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강론]초대받은 삶 -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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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칠 [mpark] 쪽지 캡슐

2002-10-16 ㅣ No.3065

어느 교우분의 강권(?)에 무릎을 꿇고

지난 주일 강론을 올립니다.

도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연중 제 28 주일                                                          2002. 10.13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에 강원도 정선 성당의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편지가 한 장 배달되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지난 번 태풍 피해와 관련해서 도움을 요청하셨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신부님은 우리 본당의 한 형제님을 소개하고 계셨습니다.

다음은 정선 신부님의 편지 글입니다.

 

저는 정선 본당 신부입니다.

저희 성당 관할 지역은 지난 태풍 ’루사’로 인하여 1,300여 세대가 침수되어

모든 가제 도구를 순식간에 잃어야 했습니다.

더러는 집이 매몰되어 오갈 곳이 없는 분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신부님 본당의 한 형제님께서 전쟁터 같던 이곳을 찾아주셨습니다.

(편지에는 이름이 소개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이름을 알리지 않겠습니다)

이분은 이틀 동안이나 이곳에 머물러 계시면서 자원 봉사자로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해도 힘든 일을 혼자서,

그것도 이틀씩이나 말없이 봉사해 주셨습니다.

형제님의 봉사는 고난에 처했던 이곳 주민들에게

마치 천사의 도움과도 같았습니다.

 

저희 성당 교육관 레지오 마리애 회합실에서 이틀을 머무셨던 형제님께서,

가실 때는 훌쩍 떠나셨기에 제대로 고맙다고 인사도 못드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신부님께 감사드리며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신부님과 중계동 신자들, 그리고 그 형제님을 위해서

두 손 모아 기도 드리며 주님의 은총을 구합니다.

 

본당의 훌륭하신 교우 한 분 덕택에 제가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이분은 소중한 당신 휴가의 이틀을 정선에서 일하면서 보내셨을 것입니다.

아니라면 주말을 이용하여 봉사의 땀방울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소리 소문 없이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세상은 여전히 희망 있어 보입니다.

 

정선 본당 신부님이 이 형제님께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강원도 수해 지역에서 이 형제님께 도와달라고 초대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분은 수해 지역으로 향하셨습니다.

무엇이 이 분을 정선 땅으로 떠나게 하셨을까요?

혹시 하느님께서 이 분을 초대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명동 성당 청년 단체 중에 엠마우스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엠마우스 활동의 창시자 피에르 신부님의 모범을 따라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여름이 되면 본당의 벽을 뛰어넘어 6일간의 노동 캠프 봉사자를 모집합니다.

다른 성당의 많은 젊은이들도 이 엠마우스 노동 캠프에 지원합니다.

 

명동 보좌 시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 바로 엠마우스 노동 캠프 기간이었습니다.

음성 나환자 정착촌에서 봉사할 때였습니다.

큰 길에서 정착촌까지의 길을 포장해 주었고, 허술한 담장도 쌓아주었습니다.

순수한 젊은이들과 함께 리어카를 끌고, 안 해 보았던 삽질을 하면서

손에 물집도 많이 잡혔지만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배식받은 식판에 굵은 빗줄기가 떨어져도 밥은 왜 그렇게도 맛있었던지요.

 

노동 캠프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직장을 가진 젊은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여름 휴가를 엠마우스 노동 캠프 기간에 맞춥니다.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며칠 되지 않는 여름 휴가를,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몽땅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름 휴가의 절반을 노동 캠프에서 보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무엇이 놀기 좋아하고 편한 것만을 바라는 젊은이들을

힘든 노동 캠프로 이끌었던 것일까요?

혹시 하느님께서 이들을 초대해 주셨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마음은 즐겨 잔칫집으로 향합니다.

어렵고 힘든 곳보다는 즐겁고 기쁜 곳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바오로 사도는 독서의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도 여러분처럼 풍족하게 살 줄 압니다.

나도 여러분처럼 넉넉하고 배부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나는 복음을 위해서 비천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고프거나 궁핍할 때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냐구요?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에게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삶으로 초대해 주셔서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지상에서의 삶이 끝날 때 하느님께서는 또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초대해 주신 삶이 항상 풍족하고 항상 넉넉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배고프고 궁핍할 때에도

복음의 힘으로 잘 이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눈길 돌릴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우리들을 초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언젠가 이런 말씀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고맙게도 여러분은 나와 함께 고생을 같이 해 주셨습니다!" (필립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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