황의 옹호를 받았다. 세 번째 소송을 당한 후 변호를 받을 겨를도 없이 세상을 떠났는데 885년 4월 6일이었다.

 

   여러 가지 고난과 장애를 겪은 두 형제의 전교 사업은 후일에 풍성한 결실을 거두었고, 그들의 노고는 언제나 밝게 빛나고 있으며 슬라브 민족의 사도로서 온 교회의 존경을 받고 있다.

 

   성서에"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견책하시고 아들로 여기시는 자에게 매를 드신다"(히브 12, 6) 는 말씀이 있다. 메토디오와 치릴로는 교회와 사람들을 위해 가장 성의 있는 노력을 했지만 끊임없는 반대와 고통을 면치 못했다. 하느님께서 이를 허락하신 것은 그들을 성화시키고 그들에게 공로를 세울 기회를 주시고자 하심이었다. 우리도삶의 힘겨움을 당할 때 하느님을 원망하지 말고 이들이 걸어온 길을 되새겨봄이 바람직 할것이다.

 

                                                                   - 카톨릭 성인전 에서 요약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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