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재미없는 연중 제2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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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0-01-15 ㅣ No.413

                        연중 제2주일(나해, 2000. 1. 16)

                                           제1독서 : 1사무 3, 3a. 4-10. 19

                                           제2독서 : 1고린 6, 13c-15a. 17-20

                                           복   음 : 요한 1, 35 - 42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눈이 내려야 하는데 비가 오고 날씨가 추워야 하는데 봄처럼 따뜻한 한 주간이었습니다.

  많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천년에는 지금 해외 여행을 하듯이 우주로 신혼 여행이나 수학 여행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우주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로 사람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년도 안된 1961년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우주는 아니 지구와 가까운 달은 토끼가 살고 계수나무가 있는 곳으로 생각하였습니다.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에 탔던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최초로 달에 가서는 토끼도 계수나무도 없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1961년 4월 12일 구 소련의 보스토크 1호는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태우고, 미국은 바로 그 다음 해에 글렌을 태운 우정 7호를 발사하여 유인 우주비행을 실현시켰습니다.  이들은 우주의 아름다운 푸른 지구를 처음으로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구의 모습을 본 두 사람의 반응은 전해 달랐습니다.  유리 가가린은 "하늘(우주)에 올라가 봤지만 하느님은 어디에도 계시지 않더라"라고 말했고, 글렌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것을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일까요?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다가서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당시에 사제인 엘리가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사무엘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사무엘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을 질투하거나 시기하였다면 계속해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엉뚱하게 답하게 하여 사무엘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당시에 세레자 요한의 권위와 명성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메시아인 줄 알았습니다.  요한이 보여 주는 초인적인 극기 생활, 그리고 썩은 지도자들에게 회계하라고 외치는 웅장한 외침과 올바르지 못한 왕의 행동을 목숨을 걸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모습.  사람들은 그래서 요한을 성서에서 오시기로 '약속된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보고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라고 말합니다.  잘 나가던 사람이 추앙 받는 사람이 자신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분을 소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뒤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묻자 그들은 "라삐,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당신이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묵고 계시는 곳을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간 그들은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보고 구세주로 믿게 됩니다.  그리고 안드레아는 형 시몬에게 가서 자신이 메시아를 만났다는 말을 하여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그런데 본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를 처음 본 우주인들 중 한 우주인은 하느님이 없다고 말하고 다른 한 우주인은 아름다운 지구를 보면서 하느님을 찬양했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활하면서 똑같은 것을 보고 우리의 잘못 때문에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또 잘 알지 못하고 우리의 자존심 때문에 올바른 것을 알려 주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하느님을 올바르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의 생활 모습을 보고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본당은 올 해 700명을 영세 시키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단순히 말로만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웃과 나누는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간의 시간 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와서 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면 어떻겠습니까?  함께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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