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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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연 [aldus119] 쪽지 캡슐

2005-03-31 ㅣ No.414


꽤나 오래된 우리나라의 대중가요 <하숙생>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얼마 전에 인기 그룹 god 또한 <길>이란 제목의 노래에서 인생을 길에 비유했지요. “내가 가는 이 길은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 가는지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네. 알 수 없네. 알 수 없네.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이렇게 인생은 노래나 시에서 자주 길에 비유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 길은 유감스럽게도 잘 닦여서 편편한 도로도 아니고, 시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도 아닙니다. 굽이굽이 굴곡이 많고 높낮이도 고르지 않은 울퉁불퉁한 산길에 가깝고, 게다가 그 길의 반 이상은 숨을 헐떡이고 땀을 흘리면서 힘들게 걸어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길입니다. 이렇게 인생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 많은 산길에 가깝지만, 그래도 간혹 목을 축일 수 있는 샘물이 있고, 땀을 식혀주는 한 줄기 산들바람이 있기에, 또 길동무가 있기에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런지요.

루가 복음 24장 13절 이하에 언급된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들은 인생의 도상에서 가파르고 험한 비탈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자렛 사람 예수를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고대하던 메시아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는데, 그분이 너무도 허망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크나큰 실망과 좌절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던지 그들은 길을 걸으면서, 한때 가슴 벅차게 했지만 이제는 깨어진 꿈과 희망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두 제자가 한참 길을 걷고 있을 때 나그네 한 사람이 그들 곁에 다가와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고심하던 문제들에 대해 성서를 들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줍니다. 인생은 고통과는 떼어놓을 수 없다고, 고통을 거쳐야 비로소 영광에 이를 수 있다고, 성서에 예언된 구세주도 결국 이런 길을 걸어야 했다고 하나하나 짚어줍니다. 낯선 나그네의 설명을 들으면서 제자들은 깨달음으로 머리가 환해지고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삼 십리 길을 다 와서 목적지 엠마오에 도착했습니다.

그 나그네는 계속해서 길을 갈 기미를 보이자 제자들이 아쉬움 속에 그를 붙잡습니다.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나그네는 제자들의 청에 응낙해서 그들과 함께 머무르고, 제자들은 그분과 함께 빵을 나눌 때 비로소 눈이 열려서 그분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는 길을 떠날 때의 실망과 좌절을 털어 버리고 기쁨에 가득 차서 다른 제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고통을 안겨 주었던 도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갑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는 인생 길에서 지친 우리에게 힘을 주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분은 내 가족, 친지의 모습으로 때로는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셔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계속 길을 가라고 격려해주십니다. 또한 그분은 성서의 말씀을 통해 깨우침을 주시고 성체 성사라는 영적 양식과 음료로써 힘을 북돋아주십니다. 비록 우리의 인생 길이 굽은 길, 험한 길, 가파른 길이라지만, 우리에 앞서 이 길을 가신 분,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말씀하신 그분이 우리의 길동무가 되시기에 우리는 희망을 갖고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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